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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네풀 Jun 14. 2023

소음공해

소음, 그 고행의 시간

도시의 여름밤, 우리의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건 모기도 열대야도 아닌 굉음의 오토바이이다. 고의로 소음기를 개조하여 경쟁하듯이 소음공해를 일으키는 저들은 진정 여름밤의 괴물이다. 특히 코로나로 배달이 늘어나면서 오토바이 소음은 쉴 틈 없다. 저들에게 질세라 미친 듯이 울어대는 매미가 안쓰럽다. 아파트에 사는 도시인의 숙명은 층간 소음을 견뎌내는 것이다. 하지만 작정하고 소음을 내는 저들을 참아내기란 차라리 고행에 가깝다.

몇 년 전 층간 소음 때문에 위층과 불편한 적이 있었다. 연년생 남자 형제를 키우는 애 엄마는 늘 미안해하다가도 어느 순간, 같이 애 키우는 처지에 야박하게 군다며 서운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밤늦게까지 활력이 넘치는 남자아이들을 견디기란 정말 그 당시엔 고역이었다.

그때 오정희의 단편소설 ‘소음공해’를 읽었다. 이웃 간에 소음공해로 얼굴을 붉히기보다는 이해하는 쪽으로 아량을 넓혀준 소설이었다.

주인공은 장애인 시설에서 자원봉사한다.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에 뿌듯함과 보람을 느낀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와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쉬는 것이 그녀의 가장 큰 행복이자 휴식이다. 하지만 그 작은 행복조차 누릴 수 없게 하는 것은 바로 위층 사람이 내는 소음이다.

드르륵드르륵 무언가 끄는 듯한 소리…. 몇 달 전 이사 온 위층은 엘리베이터에서도 마주친 적이 없다. 그렇다고 찾아갈 수도 없다. 그 드르륵 소리는 그녀의 신경을 있는 대로 긁었다. 그녀는 관리소에 전화해서 항의하고 위층에 연락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하지만 관리소 직원은 그녀의 잦은 민원에 지쳐 이제는 심드렁할 뿐이다.

참다못한 그녀는 푹신한 슬리퍼를 사 들고 위층에 올라간다. 그녀로서는 고육지책이었다. 큰소리 내지 않고 상대방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한다, 우아하게 그녀만의 방식으로 해결할 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위층 여자와 문을 사이에 두고 대면한 순간 반전이 일어난다.

 

“안 그래도 바퀴를 갈아 볼 참이었어요. 소리가 좀 덜 나는 것으로요.”

여자의 텅 빈, 허전한 하반신을 덮은 화사한 빛깔의 담요와 휠체어에서 황급히 시선을 떼며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부끄러움으로 얼굴만 붉히며 슬리퍼 든 손을 등 뒤로 감추었다.

주인공과 함께 나도 민망해졌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위층 아이들을 만나면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눈총을 줬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일찍 자야 키가 크는 거라고, 늦게 자니까 아직도 꼬맹이라고…. 은근히 비꼬았다. 애 엄마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은근히 통쾌함마저 느꼈다. 아! 얼마나 유치한 행동과 말이었던가. 이제 그러지 말아야지, 위층 애 엄마와 커피라도 한잔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위층 애 엄마와는 이렇다 할 친분을 쌓지 못했다. 어느 날 그들은 온다 간다 말없이 이사를 갔다. 새로 이사 온 윗집은 노부부였다. 속으로는 좋았다. 최소한 쿵쿵 소리는 듣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밤만 되면 텔레비전 소리가 들려왔다. 사거리에 있는 동이라 차 소리도 시끄러운데 텔레비전 소리까지…. 하지만 관리소에 연락하지 않았다. 이유가 분명히 있겠지. 어느 날 위층 할머니를 만났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귀가 안 좋아 텔레비전 소리 크게 틀어 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너무 소리가 크면 연락 달라고, 자신들이 주의하겠다고 했다. 정말 훈훈한 마무리였다.

그런데 오토바이 굉음은 훈훈한 마무리를 할 수가 없다.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디에 신고할 수도 없다. 파출소에 몇 번 신고했지만, 그냥 한 바퀴 순찰할 뿐 자기네가 뭘 어떻게 해 줄 수가 없다는 답변만 받았을 뿐이다.

오정희 작가에게는 있고 나에게 없는 건 무엇일까? 나는 저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느 순간 그들을 저주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저들을 저주하고 있는 내가 정말 나쁜 사람인 것 같다.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로 했다. 저들 중 한 명은 사업에 실패했고 그래서 어렵고 힘들게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다. 빨리 배달하려면 차 사이로 막가야 한다. 또 다른 한 명은 젊은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어려운 가정 형편에 도움이 되려고 배달을 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들이 이해가 된다.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가?

그런데 강적이 나타났다. 우리 동네에서는 보기 힘든 초록색 스포츠카이다. 오토바이 소리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굉음을 내고 지나간다. 특히 자정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저들. 상상의 나래도 펼치기 싫다. 그냥 미워할 거다. 에이 이런 나쁜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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