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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Oct 28. 2023

최소의 준비

아이가 태어난다.

아이가 태어난다.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대충 태어날 날짜까지 알고 있으니 선명하게도 "나는 아빠가 된다"

아이가 되기 위해 내 노력은 미천했다. 엄마가 될 아내가 준비한 과정은 '함께 있지만 고독한 시간의 반복'이다. 우리는 늦게 결혼했고 우리 둘이 새로운 집터에서 적응을 하며 우리 시계를 맞춰놓고 살았다. 딩크족은 아니었지만 지인들과 사는 범위가 먼 만큼 그 흔한 '출산 압박의 잔소리'도 듣지 않았다. 아니 , 다들 눈치껏 생각해 보니 우리의 결혼까지가 끝이고 둘이 잘살다가 말겠지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주변에는 최소 초등학교를 들어간 아이의 학부모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단순히 늦은 것이 아니라 '마라톤 5시간 이후에는 기록 인정해 주기 어렵습니다' 같은 경우다. 지금 애를 낳아 지금 키우는 것이 어려운 것보다 , 그 아이가 최소의 최초의 사회를 만났을 때, 그때 보호자로 있어야 할 내 나이 그 나이가 문제인 것이다.


그래도 나는 , 아니 우리는 부모가 되기로 했다. 지난한 과정과 시간을 지나 축복 가득한 시기가 왔다. 아이는 의학적으로는 현재 무탈하고 왕성한 움직임을 보이고, 채식만 하던 엄마의 식성까지 바꿔가며 가열찬 태동을 보이고 있다. 지금의 준비와 기대 그리고 부모 리허설과 같은 시간이 매일 골인지점을 향해 가고 있다.

석 달이 지나 출생번호를 부여받을 아이를 만나게 되면 리허설과 다른 무대가 펼쳐질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인데, 아이가 가장 이쁠 시기가 지나  최초의 사회인 어린이집을 가고 이어서 초등학교 정도만 상상해 본다. 참관학습에 참여한 나의 모습을 말이다.  주변에 아빠들은 최소 7살 이상 차이 날 것이며, 많게는 띠동갑 정도 될 것이다. 율동까지는 참겠는데 , 아니 겸허하게 따라 하고 열심히 할 수 있겠다. 흰머리인지 새치인지 모를 머리는 염색으로 가리면 되고 , 얼굴의 주름이 너무 과격하다면 와이프의 조언에 따라 시술을 받을 수도 있겠다. 문제는 절대 체력으로 승부하는 체육대회. 예전 우리 시절처럼 엄마 손을 잡고 , 아빠가 대신 뛰고 하는 정겹고도 촌스런 시절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한 번은 뛰어야 한다. 무릎에 지르코니아 인공관절을 넣어야 한다는 농담이 가시권 현실로 나가오는 나이. 나는 과연 아이를 , 그리고 다른 부모들을 속이고 그럭저럭 부실한 가장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농담.


나머지 생각나는 문제들은 좋은 세상의 도움을 받기로 하자. 어쨌든 나는 생물학적 , 사회적으로 도태되는 시점에 반대로 생물학적 재탄생의 과정을 겪는다. 다행인 점도 있다. 쉬이 좌절하지 않을 것이며, 감정의 기복은 젊은 아빠보다 덜 할 것이며, 마침 다가온 갱년기 감수성은 아이에게는 감정이 지독하게 풍부하고 직반응하는 '나와 감정선이 가까운 철없는 아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는 급하게 문제 설정을 하고 해결을 위해 준비 중이다. 아이를 들고 어르고 달래서 걷게 만드는 그 시간 동안 아이를 무사히 안아주려면, 평생 써본 적 없는 팔근육과 가슴근육  그리고 아버지의 등에서 본 것 같은 어깨.  그 뒷모습을 따라 해야 한다. 뒷모습만 볼 줄 알았지 내가 따라 하게 될 줄은 몰랐던 모습이다.  성실하지 못했던 아버지에게 남아있던 성실한 등이다.

최소의 준비를 해야겠다. 디딤이 되고 견착이 되고 가끔은 벽처럼 근거리에 있던 "최소의 편" 하나정도는 꼭 만들어놔야지. 아이는 나올 준비를 마쳤다. 내 준비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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