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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이례 Nov 07. 2022

세상은 얼마나 더 위험해졌는지?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육아휴직기간 겪은 작은 에피소드이다. 10살 딸아이는 학교 친구들을 종종 집에 데리고 와서 노는 걸 좋아한다.  그날도 한여름의  무더운 날씨여서 놀이터에서 몸으로 뛰어노는 것보다는 집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친구들과 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집에 놀러 오기로 했던 친구가 갑작스럽게 엄마의 허락을 맡는 과정에서 허락을 못 받았다고 한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00이네 집은 엄마가 일하시고 아빠만 집에 계셔서 여자인 네가 집으로 놀러 가기엔 좋지 않아. 다음에 00이네 엄마 계실 때 놀러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무슨 이야기인가 했는데 와이프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와이프의 한마디로 그 상황이 정리된 것이다.

"00 이가 아빠만 있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오빠는 안 불안해?"

반대 상황의 나였어도 조금은 불안했을 것 같았다. 씁쓸하지만 딸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선 조심 또 조심이 최선이 아닌가 생각했다. 남자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자기 자식의 고추 하나를 조심시켜야 하고 여자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동네의 모든 고추를 조심해야 한다는 농담을 들으면서 일면 이해가 되면서도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되었지?


[6년전 발생한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 현장에서의 추모객들]

최근에 뉴스와 SNS를 통해 접하는 흉악한 여성 대상의 범죄 많아 딸을 키우는 부모로서 무척이나 신경이 쓰인다. 신경 쓰인다는 정도의 표현으로는 너무 부족할 정도로 사건은 끔찍하다.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 여성을 살해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의 전주환, 미성년자 성범죄자인 김근식의 출소 소식 등을 뉴스가 연일 보도하고 있다.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따르면 강간 피해자가 진단 가능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을 확률은 전쟁 피해자의 4배라고 한다. 총에 맞고 폭탄이 날아가는 전쟁통에서 겪을 수 있는 스트레스보다 강간을 당하는 것이 4배 더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몸에 박혀있는 고통의 기억을 평생 지닌 채 살아가야 한다. 매일 마주하는 일상적인 공간이 전쟁터보다 더 고통스러운 장소로 변하는 것이다. 단 한순간에 의해서, 자신의 어떤 과오도 없이 말이다. 한 사람의 전 생애를 통틀어 무자비하고 거대하고 끝없는 고통을 살아가게 된다.  그 사건 이후의 삶은 그전에 어떤 삶을 살았던지 간에 완전히 다른 삶을 그에게 펼쳐준다.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본인의 몸을 부정하고 싶은 기분으로 살아가게 한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예외적이고 일부의 이야기이거나 비일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이 처한 끔찍한 범죄는 우리가 매일 스쳐가는 일상적인 장소에서 벌어진다. 탱크가 지나다니고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터라는 공간이 아니다. 출근과 통학을 위해 매일 지나다니는 지하철 역, 공원의 귀퉁이, 누군가의 집처럼 일상의 공간이다. 멀끔한 얼굴과 옷차림을 하고 우리를 스쳐가는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친구인 사람에 의해서 말이다.


이런 사건은 개인의 이슈로 개인이 조심하거나 대응해야 할 차원의 것이 아니다. 여성 대상 성범죄 연결되어 있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내 주변의 사람들이다. 내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지만 그 사건을 듣고 여성인 나의 행동을 조심하게 하고 나의 옷차림을 조심하게 한다. 우선 나만은 그런 피해를 입지 말자 나를 더 단단히 감싼다. 이런 폭력은 여성에 대한 불평등의 원인이기도 하고 결과이기도 하다. 불평등의 결과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생기고 그런 폭력으로 인해 불평등이 더욱 강화되고 지속되게 한다고 리베카 솔닛은 이야기한다. 미디어에 넘쳐나는 여성 혐오 혹은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성을 더욱 움츠러들게 하고 더욱 자기 검열을 하게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낮추고 존재를 지우는 여성들이 늘어날수록 폭력의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인 징계의 수위가 낮아진다. 그럴수록 더욱 목소리를 드러내야 한다. 여성들만 아니라 남성도 같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내 딸이, 내 딸의 친구가 내 아내와 어머니가 이런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지 않도록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같이 우리 모두를 지켜야 한다.


혜화역 성차별 반대 시위현장


아직도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는 수많은 여성, 약자들이 있다. 전쟁은 잊혀선 안된다. 전쟁은 끊임없이 노출되어야 하고 전쟁의 반대를 위해 누구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장애인을 만드는 것은 장애인 본인의 손상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구조적인 환경에 의해 장애인이 생기는 것이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선 휠체어 장애인은 장애인이 아니다. 수많은 계단을 만든 비장애인들의 산물이 휠체어 장애인을 만드는 것이다) 같은 논리로 폭력에 노출되는 여성이 생기는 것은 여성의 문제, 피해자 본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구조적인 문제인 것이다. 불평등을 야기하고 지속 강화하는 남성 권력층들에 의해 전쟁은 더 이상 전쟁이 아니게 되고 사라진다. 불평등이 범죄를 만들기도 하고 그런 범죄들이 불평등을 더 고하게 만든다. 범죄를 다루는 시선이나 뒤의 대응에 따라 말이다. 여성에 대한 범죄가 힘을 가진 남성들에 의해 사회에서 묻히게 되는 사례들을 우리는 숫하게 목격했다. 그런 거대한 힘으로 인해 전쟁에서 소리가 지워지고 결국 피해자가 사라지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진다.  


미투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더 많은 사람이 미투를 지지했으면 한다. 동네의 모든 고추를 조심하기보다 내 주변의 모든 고추들이 조심하는 날이 시급히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참한 결말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결말의 모습이 있었으면 한다. 글을 쓰는 과정 중에 이태원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를 당한 분들에 애도를 표한다. 희생된 이들과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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