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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kwell Feb 14. 2023

침묵 속으로

<경청>을 읽고

현재 네이버 검색창에 '경청'을 검색하면 어학사전보다 지식백과에서 다룬 '경청'들이 먼저 나열된다. 그중 간호학대사전의 풀이가 시선을 붙잡는다. 김혜진의 장편소설 <경청>을 읽었기 때문이다.


"좋은 치료자-환자 관계를 만들기 위해 치료자에게 필요한 기본적 자세이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의견을 밀어붙이는 일이 없이 우선 환자 자신의 자기표현(환자가 말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표정·거동까지도 포함해서)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치료자의 경청을 통해서 환자는 자유로운 자기표현이 가능해지고 정서적인 해방이 촉진되어 치료적으로 효과적인 치료관계가 만들어지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청 [listen(to), 傾聽, hören(zu)] (간호학대사전, 1996. 3. 1., 대한간호학회)


<경청>의 주인공 임해수는 좋은 치료자였을까.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직업인으로서 자긍심이 있었고 업계에서도 인정받았던 사람이라는 것만큼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프로 상담사로서 방송 출연을 했고 절차상 본인에게 주어진 대본을 경계심 없이 읽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죽었고 그 죽음의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임해수는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에서 박탈당할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일상에서 "완전한 무너짐"을 경험한다. 임해수는 불쑥불쑥 편지를 쓴다. 쓰고 또 써도 전부 쓰다 만 것들뿐이다.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들은 산책을 하며 "반으로 찢고 다시 반으로 찢고, 한 글자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종잇조각이 될 때까지 찢고 또 찢는다. 언제나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열기엔 턱없이 부족한 글이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실은 그럴 마음도 별로 없는 글이고, 그러므로 폐기되어 마땅한 글"이기 때문이다. 차분하고 고요해서 더 끔찍한 그 루틴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 건 어쩌다 만나게 된 길고양이 순무와 까미, 그리고 초등학생 세이 덕분이다. 그들과의 관계, 특히 "순무와의 교감이 그녀에게 이상한 안도감을 준다. 수없이 많은 말들로 소란스럽던 세계에서는 느낄 수 없던 감정이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깨닫는다. 자신은 그저 넘쳐 나는 말들에 둘러싸여, 불필요한 말들을 함부로 낭비하는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흔히,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고도 말한다. 가능한 표현을 해야 하며 심지어 나댈 필요까지 있다고 말하는 시대다. 그러다 보니 끝내 말을 하지 않는 것을 택한 사람들, 무엇을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을 택한 사람들의 마음을 쉽사리 뭉개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경청>은 여느 소설처럼 자극적인 사건을 다루고 그것에 대해 누구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은 인물을 내세웠음에도 인물의 단순한 스피커가 되는 것은 망설인다는 점에서 귀하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게 내버려 두기보다는 그의 행동과 마음에 더 힘을 보탬으로써 독자에게도 나지막이 요청한다. 임해수가 순무와 세이의 고통에 쉽게 개입하지 않았던 것처럼 상대가 말을 아끼면 그냥 내버려 두라고, 곁에서 그 침묵까지 함께 감당해 달라고. 어쩌면 <경청>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감상도 <경청>에 대해 가능한 말을 아끼는 것일 테다. 그렇다. 이 글은 <경청>을 통해 말을 아끼는 것에 대한 미덕을 새삼 깨달았으면서도 <경청>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유혹에선 끝내 벗어나지 못한 이상한 독자의 실패한 독후감이다. 이 시간 이후로는 누군가에게 이 소설을 묵묵히 선물하는 것으로 이 작품에 대한 사랑을 고백할 것이다. 누군가 이 소설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한다면 그저 경청하는 것으로 이 작품을 그리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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