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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주의자 Jul 18. 2021

퇴근길, 그들의 밝음을 닮고 싶다면

나만의 비밀스러운 나라를 찾고 있다면 ① 콜롬비아


나만의 ‘비밀스러운’ 여행지란?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인들의 발이 묶여 있는 특수한 상황이지만, 몇 년 전 여행 당시만 해도 거리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마주치지 못하는 나라를 찾기 힘들 정도로 우리나라 여행객들은 세계 곳곳에 진출(?)해 있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비밀스러운’이라는 수식어는 한국인들을 비교적 많이 보지 못했던 조금은 덜 유명한 장소를 의미한다. 



여행을 하면서 왠지 나와 궁합이 잘 맞는다고 느껴지는 나라들이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멕시코, 브라질과 콜롬비아가 그러했는데 이 세 나라 중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콜롬비아를 소개하고 싶다. 이 나라를 여행하기 전 ‘콜롬비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마약 조직과 갱단 같이 부정적인 것이나 산미가 강한 콜롬비아 수프레모 커피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이 하나같이 콜롬비아가 너무 좋다는 찬사를 보내어 기대와 호기심이 생겼고, 3주간의 여행이 끝난 뒤에는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콜롬비아 예찬자가 되었다.



콜롬비아는 내가 정한 살고 싶은 나라의 기준인 ‘온화한 기후’, ‘저렴한 물가’, ‘친절한 사람들’이라는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곳으로서 그중에 으뜸은 ‘사람들’이었다. 구릿빛 피부에 생기 넘치는 몸짓으로 환하게 웃으며 살갑게 먼저 말을 걸어주던 그 모습, 밝은 햇살이 만들어낸 낙천적인 성격으로 이방인에게 친절할 뿐만 아니라 가수 ‘샤키라’의 나라로서 미남미녀가 많았다. 또한 콜롬비아 도시들은 보통 1천~2천 미터의 고산 지대에 위치 해 있어 선선하거나 저지대에서도 뜨겁지만 보송보송했으며, 물가는 대략 한국의 절반 수준으로 저렴했다. 또 하나의 플러스는 미각의 즐거움이었다. 콜롬비아는 신선한 재료로 만든 먹거리가 풍부하고 맛있으며 저렴하기까지 하여 매 순간 한정된 위의 용량이 원망스러웠고, 무엇을 먼저 맛볼지 행복한 고민을 하게 했다. 



우선 수도인 ‘보고타’부터 가보자. 보고타는 우중충한 분위기의 낙후된 도시일 것 같다는 예상을 깨고 고층 빌딩의 숲에 예쁜 펍과 카페들이 종종 눈에 띄어 현대적인 느낌을 풍겼던, 산책이 참 즐거웠던 도시였다. 스트릿 푸드와 거리 공연과 같은 다채로운 볼거리들이 가득했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예쁜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겼고, 시장에서 좋아하는 열대 과일과 이색적인 과일들을 하나씩 사 와서 시식했던 달콤한 기억도 난다. 



하루는 케이블카를 타고 몬세라떼 언덕에 올라 보고타 시내 전망을 감상하거나 ‘금 박물관’과 ‘보떼로 박물관’에 방문하기도 했다. 2015년 가을 내한 전시 때 처음 만난 뒤 반했던 보떼로의 작품들, 모든 사람과 사물의 양감을 극대화(뚱뚱하게 표현)한 보떼로의 작품은 매력적이면서 보고 있으면 웃음이 터져 나오는데, 의외로 르네상스 화풍의 영향을 받았으며 작가의 학습과 경험 등 살아온 모든 인생이 함축되어 있다고 한다. 그는 '예술은 보다 많은 사람에게 가까워야 한다'는 지론에 따라 모든 작품을 기부하고 박물관의 입장료도 받지 않고 있다. 따뜻한 마음으로 인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그의 더 많은 작품들은 메데진의 ‘보떼로 광장’과 ‘안띠오끼아 박물관’에서도 만날 수 있다. 



유명한 콜롬비아 커피의 산지 ‘살렌토’에서는 커피 농장 투어를 하면서 커피 제조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시음을 할 수 있다. 투어 비용은 단 돈 4천 원~6천 원으로 유명 브랜드 커피 한 잔 값 밖에 되지 않아 하루 동안 여유로이 2개의 농장을 방문했다. 대규모 농장인 ‘El Ocaso’가 가장 유명하지만, 이곳으로 가는 길 중간의 들른 ‘Los Acacia’ 농장은 마치 가내 수공업을 하는 것처럼 규모가 작아 좀 더 여유롭고 프라이빗한 투어를 즐길 수 있었다. '브라질'에 이은 최대의 커피 생산국 콜롬비아의 커피는 사람이 손으로 직접 콩을 딴 뒤 좋은 콩을 선별하기에 품질이 뛰어나며,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는 강한 산미마저 내게는 부드럽게 느껴져 입맛에 맞았다. 사실 커피나무로 둘러싸인 전망대 테라스에서 신선놀음을 하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이니 뭐든 맛이 없을까 싶었다. 커피 애호가이기보다 카페인에 민감한 내가 하루에만 다섯 잔 이상은 마신 것 같다. 차라리 오늘의 꿀잠을 포기할지언정 이 영화 같은 배경 속에서 음미하는 향긋한 커피 한 잔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콜롬비아 제2의 도시 ‘메데진’은 중산층 사람들이 살고 있는 편안한 동네 같았다.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마약 카르텔, 갱단, 범죄 등으로 악명 높았던 도시가 이토록 세련되고 안전하게 바뀐 것은 2002년에 집권한 ‘우리베’ 대통령 덕분이란다. 콜롬비아 전역에 생각보다 많은 경찰들이 있었는데 특히 이곳 메데진은 거리 곳곳에 많은 경찰들이 눈에 띄어 마음이 든든했다. 관광객들의 숙소가 밀집된 ‘엘 포블라도’ 지역에는 아기자기한 레스토랑과 펍들이 늘어서 있어 마치 내가 좋아하는 연남동 거리를 걷는 듯했으며, 수많은 별들이 흩뿌려진 듯한 야경도 볼리비아의 ‘라파스’에서 만났던 것처럼 아름다웠다.



마지막으로 살사 음악과 춤에 빠졌던 살사의 도시 ‘칼리’, 이곳에서는 나는 3일 간 살사 개인 교습을 받고, 숙소에 와서도 거울 앞에 서서 당일 배운 스텝을 땀 흘리며 연습했을 만큼 열정 가득한 학생이었다. Uno, dos, tres~ 의 신나는 리듬에 맞춰서 몸을 움직이니 웃음이 절로 흘렀고, 거울에 비친 나의 몸동작도 점차 제법 그럴듯하게 보여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었다. 살사는 ‘인간은 왜 춤을 추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주었을 만큼 몇 달간 장기 체류하면서 제대로 배우고 싶었던 매력적인 춤이었다. 그러나 나에겐 앞으로 더 보고 싶은 세상이 많았기에 아쉬운 마음으로 이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콜롬비아는 다음에 꼭 다시 방문하고 그때는 길게 길게 여행할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여행을 하면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 나는, 여행 중에는 사춘기 소녀로 돌아간 것처럼 더 호기심 천국이 되고 작은 일에도 웃는 순간이 많았다. 게다가 콜롬비아 사람들 특유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서였을까, 이 나라를 여행하는 내내 참 밝게 웃으며 씩씩하게 이곳저곳을 누볐던 것 같다. 그래서 콜롬비아는 중남미 특유의 밝은 기운을 느끼면서 다채로운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살면서 인생에 매너리즘을 느끼는 시기가 왔을 때 꼭 한번 여행해 볼 것을 추천하는 나라다. 


 ☆ 2018년 4월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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