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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약 Oct 22. 2023

둘째를 키웁니다

첫째의 6개월 무렵, 나는 늘 아이의 오른손에 물건을 쥐어주었다. 혹시라도 아기가 왼손잡이가 될까 걱정한 것이다. 삐죽 나온 모난 정이 되지 않길 바랐다. 되도록 다수에 속하기를 바랐다. 단단한 스테레오 타입에 갇혀있었다. 


둘째의 6개월,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정말 그렇다. 왼손잡이든 오른손잡이든 그냥 잘 잡고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면 될 것 같다. 둘째를 낳고 뿅 변했다기 보단 첫째를 키우며 차츰차츰 성장했겠다. 아이에게 늘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교육을 위해서.)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교육을 위해서.) 그렇게 몇 번 말하다 보니 당연히 나도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정말 왼손잡이는 아무 상관이 없어졌다. 30년 넘게 갖고 있던 생각이 육아 몇 년에 바뀐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진화를 거친 후 갓난아이를 다시 만나니 육아가 한결 수월했다. 게다가 생각만 성장한 게 아니라 세세한 육아 기술 자체가 몸에 켜켜이 새겨져, 중수 이상의 경험치를 갖게 되었다. 그 덕에 감으로도 적당히 아기 돌봄이 가능해졌다. 게다가 돌봄의 어려움에 집중하기보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작고 귀여운 아기의 예쁨에 좀 더 마음을 쏟았다. 그래서 둘째는 똥만 싸도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걸까?


그러나 한편으론 그만큼 무던하고 무관심하기도 했다. 과연 첫째 때는 그랬다. 모든 게 새로웠다. 매일매일 자라나는 아기의 일상에 하나하나 환호하고 신기해하며 동네방네 자랑을 했다. 


하지만 둘째를 키우면서는 이렇다. 아기의 성장은 기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대견하지만, 완전히 놀랍거나 새롭지는 않다고. 그래서 둘째를 볼 때면 왠지 늘 미안하고 애잔하다.


모든 게 낯설던 첫째 때엔, 매일이 정신없고 바쁘니 허우적대면서도 밤낮으로 책과 인터넷을 뒤지며 공부했다. 아이의 발달을 살피고 파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째 땐, 수유텀이라든가 원더윅스라든가, 아이의 일상과 발달과정에 도무지 세세히 집중할 수가 없다. 당연히 스킬업&레벨업으로 아이 하나를 돌보는 에너지 자체는 줄었으나, 이제 내가 돌봐야 할 어린것이 둘이라는 현실이 내 정신을 바깥으로 쏙 빼놓는다. 늘 그렇듯 ‘이맘땐 이랬지’하는 감으로 하루하루 ‘무탈한 오늘의 육아 일과’를 해치워 간다.


완벽한 살균소독을 한다며 팔팔 끓는 냄비 앞에서 보초를 서던 기억, 열탕에 온갖 아기용품을 넣고 끓이고 집게로 고이 집어 건조대에 찬찬히 말리던 기억은 전생처럼 가물가물하다. 그랬던 내가 몇 년 후 이렇게 바뀔 줄 알았을까? 쓱쓱 서너 번의 물칠(?)로 가뿐히 세척을 마친 후 튼실한 팔뚝으로 한껏 스윙해 물기를 탁-탁- 털어낸다. 소독의 신세계... 지금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좀 힘 빼고 육아할걸 그랬다.


저녁 준비 시간, 둘째를 키운다는 사실을 여실히 느낀다. 아기가 위험한 상황에서 자지러지는 듯 심각하게 우는 게 아니라면, 웬만한 아기의 울음에 달래주기를 포기한다. 속으로 아기에게 미안한 말을 건넨다. 엄마는 너 외에도 돌봐야 할 언니가 있단다. 언니를 씻기고 저녁을 먹이고 책을 읽어줘야 한단다. 그래야 엄마의 오늘 일과가 끝이 난단다...


동생, 그것도 성별이 같은 동생이라는 이유로 아마도 이 아이는 거의 많은 모든 것을 물려받게 되리라. 언니가 있다는 건 좋은 점이 훨~씬 많겠지만 가끔은 이렇게 조금은 서러울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욕심 없는 아기는, 마냥 엄마도 언니도 좋다고 우리를 향해 빵긋빵긋 해맑게 웃었다. 완벽하게 (자그마한 이 하나 없이!) 사랑스런 아기의 ‘잇몸 만개 웃음’에 나는 또 스르르 녹아내리며 충만한 행복을 느낀다.


아이 둘을 키운다는 건, 그만큼 조금 더 나이 든 엄마가 되어 한층 골골해진 체력으로 아무도 100% 만족할 수 없는 제곱의 육아 퀘스트를 꺼이꺼이 헤쳐 나가는 일인 것 같다. 이 과정에서 나는, 자의 반 타의 반 ‘포기와 내려놓음’을 익힌다. 이것은 하루도 평온치 않은 부대끼는 일상 속에서 이너피스를 유지케 하는 힘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빡'은 친다...)


아기의 성장을 나이도 아닌, 개월도 아닌, 날짜로 헤아릴 수 있는 한정된 시기이다. 품에 폭 안기는 8.3kg의 200일 아기를 키우며 ‘오늘도 그저 무탈하게!’를 외친다. 둘째는 단 한 번도 엄마에게 흘러넘치는 관심과 돌봄을 받아본 적이 없다. 늘 미안함과 애잔함을 느낀다. 이런 순하고 착한 아기는 어느새 스스로 저만치 자랐다. 둘째에게 늘 고마움과 애틋함을 느낀다.


곁에 잠든 아기를 보며 생각한다. 동그란 얼굴, 말랑말랑 아기 꿀돼지같이 통통한 몸매, 뽈록한 올챙이배, 못생긴 우는 표정, 뭐든지 입으로 가져가는 요즘 너의 오물오물 앵두 같은 입술, 목덜미 시큼떼떼한 젖내음과 비누향, 섬세한 이목구비, 엄마의 얼굴과 머리카락을 잡아 뜯는 쬐끄마한 손가락, 닭다리가 떠오르는 튼실한 허벅지, 아기띠 밖으로 나오는 달랑달랑 오동통한 미쉐린 팔다리가 나는 너무너무 고맙고 사랑스럽다고. 그래서 빠르게 지나가는 이 시간이 아쉽고 그립고 또 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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