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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Sep 12. 2023

겉보리 서말이 그런 뜻이었구나.

나는 여전히 사는 법을 잘 모른다.

주방에서 오늘 저녁밥으로 별미를 준비하고 있었다.

메밀 함량이 매우 높은 면을 사 왔으니 , 오늘 같이 뜨겁고 건조한 날 어울릴 콩국수를 마련할 생각이다.

메밀 함량이 높은 면을 삶다 보면 , 면에서 나오는 냄새라고는 상상도 못 한 냄새가 난다.

돼지뼈를 삶는 냄새가 나는데  이것은 메밀의 함량이 높고 '자칭 면의 순도가 높은' 건조면에서 나는 냄새다.

좋은 밀가루로 된 면을 삶으면 소 풀죽과 락스 냄새 가 아주 옅게 나는 것이고 , 메밀로 된 음식을 삶고 가루를 쑤어내고 하다 보면 쿰쿰한 내음이 나는 것이다. 이 냄새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혹여 주방에 다른 음식이 있어서 냄새가 섞인 것이 아닌가 하는 말도 있지만, 아주 사소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묘사하는 메밀꽃 밭의 냄새는 무려 소똥 냄새와 비슷하니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와 머릿속에 남아있는 이미지와 그것의 냄새는 어쩌면 먼 거리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메밀면을 삶아 들고 나와 시원한 얼음에 콩국물 담뿍 담아 굵은 꽃소금 착착 뿌려 한 그릇을 만들어서 엄니께 진상했다. 하루종일 열기가 돌아 나올 생각을 안 하는 두 평 작은 주방 안에서 퀴퀴한 생선 비린내만 맡으시는 분께 죄스러워 올리는 진상품이다.  나는 맛소금을 넣는 것이 좋은데 엄니는 꽃소금이다. 얼음으로 급하게 식어버린 국물에 급하게 맛을 우려내려면 조미료도 좀 들어가 있고 순간 폭발하는 감칠맛이 충분한 맛소금이 편한데 , '그렇게 하면 콩국물 버린다'라고 하시는 고집에 결국 밥상 위에 두 종류의 소금을 올려놓고 식사를 마친다. 후식으로 냉장고에 있던 식혜를 가져다 드렸다. 며느리가 여기저기 입소문 듣고 구해온 귀한 식혜다. 식당 후식으로 나오는 식혜보다 고급스러운 포장에 거무튀튀한 밥알 색이 아닌 말갛게 하얀색 밥알이 떠있다.

며느리가 얼마에 샀는지 물어보시길래 거짓으로 답했다. 가격을 아시면 기겁을 하실 터이니 대충 '시가'에 맞게 말씀드렸다. 냄새가 달큼하다. 밥알이 밥값을 다 했으니 더 물어볼 필요는 없다.


식혜도 잘 만드셨다. 7남매의 장남. 그것도 시할머니까지 살아계신 집 아주 가난한 집에 시집온 며느리가 배워온 기술 중 하나였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연한 주황색의 전기밥솥, 밥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가끔 어머니가 쌀이 아닌 무언가 그득하게 물을 담아 넣을 때, 그리고 반나절을 그 밥솥 근처에서 서성일 때,  나도 그 뒤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녔다. 식혜 만드는 날이었다.  밥을 잘 짓고 밥에 밥 같은 무엇인가를 넣고 그게 쌀겨 같은 무엇 인가처럼 쌀 조리에 걸리고 다시 그 쌀을 넣고 밥솥을 여닫 고를 반복하고 나면 , 사실 그 기다림에 지쳐 하루 나절 잠들었다가 깨면 지금 막 식혀놓은 살살 얼음이 낀 식혜를 맛볼 수 있었다. 쌀로 모든 것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 소금과 설탕, 쌀과 보리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쌀 겨 같은 것이 엿기름이었고 (원형에서 엿기름이 되는 것은 여즉 잘 모른다. 그저 쌀겨 같은 껍데기가 떠 다닌 것만 기억날 뿐) 보리는 둥글고 납작하고 그 정도로 구분되는 것. 거기까지다.  보리 만날 일이 있는가.


벌써 기십년이 지난 이야기다. 주변에서 한 번씩은 들어본 그런 류의 말. '너는 가진 게 없으니 나중에 장가를 가게 되면 처가의 손을 빌려야겠네' 같은 말. 그럴 때 나는 반사적으로 준비해 놓은 말이 있었다.

아버지와 청평 호 아래에서 낚싯배를 타면서 여러 번 들었던 말. "남자는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안 하는 것이다" 왜 그 말을 알려주셨는지 모르겠지만 낚싯배를 타면 소주 한잔을 걸치시고 꼭 한 번씩 하시던 말.

정작 당신께서는 처가살이는 안 하셨지만 처의 도움만으로 가장으로 면을 세우고 사셨으면서 그게 그거 아닌가? 싶지만 내가 그 말을 반박했겠는가. 그 쪽배 위에서? 가장의 권위에 선장의 권위까지 함께하는 공간이니 적극적으로 말을 들었겠지.


겉보리 서말. 겉보리 서말. 써먹어 본 적 있다. 누군가 물어봤을 때 그 말을 연애 초반에 먼저 꺼내서 산통을 다 깨고 , 심지어 소개팅에서도 상대방 여자분이 나에 대해 사전에 소개받을 때 "돈 없는데 처가살이도 절대 안 하는 오빠"로 듣고 나왔다. 중간에 거간꾼을 하던 친구가 참 대단했다. 아무리 승률 제로의 게임이라도 그런 판을 짜기는 어려운데 말이다. 아무튼 내 입버릇처럼 "겉보리 서말"은 서말의 겉보리를 만져보지도 못하고 계속 입에 남아있었다.


며칠 전, 잡곡을 솥에 넣는 순서에 대해 어머님께 강의를 듣고 있다가 겉보리 서말 이야기가 나왔다. 이미 이혼한 지 삼십 년이 넘은 분께서 "그래도 너희 아버지는 처가에 손은 안 빌렸지 "로 시작하는 레퍼토리를 한번 읊조리시더니 갑자기 "너 근데 겉보리 본 적은 있어?"라고 물어보셨다. "응 아니요? 본 적은 없지요" 기껏 보리쌀이라고 해봐야 찰보리밥 정도였을 것.  "겉보리 서말이 왜 서말인 줄 아나?"

"겉보리가 소화가 잘 안 되는 쌀이거든. 지독하게 소화가 안되니까 조금만 먹어도 배가 안 꺼져. 그래서 오래 버틸 수 있어서 겉보리 서 말만 들고 있어도 자기 처자식은 먹이면서 또 건건 이를 찾아올 수 있으니까 겉보리 서말이라고 한 거야"

" 아. 그러면 그게 겉보리 같이 서운하고 허접한 곡식을 말하는 게 아니고 정말로 버틸 수 있는 곡식이라 그런 거예요?"

"응.... 응? 아니 그냥 내 생각"


그렇다. 백여사님 생각이다. 굶어 죽지 않을 수 있는 강한 곡식 몇 되라도 있으면 내 가족은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실사구시의 뜻이 더 강한 것.  초라한 서말이 문제가 아니라 살아야 한다는 말.

한 끗 차이지만 저 말 덕분에 여즉 저렇게 강하게 살아오신 것. 웃으면서 서말을 몇 번이나 해 드셨는지 아버지에 대한 농담을 던졌지만 , '덕분에'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처럼'이 아니라 덕분에.


아주 어릴 때 피죽도 못 먹이고 며칠을 사기치고 도망간 사람 찾으러 다녀서 나중에 보니 등뒤에 울지도 못하고 거품 물고 있는 애가 있었다. 그래서 그 미안함이 늘 남아있다 고 하시는 그 말.

겉보리 같은 것 서말도 없이 사셨을 그때 오죽하면 등뒤를 살피지 못했을까. 그 미안함은 이제 그만해도 좋으련만. 여전히 겉보리 서말 같이 질기게도 부양하는 하루를 살고 계신다. 웃는 것 말고 무슨 방법이 있으랴.


웃으며 농담하다가 또 걸려버렸다. 덜컥 , 하고 말이다. 겉보리 서말.

요즘은 왜 이렇게 걸리는 말이 많은가 모르겠다. 걷는 건 다 배웠는데 말은 여전히 못 배워서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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