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사용한 휴대폰을 바꿨다. 통신사도 알뜰폰으로 옮기며, 실적을 채우면 한 달에 무려 2만 3천 원이나 할인받을 수 있는 새 카드를 발급받았다. 카드 발급 과정, 직업 선택란이 있었다. 회사원, 전문직, 자영업, 프리랜서 등... 이 중에 난 무엇을 택해야 할까...
고민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원래 약사다. 면허를 받고 약사가 된 지 10년이 넘었다. 그런데 첫째를 임신하며 퇴사한 후 면허 활용을 안 하고 있으니 회사원도 아니고 전문직이라기에도 민망하다.
그렇다고 계속 놀기만 한 것은 아니다! 평일엔 충분히 아이를 돌보며 주말에만 잠깐 일하고 돈을 벌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야심 찬 기조 아래 대단한 일을 꾸미기도 했다. 몇 번의 취미 꽃꽂이 경험을 발판으로 (아기의 돌잔치에 생화로 돌상과 파티 장소를 꾸며주는) 파티플라워 사업을 차렸다. (파티는 보통 주말이기 때문에.) 그러나 난 운전을 못했다. 결국 매번 남편을 대동해야 했고 맡길 곳 없는 2살의 아이도 늘 함께 데리고 다녀야 했다. 지속 가능성이 부족했다. 6개월 만에 사업을 접게 되었다. 그러므로 난 자영업자도 아니다.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도 남편도 고생시키지 않겠다며 온라인으로 돈을 벌리라 다짐했다. 그래서 스마트스토어도 준비했다가 말아먹고, 인스타, 블로그, 브런치도 두드렸다가 말아먹었다. 그러니 프리랜서라기에도 영 면목이 없다.
결국 난 주부를 택했다. 월급이 따로 없는 주부... 이것이 현재의 내 직업이다.
오랜만에 '진짜' 일감이 왔다. 둘째의 만삭 무렵이었다.
대웅제약에서 약사와 약대생을 위한 교육 플랫폼을 론칭하는데 나를 섭외하겠다고 제안이 왔다. (섭외는 블로그를 통해서였다. 이전의 외부 강의 경험을 기록해 놓은 덕분이었다. 결국 블로그를 운영해 보겠다며 노력했던 게 도움이 되긴 됐다. 역시 어떤 경험이든 인생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 사실 실무에서 물러나있던지 한참이라 약학 지식 관련해서 자신감은 떨어져 있었다. 심지어 일반인도 아니고 약사와 약대생 대상의 교육이라니, 부족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나의 커리어를 발전시킬 아주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내가 발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결국 섭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녹화 예정 시일까지 거진 6개월의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제안을 수락한 후 곧바로 출산과 신생아 육아 및 난생처음 겪는 애둘(two) 육아가 이어졌기에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거기다 특유의 (MBTI) P스러운 게으름과 미룸의 콜라보로 거의 4개월의 시간이 쥐도 새도 모르게 지나가버렸다. (언제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절대 잘 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몇 번의 담당자 교체가 있었고, 따스한 어느 봄날, 날씨처럼 인상이 좋은 (최종) 담당자 분과 대면 기획 회의를 열게 되었다.
이날 다시 느꼈다. 엄마가 일을 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미팅 날, 둘째는 100일 무렵의 아기였다. 당연히 회의에 아기를 데리고 갈 수도, 평일에 아기를 봐줄 사람도 없었다. 결국 난 직장에 다니는 친정엄마에게 손을 벌렸고, 엄마는 하루 휴가를 내어 아기를 돌봐주러 오셨다. 당시 아기는 모유 수유 중이었다. 갑자기 배고프다며 할머니가 달래지 못할 정도로 울어 버릴 수도 있었기에, 친정 엄마는 내가 카페에서 회의를 하는 동안 카페 앞에서 마트 주위를 유모차를 끌며 수없이 배회하셨다. (그래서 그다음 기획회의는 모두 줌미팅으로 요청했다. 집에서 아기를 재우고 줌미팅에 참여했다. 제약회사-촬영업체-강사인 나, 이렇게 3자 간 미팅들까지 사측에서 모두들 나에게 많은 배려를 해주셨다.)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건 매일 하는 일도 아니고 프로젝트처럼 단편적으로 주어진 일이었는데도, '엄마의 일'이므로 정말 쉽지 않은 사건이었다. 자료 준비 시기, 친정집에 가서 엄마에게 아기를 맡기고 밥도 얻어먹으며 책과 논문을 살폈다. ppt를 만들 때에는 신랑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촬영날이 다가왔다. 원래는 전처럼 친정 엄마가 동행해서 아기를 봐주기로 하셨다. (아직도 아기는 모유수유 중이었다.) 그러나 촬영 이틀 전 갑작스러운 엄마의 코로나 확진 소식이 들려왔다. 당황한 나는, 또 죄 없는 엄마에게 쓴소리를 했다. 건강 괜찮으시냐는 위로는 못할망정 이제 내 촬영 어떻게 할 거냐며 투정을 부렸다. 이 다급한 상황에 신랑이 정신을 붙잡았다. 부리나케 아기 돌봐줄 사람을 수소문해 주었고 다행히 큰 시누이가 촬영 날 동행해 주기로 했다.
첫째의 돌봄은 평소처럼 유치원에서 맡아주었다. 하원 후의 문화센터 발레 수업은, 또 전날 앞집 엄마에게 부탁해 아이와 함께 가달라고 요청했다. 신랑은 나를 위해 평소보다 늦게 출근하겠다고 회사에 양해를 구했다. 부탁과 요청과 양해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준 후 차를 타고 메이크업 장소로 향했고, 메이크업 샵에서 나와 아이를 서포트할 사람은 남편에서 시누이로 교체되었다. 그날 시누이는 아기를 돌보며 참 많은 고생을 했다. 많이 우는 아기를 보면서 엄마의 삶이 힘들다 느꼈단다. 새댁인 시누이는 당분간 아기를 낳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한 달 후 진행된 두 번째 촬영에서도 역시나 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어느 여름, 삼성동 모 카페에서 포대기로 들쳐메고 2시간 동안 갖가지 과일을 먹이며 아기 돌보던 할머니를 보신 분은 연락 주시라. 그게 바로 일하는 딸을 둔 엄마가 손주를 대신 돌봐주는 처절한 상황의 일부라 말씀드리고 싶다. 엄마가 일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아주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런 모든 의미에서 워킹맘을 존경한다. 매일 아침, 출근 준비 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퇴근 후 집에 데려온 아이와 놀아주고 밥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이 모든 과정을 쉬지 않고 반복하는 워킹맘을 존경한다! 워킹맘 곁에는 그 엄마를 서포트해 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할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게 남편이든, 친정 엄마든, 결혼 안 한 여동생이든, 이모님이든, 기관이든, 제도든... 워킹맘에게 무조건 누군가는 필요하다.
내가 요 작은 돈벌이를 준비하는 동안, 아이는 참 좋아했다. 엄마가 매일 밤 열심히 공부한다는 사실을. 침실에 잠들어있다가도 밤중에 문득 깨어 거실에서 공부하던 내 곁으로 와 무릎배게를 하고 누웠다. 이 귀여운 아이는, 촬영을 한다며 오랜만에 화장한 엄마가 또 퍽이나 마음에 들었나 보다. 촬영을 마치고 부리나케 달려갔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한참 늦게 하원하게 해 서운한 표정이리라 싶었는데... 아이는 예쁜 엄마를 보더니 신이 났다.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예뻐! 엄마는 인어공주, 엘사, 스텔라, 알라딘 공주, 시크릿 쥬쥬 같아!"라며 예쁘고 좋은 말을 죄다 갖다 붙인다. 덕분에 나는 또 힘이 나고 행복해지고 참 고마웠다.
그래서 앞으로는 나는 무슨 일을 전업으로 하고 살아야 하나...? (여전히 내 직업은 주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