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
"물이 빠지는 자잘한 골 옆으로 돌밭이 나오고 , 그 날카로운 바위들 밑에 미처 도망가지 못한 낙지가 웅크리고 있어. 그럼 작대기로 쭈욱 밀어서 낙지를 약 올려. 작대기에 올라타게 말이지"
아빠에게 배운 낙지 잡는 법이다. 모래와 바위가 있는 곳에서도 가끔 낙지가 나올 때가 있었다. 원투 대를 몇 개 걸쳐놓고 소주 드시던 냥반이 그 무슨 잡생각에서 깨어나셨는지 잠시 바위를 휘젓고 다니다가 '채 자라지 않고 꼬물거리는 꽃게 ' 두어 마리와 '늘어진 낙지'를 잡아 왔다. 바다 앞쪽에서 낚시를 할 때는 아침나절에 물이 차고 두어 시간 돌고 다시 빠져나갈 때 , 들물에는 딸려 들어오는 놈들 낚시를 하고 , 날물에는 미처 도망가지 못한 애들을 주으러 가는 것이다.
맘 같지 않게 끌려온 건 나도 마찬가지. 고체연료는 달고나 맹키로 생겼다. 버너에 빰프질을 해주면 '쉬익 쉬익' 소리 내면서 푸른 불빛이 올라오는 새벽. 아빠가 끓여주는 라면을 먹다 보면 늘 의문이 들었다. '성의가 없어서 맛이 없는 것일까. 솜씨가 없어서 맛이 없는 것일까'
코펠에 달려있는 컵에 소주를 그득하게 담아 한잔 쭈욱 들이키고 , 아빠는 빈 낚싯대를 접기 시작했다. 사실 낚시 솜씨도 영 허당이고 , 라면도 못 끓이고 , 그렇다고 돈 벌어오는 재주가 용한 것도 아니고.... 바다를 앞에 놓고 , 8살 아들에게 낚시 거짓말 , 낙지 거짓말 , 머 그런 거짓말만 늘어놓다가 아침 해가 뜨고 눈에 보이는 바다 끝까지 물이 빠져 회색으로 말라버릴 때 즈음. 한 번은 진심을 다해 솔직해진다. " 집에 가자. 이제 더워질 거야"
안면도 솔밭 안쪽으로 들어오면 , 며칠간 빌려놓은 농가가 있었다. 농가 옆 수로에 새벽에 미리 걸쳐놓은 '반도 족대'에 참게가 좀 걸려있길 바랬는데, 이것도 나이 들어 제대로 배우고 보니 , 자정 즈음 달이 없을 때 참게가 잘 나온다고....
어떻게 아빠가 다 알려주겠는가. 대충 그즈음 , 그 어귀에 데려다주면 '내 코로 문질러보고 냄새 맡으면서 , 데이지 않고 잘 배워 기억하는 것이지' 아빠는 할아버지에게 그 정도도 못 배웠다고 하는 말이 빈말은 아닐 것이다. 빈 했으니까. 사는 게 빈해서 마음 씀씀이도.
아버지로 늙어버린 이십 년 전부터는 낚시할 때 , 내 미끼도 , 낚싯대도 봐주지 않고 당신 것만 챙기시던데 , 그럼 뭐 나도 내가 알아서 해야지.
이십 년이 지나서 , 그때 그 거짓말 같은 일들을 '꼬물거리는' 또 다른 아이에게 가르쳐 줄 기회를 여즉 못 드렸으니. 그 바닷가에서 나에게 했던 거짓말 값 서운하게 쳐드린 걸로 퉁 쳐야겠다.
그때 낚시 말고 , 나무라도 심어놓고 이름 붙여놨으면
지금 서있는 나무들처럼 근사하게 컸을 텐데.
별 볼일 없었네. 그때 젊은 아빠나 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