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정한온기 Sep 07. 2021

수화기 너머로 불안을 던져준다







나의 또 다른 이름 며느리 며느리 생활 13년

뭐 잘한다고 할 수 없지만 잘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 또한 결정짓기 어렵다.

반대편에서는 한참 못하는 며느리 일수도 있고 내 입장에서는 할 도리는 했다고 할 수도 있고

난 그 "도리"에  목메어 살지는 않는다. 도리를 받아들이는 세상 시어머니들은 그 기준이 제각각이니깐

차라리 1부터 나열해서 되어있는 규범이라면 모를까  이건 무엇하나 결정짓기가 힘들다



결혼 13년 중 시가와 연락을 안 하고 살았던 3년의 기간이 있다. 내가 연을 끊었던 게 아니고 남편이 일방적으로 스스로 끊었다.

내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은 내게 하나같이 그랬다




"그럼 며느리라도 연락드리고 남편이랑 시가 쪽 사람들이랑 잘 지낼 수 있게 해야지 같이 그러면 어쩌니"






아니 왜 나한테 그 짐을 지게 하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럴 때만 난 가족이 되고 그들을 풀어줘야 하는 중간 역할을 하고

중요한 것들에 대한 상의에서는 나는 빠지고 내 의견은 묻지 않는 사람들인데 난 왜 그들에게 그렇게 해줘야 하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시어머니와 통화하는 걸 사실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내가 그다지 사람들과의 전화통화를 즐겨하지 않으며 별일 없이 살아도 가끔 안부만 전해줘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를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나의 그런 성향을 알고 있고 나 또한 그들이 내게 전화하지 않는다고 서운해하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혹시 나에 대해 모르면 친절히 나는 설명해준다

사실 친정식구들도 그렇다 결혼했다고 친정엄마와 자주 통화하고 시시콜콜 이야기하며 지내지 않고 엄마 역시 내게 전화를 잘하지 않는다




이런 내가 어느 날 갑자기 결혼하면서 어떻게  아주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그들과 어울려야 할까?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만나면 하하호호 그들에게 맞장구 쳐주며 같이 호응해주며 노력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30년을 다르게 산 사람을 자신들의 삶 속에 늘 같이 있던 사람처럼 지내길 바랄 수 있을까?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격이 없는 농담에 상처 받고 또 힘들었다.

첫째를 낳고 몸조리하고 있는 내게 하루에도 몇 번씩 시어머니의 전화벨 소리가 들렸고 그때마다 아이는 자다가 깨서 울곤 했다

그렇게 부재중 전화로 남아 잊어버리고 전화를 안 하면 왜 전화 안 하냐고 다그쳤다

그럼 진동으로 해 놓으라고 해서 진동으로 해두고 못 받으면 왜 또 안 받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내게 전화해 당신의 아들이 전화를 안 한다고 다그치기도 했다






최근에 다시 연락하며 지내기 시작하면서 난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뭐 그전에도 조금씩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서운함을 이야기하고 했지만 아주 소심한 반항이었을 뿐 적극적인 자세는 취하지 못했었다.상처 주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못하는 바보였다면 지금은 내 감정이 우선이다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어머니는 내가 한 번에 전화를 받지 못하면 다음 통화에서 왜 전화를 안 받니 하면서

이젠 볼멘소리가 아닌 다른 표현방식을 한다. 내게 불안을 던져주고 있다.






난 또 무슨 일이 있나 했지 뭔 일이라도 있어서 못 받는 줄 알고 내가 걱정했지 또 사고라도 났나 싶어서


  



남편이 전화를 안 받으면 곧장 내게 전화한다 아범 무슨 일 있냐고 사고라도 났냐고 무슨 일 없는 거 맞냐고 꼭 무슨 일이라도 생겨야 하는 건가 라고 할 정도로 확인을 한다.





여전히 난 어머니와 통화하는 게 기분이 좋지 않다. 새끼 꼬듯 비꼬는 말투에 거기다 불안까지 던져 준다. 통화를 하면서




걱정마라 괜찮다 잘 될 거다





이런 말을 들어도 좋을까 말까인 고부사이인데  늘 통화의 시작은 불안이 담긴 단어로 시작한다. 주변에서는 그런 말을 내게 종종 한다




나이 드신 분들 어쩌겠어 그렇게 사신 분들 어쩌겠어





그래 그렇게 사셨다면 어쩔 수 없지 그 삶을 내가 통째로 바꾸려 할 수는 없을 테니 누군가 나의 삶을 바꾸려 한다면 나 역시 싫을 테니

대신 난 그 장단에 맞춰주지 않기로 했다. 어른들의 삶이 그렇다면 난 나의 삶도 있기에 그 불안에 같은 장단으로 북 치고 장구 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시어머니가 주는 불안이 아니라도 내 삶엔 다른 불안들이 많은데 굳이 그것까지 내가 감당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백신을 맞는다고 하니 맞았는지 괜찮은지 안부전화 감사하다 그런데 그 안부가 지나치면서 꼭 내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것처럼

연락을 했다.




누가 죽었다던데 누가 마비됐다던데..





꼭 백신을 맞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에게 이런 불안을 줘야 할까? 정말 통화의 끝은 짜증 그 자체였다. 시어머니가 그렇게 얘기하지 않아도 누구나 백신을 맞으면서 다 불안하고 겁이 나는데 "괜찮을 거다"라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감정은 전달된다. 내 목소리와 내 말투와 나의 감정이 상대방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난 불안을 받고 싶지는 않다.





죄송하지만 사양합니다 그 불안은 제가 받고 싶은 감정이 아닙니다. 넣어두시길 바랍니다. 그 불안

매거진의 이전글 두 번째 가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