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물에 흰 물 타기입니다

우물 밖에서 새로운 물을 찾기

by 코랄코튼

이 학생이 과연 학생인 것인가. 이 학생이 과연 나보다 9살 차이가 나는 게 맞는 것인가. 정말 참 어른스럽다. 정말 참 대견하고 훌륭한 학생이다. 생각했던 학생이 있었다. 고3에 처음 만난 학생인데 수업에서 마주할 때마다 놀라곤 했었다. 그런 학생이 날 정말 좋아해 줬다. 마치 나를 인형처럼 예뻐해 주고 아껴줬다. 그래서 그런지 그 학생 앞에서는 나이가 내세워지지 않았고 어린애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이 날 무시하거나 그러지도 않았다. 항상 존경한다고 표현해주고, 나와 대화하는 것을 너무 뜻깊게 생각해줬다. 정말 신비로운 관계였다. 제자랑 친구가 되고 싶었는데 그걸 가능하게 해 준 제자였다. 졸업 이후에도 중요한 순간, 중요한 이야기들을 자주 나눴었다. 그리고 각자의 무대에서 정말 바쁘게 누구보다 열심히 열정적으로 불태운 두 사람이었다.

결혼을 앞둔 마지막 겨울 방학, 오지여행이 취향인 내가 그런 여행지를 여행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 네팔, 이집트, 몽골, 아프리카를 다녀와야 하는데, 아직 인도밖에 다녀오지 못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책임감에 안전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될 것이고, 왠지 나머지 나라들을 못 갈 것 같았다. 네팔, 이집트, 몽골, 아프리카 중에 여행지를 고심하고 고심했는데 그래도 정답은 하나였다. 내가 가진 금전 상태로는 네팔 여행만이 가능했다. 히말라야 등반을 해보고 싶었고, 네팔의 전통 문양을 너무 좋아하던 나에게 이 역시 좋은 선택이 되었다. 그러던 찰나에 제자에게 연락이 왔었다. 이 제자는 나와 히피풍과 에스닉 스타일에 대해 이미 격한 공감을 나눈 사이었다. 네팔을 갈거라 말했더니, 바로 같이 가자고 하였다.

네팔 여행을 같이 가자고 얘기한 제자들도 있었고,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같이 가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 제자가 같이 가자더니 정말 같이 가게 되었다. 그렇게 제자와의 첫 해외여행의 서막이 올랐다. 여행을 가는 와중에도 실감이 안 났지만, 이미 너무 친구같이 편한 제자였고, 오히려 나를 또 엄청 챙겨주고 지켜주고 돌봐줘서 걱정할 게 없었다. 그렇게 짧고 굵게 네팔 여행을 하였고, 히말라야 등반도 하고, 히말라야 배경에서 패러글라이딩도 하고, 히말라야 선셋도 보았다. 문화유산도 구경하고, 술집도 가고, 카페에서 편지 쓰는 시간도 갖고, 쇼핑도 하고, 무엇보다 한복을 같이 입고 길을 걸었고, 화보 촬영하듯 사진도 찍었다. 어디서 볼 수 없는 경험할 수 없는 우리만의 여행을 알차게 채워나갔다. 무엇보다 같은 방에서 숙박을 하면서 더욱 가까워졌고,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나눈 대화는 정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역사가 되었다. 눈물도 흘렸고, 서로 응원도 할 뿐만 아니라 찬란하게 빛날 우리의 앞길을 저 멀리까지 함께 펼쳐보면서 황홀함을 느꼈다. 하루하루 더 마음이 단단해졌고, 너무 알차고 소중한 여행이 되었다. 여행은 각자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고, 여행을 다녀온 후 정말 바쁘게 열정을 불태웠다.

한동안 연락을 못하고 얼굴도 못 보게 되었다. 각자가 너무 바쁘고 각자가 집중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코로나로 인해 제자의 대학 졸업전시를 온라인 영상으로 보게 되었는데, '아, 정말 자기 다운 작품을 만들어 냈구나!' 하는 감탄이 앞섰다. 작품에서 고스란히 내가 알고 있는 이 제자의 철학과 이미지, 방향성이 보였다. 이건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내가 감히 평가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하나 분명한 건 정말 너다움이 잘 나타나서 내가 괜히 기쁘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덕이 내 덕이라고 한다. 우리의 네팔 여행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했고, 그때 같이 한복을 입고 여행한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에게 나는 그런 신선한 자극을 주는 사람이란 말을 해줬다. "약간 어떤 느낌이었냐면, 우물 안에 개구리였는데 선생님이 던져주는 소스들이 진짜 새롭고 막 들끓게 하는 그런 게 있었거든요. 그래서 선생님이랑 얘기를 하면 너무 좋은 거야. 그런 역할을 해주신 분이셨어요."

난 할 일이 있었다. "나 교사 안 할 거야." 이 말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 말을 하고 들은 대답 중에 정말 가장 끝판왕이었다. "전 사실 그걸 예전부터 느꼈죠. 교사가 되기엔 너무~ 아까워요. 교육체계가 바뀌지 않는 이상 검은 물에 흰 물 타기입니다. 회색도 안돼 심지어." 충격이었다. 내가 교사를 안 하겠다고 한 이유를 딱 한마디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너무 통쾌하게 그 표현을 해주었다. 그래서 정말 대단하다고 놀라움을 표현하고, 난 그걸 이제 알았는데 넌 어찌 알고 있냐고 물어봤다. "아니요, 선생님도 판단은 진작에 했죠. 다만 바뀔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거죠."라고 하는 말에 정말 할 말을 잃었다. 그랬다. 난 정말 바뀔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내가 바꾸려고 했다. 사람은 안 바뀐다, 고쳐 쓰는 거 아니다 라고 하면서 학생들까지도 방치하는 교사가 싫었고,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될 수밖에 없는 교육체제를 변화시키고 싶었고, 작은 노력부터 보여주려고 애썼다. 그리고 교육부장관상까지도 받았다. 하지만 그 역시 하나의 작품 활동에 수상을 한 느낌으로 끝이 나버렸고, 크게 바뀌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더 큰 변화를 만들고자 교육공무원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기로 다짐하였는데, 이걸 다 알고 있었다니.

"이야, 내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네. 다 알아주다니. 그래도 그런 내공이 있는 사람이 나를 알아봐 주니까 참 좋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내 제자는 긴 웃음을 보이더니 "아유, 선생님은 제가 인정하는 멋진 어른인걸요. 진정한 어른. 존경스러운 사람." 너무 감동적인 칭찬을 들었다. 그리고 "저는 진짜 선생님이 해준 칭찬들 되새기면서 버틴 적 많아요. 뭔가 특별해. 진짜 멋지고 대단한 스승님이에요." 내가 존경하는 제자가 날 이렇게 생각해주는 것 때문에서라도 정말 더 큰 책임을 가져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내가 다 보람이 있다며 역시 훌륭한 제자라고 했더니, "꿈꾸게 하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하며 그 공을 내 덕으로 돌렸다. "나 꿈꾸게 하는 거 주특기이고 좋아하는데 이제 어디 가서 할까 고민 중이야."라고 했더니 "맞아요, 이제 그걸 풀어나가면 되는 겁니다! 분명 잘하실 거예요. 본인만 결정하면 될 문제였지만, 결혼을 하시고 가정이 생기시니 결정하기 어려우셨겠죠."라고 했다. 아 그렇지, 그게 과제구나! 이런 말을 또 듣게 되니 이 제자가 얼마나 어른인지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느낀 책임의 무게까지 말하기도 전에 알아봐 준 것에서 정말 내 분신을 만난 것 같단 생각을 하였다. 미래에서 온 내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정도였다. 정말 좋은 시기에 좋은 대화를 나눠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자신도 오랜만에 광명을 찾았다며 기뻐했다. 이런 제자가 내 옆에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으면 주변을 둘러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하였고, 그들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겠다며 나 스스로부터가 진솔된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성장해왔다고 생각한다. 휴직을 하고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잠시 내 주변 사람들이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독함을 느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들 멋진 모습으로 나를 멋지게 생각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자기 다운 오늘을 살기 위해 정말 누구보다 진지한 고민과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내가 있었다. 난 충분히 그동안 가치로웠고, 앞으로 새 출발을 해도 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그들로부터 알았다. 난 멋진 선생님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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