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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이례 Jul 08. 2022

임신과 출산을 겪은 우리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자기 몸 긍정보다 "자기 긍정"

최근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이벤트를 겪었다. 그것은 바로, 9개월 동안 급작스레 몸무게가 늘고, 누워서 잠자기도 힘들게 배가 어마 무시하게 나왔던 것, 그리고 15센티 정도의 칼집을 내어 몸속에서 한 생명체를 꺼낸 것이다. 아기가 방을 뺐지만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는 배는 바람 빠진 풍선같이 쭈글쭈글했고, 여전히 몸 여기저기가 색소침착으로 거뭇거뭇했다. 한 마디로, 썩 보기 좋은 몸매는 아니라는 거다. 이 이벤트의 끝은 망가진 몸매가 아니다. 모유수유를 하며 가슴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것 같아졌고, 수유를 떠나 아기를 보살피다 보면 세수를 제때 하지 못하거나 머리를 못 감아 거울을 보기 불편한 상태가 되기 일수였다. 아니, 도대체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자기 몸 긍정"에 대해서 얘기를 할 것이란 말인가.

아가가 귀여운데는 다 이유가 있다.

솔직히 나는 임신 초기에 종종 울적하곤 했는데, 그 이유는 이 많은 몸의 변화를 혼자 겪어야 한다는 것을 참 억울해했기 때문이다. 배가 나오기 시작하고는 더했다. 나의 직업은 품질검사 엔지니어인데, 물건을 들어 올리거나 한참을 서있거나, 이동해야 하는 일이 많다. 내 의욕과는 다르게 체력적으로 제약이 생기니, 내 커리어 계발의 끝인 것만 같았고, 배가 나오며 평소 입던 옷을 더 이상 못 입게 되었을 때, 이 모든 우주가 나에게 일을 그만두고 집에만 있기 바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날, 이 부정적인 감정들이 급격한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따르는 혼란임을 문득 깨달았다. 그리고 덤덤히 받아들여 보기러 마음먹었다. 지금 시기는 경력에서 한 발 물러나 나와 태아의 건강을 우선해야 하는 시기임을 받아들이고, 체형의 변화도 받아들이며 임부복을 사고 편안한 옷들을 찾아 입었더니 덩달아 맘도 한결 가벼워졌다. 제대로 배가 나오기 시작한 6개월쯤부터는 오히려 "진짜 임산부" 티가 나니 스스로 변화를 받아들이기도 쉬웠고, 하루가 달리 쑥쑥 나오는 배를 보면 아기가 잘 크고 있는 것만 같아 벅찬 감정이 들기도 했다.


연예인 임신에 대한 흔하디 흔한 기사 제목. "애둘맘 안 믿기는", "임신 중에도 완벽한 몸매" 같은 수식어들 참 지겹다.


사회가, 미디어가, 임산부여도 날씬해야 한다고, 출산을 하고 재빨리 식단과 운동을 병행해 원래 몸무게로 돌아와야 한다고 넌지시 압력을 주지 않아도, 임신으로 겪는 많은 신체적 변화들은 이미 한 개인에게 충분히 버겁다. 이 신체적 변화들에 적응해 건강하게 산후기간을 보내고, 갑자기 부여된 엄마라는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여성은 충분히 경이롭다. 이번 글에서는 임신과 출산을 겪는 과정에서 여성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사회 속 무언의 압박과, 그 압박에서 벗어나 본인을 진정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여성 권리 신장의 시작점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나는 2년 전쯤 한 절친과 비장하게 약속을 했었는데, 그것은 바로 비슷한 시기에 임신, 출산을 해서 같이 육아를 하자는 것이었다. 약속이 무색하게,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는 진지한 말투로 내게 말을 걸어왔고 아주 기쁜 임신 소식을 알렸다. 친구의 임신 7개월쯤에야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임신하기 전과 크게 변화가 없어 깜짝 놀랐었던 기억이 있다. 친구가 평소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도 입맛이 없어했고, 나는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임신으로 입맛이 없는가 보다고 생각하고 말았었다. 아기가 태어났고, 친구는 꽤 오랜 기간 모유 수유를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모유에 영양가가 없어서 아기가 영양실조라는 얘기도 덧붙혔었다. 요즘 시대에 영양실조라니, 꽤 충격적이었지만 친구의 마음이 좋지 않을 것 같아 더 캐묻지는 않았다. 몇 년 후 나의 임신 소식을 듣고 둘이 만나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제야 친구는 임신기간 동안 살이 찔까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었노라고 고백했다. 출산 후에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식단을 제한했기에 아기에게 좋은 영양을 줄 수 없었다고 잘 챙겨 먹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 친구는 유별나게 다이어트를 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얘기를 듣고 난 한참 생각에 빠졌다. 외모가 중요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것도 아닌, 아주 평범한 우리들이 임신 중에도 날씬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건 사회의 문제일까, 개인의 문제일까.

프랑스 채널의 한 진행자는 만삭까지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그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이고 좋았다.

요즘은 연예인의 사생활을 유튜브나 관찰 프로그램을 통해서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임신한 연예인들의 모습이 종종 공개가 된다. 하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임신한 여배우들의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고, 무언의 약속처럼 임신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와서야 다시 공개석상에 나타나고는 했다. 우리가 꼭 한 번쯤은 봤을법한 "XXX 배우, 출산했다고 믿기 힘든 완벽한 몸매"와 같은 기사 제목은 꼭 따라온다. 이 글을 작성하며, 네이버 뉴스 검색에 "임산부", "임신"을 쳐보았는데, 한 아나운서가 임신 24주에도 열일하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그리고 단연 배우 이하늬의 만삭 화보 기사가 눈에 띄었는데, 임신하고 느끼는 행복한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어 화보를 찍는다는 그의 말이 참 예뻤다. 이 두 기사가 공증하는 것은, 우리는 지금까지 임신한 공인을 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임신으로 오는 신체적 변화로 공개되길 꺼려하기 때문인지, 편견을 가진 사회적 시선 때문인지, 우리는 왜 임신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없었는지 고민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출처: Rita Payés의 트위터

프랑스 티비의 Meilleur Pâtissier (직역: 최고의 파티씨에)라는 디저트 만드는 프로그램을 남편과 종종 보는데,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만삭까지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당시 임신을 하고 있지 않았던 내 눈에 그녀는 아름다웠고 멋져 보였다. 또, 목소리가 매력적인 Rita Payés라는 스페니쉬 재즈 아티스트는 만삭까지 콘서트 투어를 소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진 속 오른쪽) 숨 쉬듯이 자연스레 노래를 부르는 아티스트라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긴 했다. 우리나라의 가수가 만삭까지 무대 공연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도 안 된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예시가 나오길 바란다.)


만삭의 임산부들이 커진 가슴, 볼록 나온 배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원하는 옷을 입을 수 있기를 바란다. 또, 본인의 생활을 가능한 한 만삭까지 열심히 유지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임신 기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사회가 강요하는 미적 기준에서 자유로워져, 어느 순간에도 내 본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빛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어떠한 내 모습이라도 사랑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 이 바람들은 모든 예비엄마들, 엄마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지만, 나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나 역시도 나 스스로를 완전히 사랑하기 어려워 마음을 괴롭힌 날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다시 긍정적일 수 있도록, 임신 중에 크게 도움이  남편의 말들을 공유하며 글을 마무리 지어볼까 한다.


임신과 출산을 겪고도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만들어 준 남편의 어록 세 가지

1. 튼살 생길까 조마조마하며 매일 밤 오일로 배를 보습하는 것에 지친 어느 날

남편에게 괜히 투덜거리며, "튼살 생기면 자존감이 떨어진대"라고 말했더니, "엇, 나는 어렸을 때부터 튼살 있는데,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던데?"라고 아주 쉽게 받아쳤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는 모습에 '자기 일 아니라는 거야 뭐야'라고 생각하며 얄미워했지만, 생각해보니 나도 고등학교 때 생긴 튼살이 이미 있었다. 튼살이 있어도 매일 보이는 것도 아닌 데다 내 멘탈에도, 잘 사는 데에도 아무 지장이 없더라 싶었다.


2. 어떤 자세도 편치 않아 잠을 잘 못 자 다크서클이 늘던 막달

거울 안 봐도 이미 눈 밑이 축 처지는 피곤함이 만성적이던 시기에 나를 좀 안쓰럽게 봐주길 바라는 마음에 "요즘 나 어때 보여?"라고 남편에게 물었다. 당연히, 피곤해 보인다는 대답이 돌아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예상 밖의 답변이 돌아왔고, 그 답변은 내 사고방식을 180도 바꾸게 되었다. 남편은 내게 활짝 피고 있는 중인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내가 오히려 팔짝 뛰며, "아니, 이렇게나 얼굴이 피곤해 보이는데?"라고 되물었고, 남편은 내가 피곤해 보이기는 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이고 행복해 보인다고 말해주었다. 생각해보니 태동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행복감을 자주 느꼈고, 인생에서 느껴보지 못한 벅차오르는 감정들을 느끼는 중이었다. 남편의 말 한마디에, 거울을 볼 때 다크서클에 집중하기보다 나의 어디가, 어떻게 좋아 보이는지 찾기 시작했다.


3. 임신하고 출산을 겪으면, 여자로서의 매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그냥 그런 날이 있다. 평소에는 귀 담아 듣지 않던 남들의 말에 괜히 신경이 더 쓰이는 그런 날. 또 왠지 그런 날은 괜히 남편에게 더 심술을 부리고 싶어 진다. "사람들이 말하기에, 임신하고 출산을 겪으면 남편에게는 아내가 여자로서의 매력이 떨어져서 여자로 보이지 않는데"라는 쓸데없는 말을 하면서 "내가 더 이상 여자로 보이지 않지?"라는 바보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실제로 어떻게 생각을 하든 당연히 계속 여자로 보인다는 답변을 듣고 싶어 물은 질문일 것이다. 남편은 고민도 않고 답을 했다. "아니, 여느 때보다도 훨씬 더 여자로 보이는데?" 이 답을 듣고, 나는 말문이 막혔다. 정말 우문현답의 정석이었다. 이 답은 두고두고 생각해 봐도 뒤통수가 탁 쳐지는 옳은 대답이다고 생각한다. 이 대화를 나눈 후에,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 또 한 번 바뀌었다. 나는 지금 한 여성으로서 아주 귀한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구나하고. 그리고, 여자로 보인다는 것이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확실한 건, 내 배가 쭈글쭈글하던, 만성피로에 시달리던, 내 아가가 내 인생에서 이룩한 것들 중 가장 아름다운 걸작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아니, 내가 어떻게 이런 예쁜 아기를 만들어냈지"하며 본인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된다.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예비 엄마들과 엄마들, 마음 놓고 본인을 더 많이 사랑하며 사회의 편견에 굴하지 않고 앞으로도 활짝 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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