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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루카 Dec 06. 2021

쾌락주의 철학에서 바라본 가재(crayfish)의 인권


위의 사진은 펄펄 끓는 냄비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가재의 사진이다. 죽음을 어떻게든 피하려는 모습에서 인간과 유사한 모습이 보이지만, 결국 인간의 뱃속에 들어가리라는 사실에 의한 괴리감 때문에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 웃긴 자료가 반드시 남에게도 웃기리라는 법은 없다.


얼마 전에 영국에서 가재를 산 채로 삶지 못하게 막는 법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온 적이 있었다. 법안이 통과되면 가재는 즉사하거나 기절하고 나서 냄비 안에 넣어져야 한다. 식용 가재도 존엄성으로 대해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동물을 대하는 영국 입법부의 책임감이 대한민국에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나 본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각종 풍자 댓글이 달렸다. 어차피 사람 뱃속에 들어갈 미물인데 왜 죽이는 방법까지 신경써야 하느냐가 주된 비판점이었다.


영국 사회가 가재에게 유난을 떠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 그 배경에는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한 쾌락주의가 존재한다.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주의' 중 아마도 '쾌락주의'만큼 오해를 많이 받는 사상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말로 표현하면 언뜻 먹고 마시고 즐기자는 뜻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쾌락주의의 본 뜻은 세상 만사를 모두 쾌락에 맡기자는 사조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 의의 자체를 쾌락 원리와 관련짓는 이론의 집합체이다.


쾌락 추구는 먹고 마시는 행위 뿐만 아니라, 뒤에 올 행복을 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행위도 포함한다. 예컨대 자격증 공부는 당장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시험에 통과해서 얻을 성취감, 사회적 지위, 금전적 이익 등 행복 요소를 생각하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평생을 금욕적 수련에 바치는 종교인들은 죽음 뒤에 찾아올 행복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쾌락주의를 실천한다고 할 수 있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의 입을 빌려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하자면 고통이 많이 수반될수록 쾌락도 클 수 있는 법이다. "용기, 인내, 근면, 관찰, 성실함을 실천하는 자만이 행복한 삶을 최대로 누릴 수 있으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예의 미덕들이 존중받는 것이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우리는 쾌락이라는 동기에 이끌려 고통을 선택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쾌락을 선택하는 행위 역시 쾌락이라는 동기에 의한 것일 수밖에 없으므로 사실상 우리가 살면서 내리는 선택 모두 쾌락지향적이라고 보면 된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쾌락주의는 18세기 영국의 공리주의자들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최대 다수에게 최대 행복"이라는 슬로건은 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람에게 쾌락이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연히 이는 세상에 쾌락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만인이 공통적으로 누리는 쾌락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바로 먹기, 자기, 배설하기 등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생존에 필수적인 쾌락이다.


이것이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동물들 또한 사냥하기, 짝짓기, 도망다니기 등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서 쾌락지향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인간은 생존을 위해 고통을 보다 계산적으로 섞을 뿐이다. 공리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제러미 벤덤은 이와 같은 논리를 바탕으로 동물에게 공감해야 할 이유를 마련했으며, 이들에게 가급적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가 동물인권의 선구자로 평가 받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인간은 육식을 하는 이상 살생을 피할 수 없다. 그래도 영국은 쾌락주의 철학에 익숙한 국가답게 살생을 하되 필요 이상의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무척추 동물인 가재에게도 적용하려 하고 있다. 비록 가재가 식사 재료에 불과할지라도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것은 인간과 마찬가지이니 마지막을 최대한 편하게 해 주기 위한 배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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