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켜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서 간접 등을 켰다. 시력이 좋지 않아 대충 보니 깨끗해 보였다. 흐린 눈으로 사람을 마주하면 잡티가 덜 보이고 예뻐 보이는 효과도 있지만, 선명하게 보고 싶을 때도 분명히 있다.
다시 불을 환하게 켜니 바닥에 보이지 않던 머리카락들이 보인다. 하나를 주우면 또 하나가, 그 옆에 또 하나가, 발자취를 따라가면 두 개, 세 개. 돌돌이를 돌린다. 이러다가 청소기까지 꺼내든다. 머리카락은 주워도 주워도 매일 나오는 신기한 녀석이다. 머리발이라 머리카락을 빡빡 밀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거실 바닥을 청소하면서 자연스럽게 방까지 들어갔다. 갑자기 꽂히니까 구석구석 먼지가 눈에 들어온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 이렇게 방치하고 있었을까?
온 집안에 불을 모두 환하게 켰다. 꽂히면 해야 하는 성격이라 청소 삼매경에 빠졌다. 깔끔해진 집을 보니 내 마음도 깨끗해졌다. 오늘의 작은 성취로 뿌듯함이 밀려오다니! 사소한 것에서도 교훈을 발견할 수 있는 내가 대견해서 셀프 칭찬을 했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과 소중한 일상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 시각을 가진 사람이라 다행이다. 별거 아닌 일에 굳이 의미 부여를 하는 나라서 좋다.
내 마음에 불을 켜면 주변이 환해지고 세상이 다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한다.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치우면서 생각했다. 마음이 어지러우면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해 보이던 것들이 청소를 하면 밝아진다.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처럼 덩달아 기분까지 좋아진다. 긍정은 긍정을 낳고 환하게 번져가며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집안처럼 마음도 매일매일 쓸고 닦아서 윤기 나게 만들어야겠다. 더러워지면 또 깨끗하게 청소하면 되니까. 마음아 어지러워져 봐라, 내가 말끔히 치워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