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결혼할 거야"
"무슨 소리야 아빠는 엄마랑 이미 결혼했는 걸 넌 못해"
"그런 게 어디 있어 싫어 싫다고"
딸 셋 중에 유독 아빠를 좋아했던 나는 어릴 때 아빠와 결혼하겠다고 우겼다. 그럼 어른들은 나를 골리는 재미에 안 된다고 하며 실랑이를 벌였다. 늘 끝은 정해져 있었다.
내가 울음보를 터뜨리고 아빠가 나를 안아주는 걸로 끝이 난다.
어린 시절 아빠는 하늘이었다. 크고 넓은 하늘.
아빠가 태워주는 목말에서 세상을 보았고, 하늘 높이 던졌다가 능숙하게 받아주는 놀이에서 믿음을 가졌다. 언제나 나의 편이 되어 주는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시는 산 같은 분이었다.
그런 아빠가 이제 병들고 늙은 아버지가 되어 나에게 기대고 의지한다. 아버지는 지금 폐암말기이다. 오늘 아버지와 병원에 갔다. 어디가 어디인지 어리둥절하시며 느린 걸음으로 나의 팔을 잡고 걷는다.
의사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어르신 연명치료거부 사인은 어떻게 할까요? 정신이 있으실 때 서류에 사인해야지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서요"
"으응 뭐라고?"
"아빠 혹시라도 나중에 인공호흡기를 하거나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 때 거부하는 거야. 아빠 어떻게 할까"
"..."
망설이는 아버지를 나지막이 불렀다
"아빠"
왈칵 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어떻게 할까?"
"으응 그런 거 하지 마"
한참만에 아버지가 대답했다.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고 그저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노인의 허망함을 내가 어찌 알 수 있을까 아버지는 괜찮다고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는 건데 괜찮다고 하시는데 조금도 괜찮치 않은 거 같았다.
대학 다닐 때 퇴근하는 아버지와 전철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다. 핸드폰이 없었던 시절 전철에서 만난 아빠가 너무나 반가웠다. 팔짱을 끼고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집으로 향한 밤길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대입 시험을 치르는 날, 그때는 유난히도 강추위가 찾아왔다
아버지는 나를 시험장에 들여보내고 꿋꿋하게 밖에서 기다렸다. 어디 커피숍이나 식당에도 가지 않고 그저 밖에서 기다렸다. 대입시험을 한 번에 붙지 못하고 재수 삼수 했을 때도 여전히 그 추위 속에서 나를 기다린 아버지. 얼마나 추우셨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가슴이 저릿저릿하다
그때는 내 생각으로 가득 차 아버지의 기다림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참으로 못된 딸이었다
지금도 그리 효녀는 아니다. 아버지의 병시중을 오로지 엄마에게 맡기고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다. 아이가 고 3이라, 과외를 더 늘려 토요일까지 일을 하느라, 주일날엔 성당에 가느라 갖은 핑계를 대며 나의 삶을 살고 있다.
가끔 나는 나에게 타박을 준다
너 얼마나 후회하려고 그러니,
너 얼마나 울려고 지금 이렇게 하는 거니
가슴이 뜨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