10월의 다이어리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
적어두지 못할 만큼 바쁜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기록할 게 없을 만큼
나의 행적이 멈춘 것도 아닌데
무엇이 그렇게 기록하지 못하게 했을까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고
또 선명하게 각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어느 것이라도 난 상관없을 것 같다
유난히 외출이 많았던 10월
삶이 제로웨이스터고
제로웨이스터가 내 삶이 되어가는 어느 중간쯤
유독 어느 달 보다 많이 보고 많이 생각했던 10월
결혼 후 나의 10월은 늘 여행이 있었다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가을날의 낙엽과 합께 했던 결혼식
10월엔 맺음의 달이었기에
매년 돌아오는 가을이면
그 계절을 만끽하러 다녔었는데
올해는 케이크 하나에 우리 맺음을 기억해야 했다
심지어 13주년인 줄 알았는데
살고 지낸 건 13년 기념일은 12년
12년이든 13년 이든 무슨 상관이겠나
같이 살고 있는데 말이다
우린 짧은 여행을 다녔다
그리고 그 여행 속에 나는 많은 자연과 함께 했다
나는 어른이고 나의 딸들은 아이
지금껏 내가 자연을 망가뜨린 건
내 아이가 살아갈 자연을 망가뜨리는 일이었다
편리함에 녹아져 있는 내 삶이
나의 딸들이 살아갈 세상을
엉망으로 만드는 일이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근데 그 이유가
아이들을 위해서였다는 게 아픔이다
공부도, 실력도, 돈도 많은데
만약 숨 쉴 공기가, 마실 물이, 걸어 다닐 땅이
없다면 아이들은 살아가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어른인 내가
그런 세상이 되지 않도록
충분히 더 많이 가득 넘치게
노력해야 했다
삶에서 빼기를 연습하기
미니멀라이프를
아주 천천히 하고 있는 내게
한 가지 목표가 또 생겼다
삶에서 물건을 빼고 사람의 향기를 넣고
내 물건에서 플라스틱을 빼고 자연을 채우는 것
흙으로 돌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
그러나 절대 사라지지 않는 유해한 플라스틱
내 삶, 나의 가족들의 삶에서
조금씩 빼기를 하려 한다
10월은 그 빼기를 하려고 마음먹기
딱 좋았던 한 달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었던 만큼
내게도 작은 결실들이 보였다
다른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나만의 결실
이렇게 10월을 보낸다
그리고 다시 11월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