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선생님은 선생님이에요

20대, 찬란히 빛내는 그 순간

by 코랄코튼

학생 때 엮어놓은 인연들과 함께 창업을 한 CEO 제자에게 생뚱맞게 갑자기 "내가 교사가 천직이라 생각해?"라고 질문을 했다. 생각보다 답변은 바로 왔다. "천직이라고 한다면 사실 잘 모르겠지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교사 생활 동안에 제자들이 선생님을 잊지 않고 꾸준히 기억하고 존경하는 것은 지금 이 대한민국에 선생님들 중에서도 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교사라는 직업에는 천직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준 선한 영향은 진짜니까 옳은 길잡이로써는 천직이 아닐까요?", "선생님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무얼 하시든 응원할 거예요."라는 말로 한 순간 내 마음을 치유하고 감동의 눈물을 선물해주었다. 한 편으로 이상함을 느꼈다. '왜요?', '무슨 일이에요?', '교사를 그만두기 아깝지 않아요?' 등의 말들을 안 하는 것일까? 왜 마치 이미 알고 있었던 거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답변이 올 수 있으며, 어떻게 이렇게 값진 진심을 가득 채워 보낼 수 있는 걸까? 나만 몰랐던 걸까? 내가 너무 제자를 어리게 생각한 걸까? 내가 꼰대인가? 생각에 꼬리를 물어갔다.


"그래도 선생님은, 선생님이에요.. 저에게 그런 큰 결심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매번 아픈 손가락처럼 잔소리하고, 혼내고, 울리고, 놀리고, 칭찬을 너무 안 해줘서 혼내지 않는 말 자체를 칭찬으로 알아들어야 했던 학생이었다. 언제 이렇게 의젓한 어른이 되었는지 너무 감동적이었다. 학생 때부터 옆에서 지켜보고, 사회로 나아가 CEO가 되는 과정에 무너지지 않도록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했다. 더 좋은 연결망을 이어주고, 발로 같이 뛰어왔는데, 어느 날부터 나에게 조언을 더 이상 구하지 않고, 내가 모르는 것들을 해내고, 결정하고, 좋은 소식은 뒤에서 한 번씩 주워 들어야 했다.

좋은 일이 있으면, 힘든 일이 있으면 항상 달려와서 얘기해주던 학생이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지혜를 구하러 찾아오던 학생이었다. 점점 나에게서 멀어져만 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됐다. 하필 또 휴직을 결정한 뒤 '이제 난 휴직한 교사니까 도움이 될 곳이 없구나.'하고 자존감이 내려가고 있을 때 더욱 크게 느껴졌다. 혼자 집에서 우울을 타면서, '이제 난 학생들에게는 물론 졸업한 제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아. 난 이제 역할을 다했나 봐. 난 여전히 관심이 있고, 난 여전히 함께하고 싶은데, 내가 더 이상 보호자처럼 옆에 있을 필요가 없는 거지. 이제 욕심을 놓고 멀어져 줘야 할 때가 됐나 봐.' 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오랜만에 우리 집에 놀러 오겠다 하여, 놀러 오라 했다. 함께 나눴던 수많은 이야기로 자존감이 낮아진 날 토닥여줬었다. 제자들은 날 멀리하고 날 불필요한 게 아니라, 그동안 연습해온 날갯짓을 스스로 펼치고 날아오를 때가 된 거였다. 내가 불필요한 게 아니라,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시기가 된 것이었다. 이 순간은 혼자 날아야 하고, 스스로 부딪히고 좌절하고 또다시 도전해야 했던 시기였던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생각 이상으로 잘 성장하였고, 나보다 더 멋진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님이 20대 자녀를 독립시키면서 뒤에서 묵묵히 있어주셨던 그 순간을 내가 조금이나마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역할은 그들이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었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나의 역할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또 나를 성장시켜주는구나.'하고 고마움을 느꼈고,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말에 괜히 뭉클한 든든함이 느껴졌었다.

나의 쭈글쭈글 한 마음을 읽었는지, 나에게 다른 제자들의 근황을 들려주었다. 명절이 되어 가족들의 안부를 오랜만에 모아 듣는 할머니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하고 혼자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이렇게 다른 친구들의 근황을 소개해주고, 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하 호호하며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만나지 못하고 있는 제자에게도 나의 존재가 여전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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