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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재 Nov 13. 2022

#28. "남들 다 집에 가고 보는 노을"

Chile. Atacama

세상이 빨갛게 물들어 버린 날


하룻밤을 보내고 투어를 가기로 했다.

투어라기 보단 자전거를 타러 간다는 말이 더 맞는 거 같다.


아타카마에 오면 다들 달의 계곡이라는 투어를 한다.

대부분은 투어사를 통해 버스를 타고 그곳을 여행하고

고생을 좋아하는 소수는 자전거를 빌려 그곳을 여행하곤 한다.


자전거를 빌릴 수 있고

그 자전거를 타고 똑같은 코스를 여행할 수 있다면

우린 무조건 자전거다.


그렇게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고 아침을 든든하게 먹으러 갔다.

아타카마에 무슨 한국 감자탕이랑 맛이 비슷한 가게가 있다고 들어서

감자탕으로 배를 가득 채우고 출발하고 싶어 가게로 향했다.


감자탕을 하나씩 시켰다.

생각보다 많이 느글느글한 감자탕이다...

감자탕 느낌은 나지만 너무 느글해서 거의 배를 채우지 못했다.

그렇게 살짝의 배만 채우고 자전거를 빌리러 갔다.


여러 자전거 샵들이 몇 개 있었는데

우리 눈에 띄는 자전거가 보인다.


바퀴가 겁나 컸다.

겁나....진짜....

우리가 아는 자전거 바퀴보다 약 세배가 컸다.


뭔가 좀 멋있어 보여서 조금 더 비싼 돈이지만

한 번 타는 자전거 멋지게 타자고 그걸로 대여를 했다


그렇게 달의 계곡으로 페달을 굴린다.


도시에서 빠져나와 국도 같은 곳을 지나 달의 계곡 입구에 들어선다.

이 무슨... 풍경이지...

또 이상하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그렇게 모래사막을 쭉 쭉 밟으며 앞으로 나간다.


두 시간을 달렸나...

이곳저곳 우리가 알던 사막과는 정말 다른 사막을 지나고 지나

어느새 목표로 했던 곳에 다다르... 기도 전에

배가 너무 고파진다...


말만 감자탕이라는 그걸 조금 먹고 아무것도 안 먹은 탓인지

예상치 못한 허기짐이 와버린다.


평소에도 배가 고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라서...

극도로 배고픔에 사실 더 이상 페달을 밟을 힘이 아니라 밟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게 계속 밟다가 목표로 했던 곳이 나올 생각을 안 해..

형한테 조심스레 말했다.


"형, 이제 돌아갈까???"


"나 가고 싶었던 곳이라서... 많이 힘들면 혼자라도 갔다 올까?"


"그래 가자."

사실 형이 가고 싶어 하는 걸 알았기에 괜히 힘이 빠질까 봐 조심스레 던진 말이지만

형이 꼭 가고 싶었던 곳이라는 말에 혼자 보낼 수가 없다.

그렇게 형이랑 같이 끝까지 간다.


그렇게 한 시간을 더 달려 우리는 마침내 도착했다.


영화 마션 촬영지라고 하는 달의 계곡 끝자락.

우주를 다루는 영화인 마션 촬영지에 왔을 때

진짜 우주에 온 듯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내 눈앞에 펼쳐지는 모습들이 정상스러운 모습은 아니다.

뭐라 설명하기도 표현하기도 어려운 그런 이상한 곳이다.

이렇게 질질 끌고 와 준 형한테 정말 고마웠다.


아마 혼자 그 감자탕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왔다면 배가 너무 고파서

그만 돌아갈 수도 있었을 거 같다.

하지만 형이 가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함께 하고 싶어 형 덕에 그곳까지 왔다.


그리고 그런 말 같지도 않은 풍경을 볼 수 있었고

그 모든 거에 너무 감사했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일몰을 보고 돌아가지만

우린 배도 고프고 자전거로 돌아가기엔 위험하기도 해서

어두워지기 전에 우리는 다시 숙소로 출발했다.


조금 달리자 금세 어두워졌고 금세 노을빛이 슬금슬금 다가온다.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이건 무슨 또 말도 안 되는 장난인가.


미친 듯이 붉은 노을이 하늘 전체에 물들어 버린다.

부분만 붉어지는 게 아니라 정말 하늘 전체가 붉어졌다.


쫙!


미친 듯이 빨갛고 미친 듯이 타오르는 저 노을이 너무 아름다웠다.

평소에 노을 보는 걸 광처럼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 순간 너무 행복했다.


우유니에서 봤던 노을은 맑고 청량한 그런 아름다운 노을이었다면

그날의 노을은 사막에 강렬하게 물들어 버린 거친 노을이었다.


지금도 확신한다.


많은 곳에서 노을을 보고 너무 이쁘다고 감탄을 해왔지만

그때 봤던 노을만큼 이쁜 노을은 없었다.


어떻게 표현할 수 없지만 그때의 노을은 내 평생 가슴속에 기억될 거 같다.


사람마다 노을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얼마 남지 않은 해가 마지막 힘을 다해 주황빛을 쫙 쏴주는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그 주황빛이 저물고 천천히 하늘의 색이 변하는 노을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이제 끝났다 싶었는데 마지막으로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날마다 노을의 색감이 정말 달라서 어찌하나 고르긴 힘들지만

하나를 고르자면 나는 마지막 노을을 가장 좋아한다.


이쁜 노을이 다 지나가고 많은 사람들이 노을이 끝났다고 돌아갈 때

그때, 미친 듯이 붉은 노을이 하늘을 찢어 놓을 때가 가끔 있다.


그런 노을을 볼 때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멍 때리며 보게 된다.

아타카마에서 봤던 노을이 정말 그랬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꼭 추천해드리고 싶다.


언젠가 노을을 보러 가게 되면 지루해지고 조금 춥더라도 조금만 더 기다려보면 어떨까요?

날마다 오는 붉은 노을은 아니지만

언젠가 그 노을을 탁 트인 멋진 장소에서 보게 된다면 정말 뭉클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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