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에 대한 오랜 믿음과 사랑이죠

선한 영향력이 지치지 않고 갇히지 않기를

by 코랄코튼

일방적으로 예뻐하던 학생이 있었다. 표현을 잘 안 하던 학생이라 날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 주변에 계속 있는 것 봐서는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닌 거 같네 했던 학생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치를 봐왔다. 라포 형성이 될수록 내 나름 학생과 펼쳐나갈 것들이 달라지기 때문에 긴장감 넘치는 경계를 두고 애정과 관심을 표했다가, 눈치를 보며 도도하게 떨어져 있었다. 거의 밀당 수준이었던 거 같다. 그 학생의 주변 선후배, 친구들한테도 많이 물어봤다. 그 학생이 날 편하게 생각하는 건지 아닌 건지, 날 좋아해서 그런 건지 아닌 건지. 그렇게 3년을 함께 해왔다.
3학년이 되어 이 학생이 진로 고민으로 많이 힘들어했고, 항상 조언을 입에 달고 살던 나에게 상담을 부탁했다. 의외였다. 나에게 상담을 해달라 하다니! 순간 오예! 싶기도 했다. 내가 선택받았구나!! 이게 무슨 팬심인지.. 내가 그 아이의 어른이 되는데 선정된 것처럼 기뻤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생각보다 그 학생이 나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었고, 난 그만큼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학생이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힘들어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도 하고, 많은 감정이 오갔다. 그러다 학생이 무언가 해결이 된 듯 가벼운 마음으로 마무리 지었지만 난 이 학생에게 이런 상담이 자주 필요하다는 것을 크게 느꼈다. 상담이란 것은 문제가 있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에게 필요한 분야이기도 하고 오히려 문제가 보이지 않는 학생에게도 적절히 필요한 것이 상담이다.
이 학생을 보면서 상담을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과 병행하며 상담심리 대학원을 다닐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런 성격이라 그런지, 완벽주의적인 성격과 외적 기준이 아닌 내적 기준으로 내적 동기가 높은 학생들의 고독함과 외로움과 힘듦, 그리고 그들이 갖춰야 할 사회적 기술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다. 밝은 에너지와 높은 역량 그리고 타인에게 긍정적 영향력을 발휘하며 리더십을 발하는 이들의 아픔과 슬픔을 알아봐 줄 사람들이 흔치 않기에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했다. 이러한 사람들이 건강해야 주변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었다.

고3에 찾아온 진로 고민의 고비에서도 학생은 당당하게 맞섰고, 자신의 진로를 충분히 탐색하고 그에 맞는 대학에 진학하였다. 졸업 후 잦은 만남이나 잦은 대화를 하진 못했지만, 스승의 날이나 생일이나 명절이나 기념일이 되면 항상 애정 가득한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내가 해준 게 뭐라고 이렇게 매 번 챙겨주고 이렇게 큰 애정표현을 하지? 오버해서 표현하는 걸 꺼야! 하고 의심하기도 했다. 의심의 표현을 내비쳤을 때에도 제자는 자신의 진심을 거짓 없이 표현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제는 내심 제자의 안부 인사가 기다려지기도 한다.
이 제자는 지금 누군가에게 선생님이 되어가는 준비를 하고 있다. 교사로서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는 제자에게 나의 교사로서의 끝을 말해주고 싶었다. '너도 교사하지 마.'의 의미로 써가 아니었다. '교사'의 역할에 대해 같은 가치를 가진 사람과의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할 말이 있다며, 교사를 안 할 거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답장이 "아우.. 저는 또 어디 엄청 아프시다는 줄 알고 긴장 가득했네요."였다. 아니! 선생님이 교사를 안 하겠다고 하는데, 아픈 줄 알고 걱정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내가 교사를 안 하겠다는 것보다 내가 아픈 게 더 걱정인 이 제자를 어찌해야 하는가. 왜 안 놀래냐고, 왜 건강을 더 걱정하냐고 그랬다. 그랬더니 "저는 선생님 선택은 뭐든지 응원해요. 선생님이 뭔가 휴식이 필요하거나... 뭐 다른 곳에 집중을 해서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했다. 와.. 내가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되어라!'하고 키우긴 했지만 무슨 이 20대 초년생 입에서 나오는 말이 이러한가.
왜 다들 나의 선언에 충격을 받지 않냐, 나만 왜 충격을 받냐 했더니 "교사에 대한 소중한 마음을 갖고 계신 건 다들 아는데, 아마 교사를 그만하는 것이 선생님 자신에 집중해야 해서.. 뭐 선생님에 대한 오랜 믿음과 사랑으로 충격은 받지 않았을까 싶네요."라고 한다. 그리고 덧붙여 "선생님도 엄청 고민하시고 한 선택일 것 같아요. 저는 선생님이 저에게 말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편하게 생각해주셔서 행복해요~"라고 했다. 역시나 내 생각이 맞았다. 이 제자는 선한 영향력을 나눌 줄 아는 아이였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교사가 될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지쳐있는 날 알아봐 주고 그 결정을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이 제자가 지쳐있던 그 시절, 알아봐 주고 학생의 결정을 존중했음에 스스로 칭찬한다. 그리고 이런 학생이 누군가의 선생님이 된다는 점에 너무 대견하고 뿌듯하다. 부디 나처럼 지치지 않기를 바라며 부디 나처럼 갇히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그리고 원한다면 그 길을 씩씩하게 걸어 나갈 수 있도록 옆에서 묵묵히 지켜주고 싶다.

이전 06화이끄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