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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 Mar 24. 2022

당신과 나의 옳고 그름

다문화 가정 언어 교육에  대하여

   얼마 전 우리 가족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지인 가족을 만났다. 우리와 다르게 미국인 엄마와 한국인 아빠 가족이다. 우리처럼 어린 다문화 아이들을 한국 내에서 키우다 보니 주된 관심사는 교육이었다. 집에서 영어만 사용하는 우리 집과는 다르게 그 집은 엄마는 영어로, 아빠는 한국어 사용한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노는 와중에 우리는 교육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4시간 동안 나누었고 16분 정도로 편집되어서 유튜브에 올라갔다.


   그 영상은 순식간에 8만 뷰가 넘어섰고, 4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댓글 절반 이상은 우리 가족에 대한 비난이었다. 댓글 대부분은 아이들은 엄마와 한국어를 사용해야 하며, 아빠와 영어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거였다. 아이들이 집에서 한국어 사용하지 않을 경우에 한국어를 배울 수가 없으며 학습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들이 말하는 방법은 다문화 교육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로 실제 현실 환경에서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전제하고 있지 않았다.


   다문화 가정뿐만 아니라 모든 가정에는 각각 다른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는 누군가가 책상에 앉아서 머리로만 생각할 때 나오기 딱 좋은 논리가 각 부모는 각 언어로 아이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문화 가정은 일반적인 한국 가정과는 다른 미래 계획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한국에 사는 다문화 가정이지만 한국에 평생 정착하며 사는 게 그들의 목표가 아닐 수도 있다. 부모의 모국으로 가서 일정기간 지낼 계획이라든가, 제3국으로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각 가정이 가진 목표를 생각하지 않고 부모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아이와 보낼 수 있는지 계산하지 않고 단순하게 생각할 때 나올 수 있는 오류가 부모는 자신의 언어로 아이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 전에는 나 또한 그들처럼 생각했다. 책에 나오는 것처럼 부모들은 각자 자기 언어로 가르치면 되는 것인데 왜 다문화 아이들 언어에 문제가 되는 걸까 의심하곤 했었다. 내가 실제 그들 중 하나가 되고 난 뒤 수없이 많은 다문화 가족들을 만났다. 그들 모두 다 각자만의 교육 방식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있었다. 항상 한국어만 사용하는 집, 부모 각자 다른 언어 사용하는 집, 외국인 학교 보내는 집 등 정말 많은 방식으로 아이들 교육에 전념하고 있었다.


   많은 다문화 가족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의외의 공통점은 다문화지만 아이들이 2개 국어를 배우는 일은 한국인 아이가 2개 국어를 배우는 것만큼 힘들다는 것이었다. 아빠는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면서 아이와 지내는 절대적인 시간 자체가 적기 때문에 집에서 2개 국어를 사용하는 경우에 아이가 영어를 아빠로부터 배우는 게 쉽지 않다. 아빠와 의사소통이 어려워져서 아빠와 대화를 하려면 중간에 엄마가 개입해야만 하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모델 한현민은 우리 집처럼 나이지리아 아빠,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못한다. 어릴 때 엄마와 아빠가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서 거부감이 들어 영어를 배우지 않았다고 한다. 또 다른 경우도 있다. 외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한국 학교에 다니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집에서는 영어만 사용한다. 이 아이들은 자연스레 2개 언어를 습득해서 한국어 못하는 부모를 위해 통역사 역할도 한다.


   큰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학원에서 아이들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해 현재 8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지금까지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가르치면서 모든 아이에게 통하는 공통의 교육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았다. 아이들 모두 각자 특성이 다르게 때문에 어느 방법이 최고의 학습법이다 할 수 있는 건 없다. 한국 아이들도 그러한데, 각자 상황이 다 다른 다문화 가족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어떤 부모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 주변에 비슷한 다문화 아이들이 있는지, 한국 아이들만 있는지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언어 교육에 있어서 이렇다 한 정답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정답이다.

   유튜브 영상에 댓글을 남긴 사람들은 대화 4시간 중에 편집된 16분 만을 봤을 뿐이다. 그 시간 중 일부는 아이들이 등장해서 실제 우리의 대화는 몇 분 되지 않는다. 그 몇 분만으로 한 집안을 평가하려고 한다. 우리 집 규칙은 잘못되었으며 아이들 언어 발달은 제대로 되지 않을 거라며 그들만의 논리를 끝도 없이 펼친다. 영상조차 제대로 보지 않고 "한국에 살며 한국어를 못하는 아이들이 불쌍하다."며 마음대로 댓글을 다는 그들을 보며 나는 반론할 의지조차 상실한다.


   당신이 있는 곳에서 어떠한 게 옳다 하더라도,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옳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어제까지 믿었던 정의는 오늘과 다를 수 있다. 절대적인 옳음과 그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 속에서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신과는 전혀 다른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타인의 삶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 언급할 수 있는 자유는 당신의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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