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쯤 한 독서 모임에서 김애란 작가의 단편 소설집 <바깥은 여름>으로 토론을 했다.
“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책 뒤표지에 있는 작가의 말이다. 밖은 여름인데 여전히 마음이 겨울인 사람들의 시차를 생각하는 작가의 시선이 좋았다. 그들에게 선사하는 따뜻한 문장들…. 김애란 작가에게 반하는 순간이었다. 7개의 단편은 제목에서 짐작한 것처럼 무겁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이런 슬픔마저 아름답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난 그 그때 여름이었으니까.
그리고 얼마 전 책장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다시 보게 된 ‘ 바깥은 여름’. 제목만 봤는데 눈물이 났다. 이 책이 이렇게 슬펐나 싶었다. 2년 전 세상을 떠난 막냇동생 생각이 났다. 창밖에 벚꽃이 흩날리던 날 떠난 동생, 그 이후 내 마음 한쪽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당분간은 슬프고 우울한 책은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다시 읽게 된 이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이 내 마음을 녹여주었다.
‘입동’에서는 유치원 버스에 치여 죽은 5살 영우의 부모인, 젊은 부부의 일상을 담고 있다. 아내는 아이가 떠난 후 동네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 그저 집 안에서 텅 빈 눈으로 살아간다. 어느 날 부부는 벽지에 아이가 제 이름을 쓰려고 연습한 것 같은 글씨를 보게 된다. ‘ㅇ’ 자도 제대로 못 쓴 아이의 낙서와도 같은 글 어루만지면서 아내는 오열한다. 남들은 모르는 아이와의 빛났던 순간을 생각하며 그들은 그렇게 아이를 떠나보냈다. 우리는 아이를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의 슬픔을 감히 짐작조차도 못한다. 위로하는 방법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해냈다. 아이를 떠나보낸 이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안아주었다.
‘노찬성과 에반’에서 에반은 유기견이다. 한 달 전 아버지를 교통사고를 잃고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찬성은 고속도로 휴게소에 버려진 개를 데려와서 ‘에반’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런데 에반은 나이도 많은 데다가 암에 걸렸다. 나는 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책임 지지 못 할 거면서 함부로 유기견을 데려온 찬성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책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게 울었다. 암에 걸렸는데 치료도 못 하고 그저 끙끙 앓는 수밖에 없는 에반이 불쌍해서, 에반의 안락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알바를 하며 애쓰는 찬성이 애달파서, 그리고 막판에 진통제도 듣지 않아 아파하던 동생이 생각나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결국은 에반은 차에 치여 죽었다. 목격한 이들은 말했다. 개가 스스로 차에 뛰어든 것 같다고.... 슬퍼도 마음이 무거워도 눈물 나는 책을 봐도 괜찮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의 아픔을 들여다보며 흘린 눈물이지만 왠지 내가 위로받은 느낌이다.
‘건너편’에서 이수와 도화는 8년째 연애 중이다. 8년 전 공시생이었던 이들은 노량진에서 만났다. 2년 만에 도화는 합격, 이수는 불합격이었다. 몇 년째 그저 제자리인 이수와 직장인으로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는 성인을 성장해 가는 도화, 그들의 사이는 점점 균열이 생기고 있다. 도화는 이수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해도 괜찮을 때를 기다린다. 헤어지기 적당한 때가 있을까 싶다. 언제든 이별은 아픈 거니까. 하지만 헤어지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 적당한 때를 찾아 사랑했던 이수를 배려하며 헤어짐의 건너편으로 간 도화의 이별하는 방법이 맘에 든다.
‘침묵의 미래’는 이상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관념적인 내용이다 보니 그리 흥미롭지는 않지만 다 읽고 나면 정말 놀라운 작품이다. 소수언어 박물관에 남은 마지막 소수언어 사용자의 죽음이라니…. 언어를 통제하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 소수언어 사용자들은 박물관에서 구경거리로 살아가다가 죽음에 이르면 소멸하게 된다.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가 나중에 소수언어 사용자가 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 명지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을 떠나보내고 지독한 상실감을 겪는다
“유리에 대가리를 박고 죽는 새처럼 번번이 당신의 부재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촌 언니의 배려로 스코틀랜드의 낯선 도시에서 한 달가량 머무르는 도중 알 수 없는 피부병으로 고생을 한다. 그녀를 웃게 한 유일한 건 시리(siri). 아이폰 사용자라면 누구나 한 번 대화를 해 봤을 시리가 그녀에게 위안을 준다. 고통은 무엇인가요? 당신은 정말 존재하나요? 이런 시답지 않은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 주는 시리다. 그녀는 물었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나요? 시린 대답 했다 ‘어디로 가는 경로 말씀이세요? ’ 어디로 가고 싶은 건가요 ‘ 명지는 대답할 수가 없다 그녀도 알 수가 없으니까
상실감을 가진 이들은 위로가 받고 싶다. 하지만 위로를 받고자 할 때는 더욱더 큰 상실감이 찾아온다. 그러나 이 책을 발견해서 읽는 것, 그 자체로 위로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김애란 작가는 손을 내민다. 아직도 겨울인 누군가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