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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약 Oct 22. 2023

아이를 키운다는 것

"사실은... 내가 네 친엄마가 아니야..."


어린 시절, 어깨너머로 본 드라마엔 이런 충격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친엄마가 아니었대. 병원에서 아기가 바뀌었대. 그래도 주인공은 키워준 엄마를 택했대...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늘 생각했다. 그래, 먹여주고 재워주는 게 얼마나 중요하냐. 함께 한 세월이 있는데... 아이를 낳는 것보다 키우는 게 더 중요하지. 


그래서 생각했다. 만약 우리 부모님이 생물학적 친부모가 아니더라도 나는 고마운 지금의 부모님을 택하겠다고. (사실은 이렇게 걱정(?)한 이유가 있었다. 부모님 결혼기념일은 12월인데 내 생일은 7월. 결혼하시고 그다음 해에 내가 태어났는데, 이게 내가 팔삭둥이라는 소리인지 주워왔다는 소리인지...? 다행히 나는 부모님의 조금 이른 사랑의 결실이었다고 한다. ^^) 


어른이 되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다.


엄마 역할 1단계 '아이 낳기'를 잘 마쳤으니 이제 엄마 역할 2단계 '아이 키우기'를 시작해야 했다. 어쩌면 낳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모범생으로 살아왔던 나는, 이번 과제도 잘 해내리라 생각했다.


꼬물거리는 핏덩이 앞에 막막함이 밀려왔다. 아이를... 과연 잘 키울 수 있을까?... 


'키운다'는 건 무엇일까? 사실 지금의 나에게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나의 노동은 단지, '오늘 하루 너와 나의 안위를 바라는' 애씀일 뿐,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신생아에게 먹고 자는 건 매우 치열하고 중요한, '삶' 그 자체였다. 먹여주고 재워주니(?) 아기는 잘도 먹고 잤다. 하지만 절대로 평화롭지만은 않은 하루였다. 나는 아기에게 한쪽 쭈쭈를 물렸다. 그리고 동시에 미역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 마셨다. 아이와 나는 그 시간들을 처절하게 무사히 지나왔다.


이것은 '돌봄'이다. 그 자체로 매우 가치가 있다. 안전과 안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니 말이다. 그러나 슬슬 정상적인 잠을 잘 수 있는 시기가 되자 정신이 들었다. 아이를 이렇게만 양육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라는 이름에 스스로 익숙해질 때쯤이었다.

 

처음엔, '아이를 키운다'는 게 너무 오그라들었다. '나는 너무나 부족한 사람인데, 기껏해야 아기를 돌보는 것인데...' 키우는 건 영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슬슬 사람다워지는 아기를 보니 더 이상 '키우는 사람의 정체성'을 어색하고 부끄럽다며 모른 척할 수 없었다.


'키우는 것', '자라게 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이건 아마도 느리지만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꾸준히 성장시킨다는 개념이 아닐까? 오늘 하루 내일 하루는 변화를 알 수 없지만, 어떠한 귀한 마음과 가치관을 가지고 아이를 하나의 사람으로 성장시킨다는 게 아닐까? 어휴.. 막막함에 한숨이 나왔다. 


(사실 나는 쇼핑을 즐기지 않는다. 그런데 자라나는 아이를 위해선 계속 무언가를 (가령 90, 100, 110, 120, 130의 옷 등을) 시의적절하게 사야 했다. 그것도 수많은 선택지 중에 골라야 했다. 여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키움이란 이런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지속성, 연속성, 방향성 등 시간을 관통하는 눈을 갖는 것... 오늘도 아이를 키우며 살아내고 있는 모든 엄마들을 존경한다...)


부모의 역할을 공부하기로 했다. 육아서를 읽었다. 빈틈없이 체계적인 방향 설정이 아니라, 적절한 존중과 거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돈도 안 나오는) 특별한 매니지먼트 과정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와 많이 대화하고 마음을 살피기로 했다. 잘 관찰하기로 하였다. 함께 나눈 예쁜 말, 그 순간의 공기, 그리고 나의 힘겨운 마음부침까지... 찰나여서 더 소중했던 일상을 기록했다. 이 일상의 모음에 의미와 기쁨을 느낀다. 


키우는 동안, 아이는 자라났고 나도 성장했다. 엄마라는 이름이 감사하고 평범한 오늘이 좋다. 나의 작은 순간들이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솔직하고 담담하게 소복이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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