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는 토마토일 뿐이었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러나 어느 봄, 나는 미친년마냥 아파트 상가에서 엉엉엉 울었다. 토마토는 나에게 슬픔이 되었다.
봄이었다. 신랑은 이직에 성공했고 우리는 청약에 당첨된 후 중도금 1차까지 잘 마련하였다. 첫째는 새로 입학한 유치원에 잘 적응했다. 그리고 갓 태어난 둘째도 옹알이를 시작하여 가족의 진정한 일원이 되고 있었다.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첫째의 48개월 영유아 검진,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고작 5살인 아이가 안경을 써야 한단다. 아이의 건강을 자신했었다.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나는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0.5도 되지 않는 시력... 물론 아이들의 시력은 점점 좋아진다고 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뿌연 시야를 갖고 있으며 흑백만 구별할 수 있다고 하니까. 그러다 점점 시력이 발달하며 색도 구별한단다. 점점 더 또렷하게 초점을 맞출 줄 알게 된단다. 하지만 0.5라는 숫자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확실히 아이의 시력은 또래보다 많이 발달하지 않은 수치였다.
게다가 초점이 들쭉날쭉. 난시라고 했다. 안구의 끝에 물체의 상이 정확하게 맺히지 못한다고 했다. 너... 그동안 어떤 세상을 보고 있던 거니... 엄마와는 다른 세상을 보고 있던 거니?... ㅠㅠ
교정을 위해 내일부터 당장 안경을 써야 했다. 놀라고 충격적이었다. 그래도 기대해 보았다. 올해만 꾹 참고 고생하면 되는 걸까? 그러면 앞으로는 안경을 안 써도 되는 걸까?
아니었다. 성장해서 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어도, 안경을 벗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평생 안경을 써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충격이고... 슬픔이었다...
아이에게 부족한 시력을 물려준 것만 같아 미안하고 속상했다. 내가 아기에게 초점책을 열심히 보여주지 못한 탓일까? 너무 어두운 곳에서 안 좋은 자세로 책을 읽어준 걸까? 간지럽다고 눈을 자주 긁던 아이에게 적절한 조치를 못 해준 탓일까? 자책하는 마음만 들었다.
당장에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가 주눅 들거나 속상해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눈물을 삼켰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필 줄 아는 아이였다. 내가 슬퍼하는 것을 알면 엄마아빠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더 슬퍼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임했다. 선생님 말씀에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하여 자연스레 수긍하는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아이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검사과정이 낯설고 어려웠을 텐데 잘 이겨내고 정확하게 검사할 수 있도록 협조해 줘서 고맙다고. 이제 우리 **이가 멋진 안경을 쓰게 되었다고... 힘차게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시력은 만 6세에 완성된다는데 지금은 만 4세니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중에 발견해서 그때 안경을 쓰기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상황이라고 했다. 그래도 마음에 눈물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검진 다음날, 아이를 유치원에 보냈다. 그리고 둘째를 태운 유모차를 밀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때 새삼 알았다. 우리 아파트 상가에 안경점이 있다는 사실을. 안경점 문은 아직 열지 않았다. 나는 내부를 슬쩍 들여 보았다. 빨간색 뿔테안경을 쓴 어린이 모델의 사진이 보였다. 아이는 토마토라는 브랜드의 안경을 쓰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는 사람은 안다. 어린이 안경하면 토마토가 엄청나게 유명하다는 걸.) 아이는 아주 귀엽고 천진해 보였다. 그러나 그 밝은 웃음을 보며, 나는 우리 아이가 떠올랐다. 안경을 쓴 우리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안경 쓴 아이를 마주하는 나와 같은 수많은 부모들의 마음이 떠올랐다. 나는 그 자리에서 미친년마냥 엉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안경 쓴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걱정되었다. 주눅 들 아이가 걱정되었다. 아니, 그전에 흔들리는 내 맘이 걱정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저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살아간다. 누구나 아플 수 있고 다치면 치료받으면 된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에게는 그 부족하고 약한 부분이 눈일 뿐이다... 낯설어할 아이에게 용기와 의지를 알려주었다. '나쁜 게' 아니라 '약한 거'라고, 우리 열심히 노력해서 더 예쁘고 건강한 눈을 만들자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는 의외로 자연스럽게, 심지어 재미있게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안경점에 들러서 안경을 맞추는 길. 엄마 마음엔 되도록 얼굴을 덜 가리는 투명한 안경테를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는 패션 아이템마냥 예쁜 핑크 안경을 쓰고 싶다고 난리다. 그래서 우선은 렌즈만 맞추고 테는 함께 더 상의하기로 했다. 예쁘고 화려한 핑크로 선택하겠다는 걸 겨우 말리고 일단은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간다. 아이스크림 받고 하나 더를 외치며, 결국은 엄마가 이겼다.(?) 결국 5살 아이의 첫 안경은, 투명한 안경테에 귀여운 유니콘 무늬가 있는 예쁜 안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