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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한 하루 Feb 24. 2021

운동화가 닮았다.


월화수목금금금을 사는 남편을 두고 친정에 왔다. 내가 빠진 가족에 내가 더해지니 완전체다. 일을 마치고 온 동생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누나가 있으니 너무 좋다"며 소리를 지른다. 거기다 아빠 책상을 어지럽히고 엄마 옷을 모조리 꺼내고, 동생이 초등학생 때 받은 종이별 상자를 찾아내는 아이까지 있으니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치우는 나는 눈물이 날 지경이지만...    


관심을 듬뿍 받아서인지 아이는 잘 때만 나를 찾았다! 기분 좋게 낮잠을 재우고 나와보니 아빠 내 운동화를 씻고 계셨다. 결혼한 딸, 이젠 아이도 있는데 모양새가 영 아니었다. 몇 번을 말려도 “운동화는 내가 잘 씻거든. 놔둬라”하시며 끝내 손에 물을 묻히셨다.     


우두커니 서서 신발을 바라본다. 지난여름,  백화점에서 산 운동화였다. 남편과 아이 물건을 살 때와 달리 내 것에는 단념이 빨랐다. 그날도 십만 원이 넘는 가격표를 보고 몇 번을 망설였지만, 출산한 나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그 운동화는 내가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운동화를 신고 계절을 걸었다. 촉촉한 여름 단비가 스며드는 걸 느꼈고,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가을 소리를 들었다. 발목까지 차오른 눈을 헤치며 아이를 병원에 데려갈 때도 운동화는 함께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지금, 여름 운동화를 신고 온 철없는 딸을 보듬듯 아빠는 묵묵히 신발을 씻으셨다.

   


덕지덕지 묻은  벗겨아빠는 이번엔 물에 잠긴 당신 신발 한 짝을 집어 들며 말씀하셨다. “나는 이번에 시장에서 만 원 주고 운동화 샀는데 제법 괜찮아. 앞쪽이 약간 균형이 안 맞는 것 같은데 신고 다니기에는 아무 문제없어."


아빠는 발이 예민하다. 덕분에 엄마는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아빠에게 맞는 신발을 찾아다다. 색상은 검정과 진한 갈색만 가능했고 무엇보다 아빠가 신었을 때 편해야 했다. 힘들게 찾은 신발 단종됐을 때 엄마는 절망했고, 미리 두 켤레를 사놓지 않은 자신을 탓다. 아빠 물건은 늘 엄마 몫이었다.


이런 아빠가 직접 시장에 가서 만 원을 주고 운동화를 사다니! 아빠는 후에 달라지셨다. 손에 들던 가방을 내려놓고 크로스백을 매셨고, 아이 같다며 입지 않던 패딩점퍼도 입으셨다. 와이셔츠만 고집하던 예전과 달리 자주색 티셔츠 하나를 집어 들며 "김여사, 하나 사주소." 하 엄마에게 애교도 부리셨다.    


생활도 바뀌셨다. 아침에는 국을 먹어야 든든하다더니 "사실 나는 아메리칸 스타일을 좋아하거든"하시며 떡이나 빵을 드셨고, 수중에 여유가 있면 맥모닝으로 아침을 맞으셨다. 좋아하는 축구경기가 새벽에 있을 때면 알람까지 맞춰서 보시고 아침이 되어 잠들기도 하셨다.

  


변한 아빠 모습을 엄마에게 전해 들을 땐 설마 했지만 직접 내 눈으로 보니 웃음이 나왔다. 아빠 만 원짜리 운동화 예찬하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 엄마가 속삭였다.


"누가 멀쩡한 운동화를 버려놨길래 집에 가져왔거든. 사이즈도 아빠랑 딱 맞더라고. 근데 너희 아빠가 뭐라는 줄 아나?

이 사람아! 멸치도 뼈대가 있는데! 안 신는다!

그러더니 시장에서 저 만 원짜리 운동화를 사 왔다. 참나. 그냥 신으면 되지. 안 그렇나?"


만 원짜리 운동화에 서린 엄마의 투정이 더해질수록 그날의 아빠가 그려진다. 30년이 넘게 엄마가 사 온 구두만 신다가 직접 운동화를 사러 가신 마음은 어떠셨을까. 이왕 사려면 좋은 것으로 사시지. 왜 하필 그날 시장에 가서 만 원짜리를 사셨을까. 신었을 때 불편하셨면서.


어느새 말간 얼굴을 한 운동화 두 켤레가 창 밖에 다. 가격, 색상, 사이즈 어느 하나 같은 것 없는 두 운동화가 닮았다. 당당히 만 원을 내밀고 찾은 자존심 서린 운동화, 그 옆은 엄마 비껴난 나를 찾으려는 운동화가 란히 놓다. 내리쬐는 볕에 눈이 시리지도 않은지 하늘을 향해 꼿꼿이 고개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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