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을 보내고 난 뒤 과음한 덕에 느지막이 일어나서 짬뽕과 탕수육을 시켜 먹었다. 오랜만에 약속이 없는 토요일, 뭘 할까 하다 급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나는 즉흥적으로 가는 여행을 좋아한다. 어느 날 갑자기 제주도나 강원도로 향하거나 저녁 시간이 다 돼서 놀이공원에 가기도 한다.
여행 스타일이 다른 이는 철저하게 시간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가야 마음이 편하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나는 심지어 해외여행도 구체적인 계획 없이 간다. 그래도 관광지에서 놀 거 다 놀고, 먹을 거 다 먹고 온다!
물론 예정된 일정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도 삶의 낙이 된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에 특별한 이벤트가 되는 일들, 뻔한 전개에 예상치 못한 것들은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든다.
내일은 일요일이겠다. 우리에게는 내일까지의 자유가 있다. 일요일 밤에 돌아와서 비록 월요일에 출근하기 조금 피곤할지언정 나는 오늘을 산다!
부산으로 갈까? 아냐 부산 1박 2일은 아까워. 2박 3일은 가줘야지. 강원도는 많이 갔었는데... 차를 타고 갈까 하다 오랜만에 멀리 떠나자 해서 코레일톡 앱을 열었다.
그때 딱 내 눈에 띈 여수! 몇 해 전 여름, 여수에 갔을 때 좋은 기억이 있어 바로 예매를 했다. 성수기도 아니라 숙소는 카드만 있으면 결제를 할 수 있다.
씻고 바로 역으로 갔다. 1박 2일이라 챙길 짐도 별로 없었다. 기차 여행의 시작은 햄버거지! 버거킹에 들러 좋아하는 콰트로치즈와퍼 세트 2개를 포장했다.
여행자의 설렘을 안고 기차에 탑승했다.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끼고 첫 번째 곡으로 여수의 주제가 같은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들었다.
"뭐 하고 있냐고?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몇 시간 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달리는기차 안에서해넘이를 눈으로 담았다. 언제부턴가 해돋이보다 해넘이가 좋다. 상상 이상으로 다양한 색을 품고 있는 하늘. 무궁무진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동경한다. 오늘은 뭉클한 오렌지빛이다!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해치운 뒤 약간의 수다를 떨다 다시 이어폰을 꽂았다. 음악 스트리밍으로 멜론을 이용하는데 플레이 리스트가 있지만, 가끔 나를 위한 맞춤 라디오를 듣는다. 몰랐던 좋은 노래를 발견할 수 있는 기쁨에!
오답 (Feat. 이민혁 of BTOB) - 김나영
"이유가 되잖아. 아무 이유가 없는 것도."
첫 곡이 흘러나오는데 처음 듣는 노래 속 가사. 김나영 님의 오답. 이별 노래이긴 하지만 가사가 와닿는 부분이 있어서 살짝 공유한다.
"모든 하루에 정답이 있었다면 그때 우린 몇 번이나 틀린 걸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선택지는 많고 정답은 없지.
드디어 여수에 도착했다.반짝이는 여수밤바다,이걸 보러 달려왔다!기억해야지, 여수 밤바다.그날의 공기와 온도.
택시 기사님이 데려다준 장소는 여수 낭만포차거리였다.밤바다 앞 포차 거리는낭만을 품은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물론, 나이와 상관없이 마음이 젊은 분들도포함이다. 그 뜨거운 열기에 나도 동참했다.45번까지였나? 쭉 이어진 포장마차,신나는 노랫소리, 시끌벅적한 분위기.
7번 '삼합 잘하는 예쁜 오빠'네로 들어갔다.양념이된 돼지고기, 낙지, 새우, 키조개, 관자그리고 각종 채소들을 볶아먹는삼합. 맛이 없을 수가 없잖아.잎새주에서 나온 소주 '여수 밤바다'를 마시고 분위기에 취했다.
바다를 보고 별도 보며,그렇게 새벽은 깊어졌다.여수 여행은 두 번째인데, 두 번 보니 다르다.그동안 많이 발전했고 달라졌다.
첫 번째 여행 때도 오동도에 갔었는데,그땐 유람선만 타고 섬을 제대로둘러보지 않았다.여름이라 더워서였나계단이 많다고 힘들어서였나?
이번에는 해상 케이블카를 타고,동백열차도 타고 오동도로 향했다.섬 모양이 오동잎처럼 보이고,예전부터 유난히 오동나무가 많았다는 오동도.
둘러보면서 이곳이 이렇게아름다운 곳이었나 새삼 놀라웠다.책도, 영화도 두 번 봐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그때의 나는 왜 귀찮고 힘들다는 이유로이런 아름다움을 그냥 지나쳤나 반성하면서. 두 번 와서 보라고 그런 거겠지!
걸을수록 좋은 곳이 나왔다.괜히 한려해상 국립공원이 아니었다. 섬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데,보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 것이 다르겠지.
운동부족인 나는 다리가 아프다고투정도 부렸지만, 여기까지 와서이걸 안 보고 갔으면 어쩔뻔했나싶을 정도로 절경이 이어졌다.
눈으로, 마음으로더 많이 담아 가기로 했다.중간에 내려서 1분 동안 풍경을감상하고 오라던 택시 기사님의 푸근한배려도 있었다.
지나가며차에서 볼 때와 직접 볼 때랑은 다른 경치에 감탄했다.나도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바람이 불었지만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비성수기라 주말인데도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줄을 서서 먹는 맛집도 그냥 들어갈 수 있었다.그리 춥지도 않았던 걸 보니운이 좋았다!
여행을 마친 지금,두서없이 써 내려가는 문장들이지만생각해 보면 좋은 것들 투성이다.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란색이었고,눈부시게 빛나던 햇살은 일렁이는 물결을물들이며 바다를 더 예쁘게 만들었다.필터 없이 기본 카메라로 찍은파아란 하늘을 보며 벅차게 달아올랐다.
자기 전에 마신 캔맥주, 만족스러웠던 조식,지나가는 길에 먹은 핫도그, 새콤한 서대회무침, 오동통한 갈치조림, 톡 쏘는 갓김치,시장에서 먹은 길거리 음식, 오션 뷰 카페.철저히 먹방 위주의 여행도 여행의 묘미!
여수가 좋다.이유가 되잖아, 좋은데 이유가 없는 것도.아니지, 이렇게나 좋은 것들이 많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