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없어지셔야겠네요
다름을 지키기 위한 노력
학교와 교사들의 무관심으로 학생들을 위한 수많은 기회들이 사라지는 것을 매일 경험하면서 지쳐갈 때쯤, 나는 그래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확인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학생의 역량뿐만 아니라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인재임을 증명해 보이는 대회가 있었고, 대회 자격에 적합하고도 남을 자랑스러운 제자가 있어 추천을 했다. 담임은 추천할 학생이 없음을 선언했지만, 난 그 반 학생을 추천하였다. 고3 후반, 다른 친구들에 비해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다름을 느끼고 다름을 인증하는데 지쳐 틀림으로 기울어져가던 학생이었다. 학생의 다름을 1학년 처음 수업에서 마주했을 때 마음이 벅차게 뛰었다. 그날을 기억하면, 그 아이가 지니고 있는 가치는 지켜줘야만 하는 가치였고, 앞으로 겪어나갈 외로운 싸움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어 큰 날개를 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슴속에 박혔던 그날이었다. 마치 나의 외로웠던 과거가 투사되어 보였다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저 그 어린아이가 앞으로 이 사회에서 나아갈 길이 너무 고독하겠구나 누구보다 더 크게 느꼈던 것이다.
학생을 추천하기 위해 여태껏 써본 추천서에 비할 수 없는 양을 작성하였고,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서술해야 한다는 제약 아래 억지로 지어내야 했던 이전의 추천서들에 비해 객관적으로 증명할 것이 많던 진짜 추천서를 쓸 수 있었다. 말이 매끄러운지, 의도가 잘 전달되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을 만큼 그 학생의 이야기는 한 아이의 성장을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었고, 난 그저 그 학생을 겪은 대로 서술하면 됐었다. 무엇보다 3년간 학교에서 펼친 나의 모든 활동에 그 학생은 묵묵히 항상 참여하였고, 참 많은 생각을 나누고 참 많은 순간을 함께 해왔기에 더욱 가능했었다. 왜 나와 항상 함께 하냐고, 프로젝트를 이렇게 많이 참여하면 힘들지 않냐고 물었을 때, 그 아이는 "선생님께서 하는 것은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도 일단 무조건 믿고 함께 해야겠다 싶었어요."라고 했었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믿어 따르던 학생이었다. 그렇게 지원한 대회에 시 대표로 선정되었고, 도 대표로도 선정되었고, 전국에서 대표로 모인 학생들 사이 한 명으로 결선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대회에서 우승하려는 목표는 없었다. 우승은 단지 학교 관리자와 시와 도의 관계자들의 욕심을 채워줄 뿐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냥 그 학생에게 자신의 가치가 얼마나 객관적으로 훌륭하고, 얼마나 존중받을 만 한지 스스로 경험하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학생이 자신의 '다름'을 지켜나가야 할 이유와 그 학생이 있어야 할 무대가 어디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결선에서 돌아오는 길에 바로 돌아가지 않고, 학생과 데이트를 했다. 독립 서점에서 책도 고르고, 밥도 먹으면서 정말 많은 가치로운 대화를 나눴다. 많은 어른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지만 건강하고 건설적인 이야기를 수준에 맞게 나눠볼 기회는 턱없이 부족했고, 그 결핍이 아주 컸던 나에게 이러한 대화가 통하는 유일한 존재였다. 철학을 논하듯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학생이기에 그 대화가 항상 기다려지고 행복했다. 매번 학생도 나로 인해 깨닫고, 성장하고, 그러면서 나에게 존경을 표했지만 나 역시 학생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배울 수 있었다. 쉰다는 것이 무엇인지,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른이란 무엇이며, 자기다움이 무엇인지 이러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대화들을 언젠가 책으로 만들어야겠다 생각할 정도였다. 교육분야 큰 무대에서 만나자, 의미가 앞서는 학교를 짓자 등 우리가 함께 할 미래도 크게 꿈꾸어 나갔다. 하지만 이 날 나의 퇴사 결정의 큰 불씨가 피어나기도 하였다. 나는 내 앞에 있는 졸업을 앞둔 고3에게 신뢰를 핑계로 잠깐 기대 보았다. 직접적인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학교를 떠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직접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학생은 이미 나의 메시지를 이해하였는지 그에 대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내가 학교를 위한다고 한 행동들이 학교를 성장시키는 정도를 넘어 한편으로는 교사들이 그 순간을 만족해하며 안일해하는 것 같다는 한탄을 토했을 때였다. 그러자 학생이 한 마디를 던졌다. "선생님이 없어지셔야겠네요." 순간 충격으로 와닿았다. 상처가 될 뻔했다. 내가 없어져야 한다니. '없어져버리겠어!'는 내가 생각할 말이지, '넌 없어져야 해!'라는 말을 듣게 되다니. 하지만 그 말의 의도가 무엇인지 바로 다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느 집단에나 누군가 두각을 나타내고, 그의 역량을 리더십으로 집단이 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집단 성장 리듬에서 회피적이고 수동적인 구성원이 많다면 무임승차 현상과 봉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을 간과하였다.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팀 프로젝트를 시키면서도 무임승차와 봉 효과가 일어나지 않게 주의를 기울였고, 학교 업무에 있어서도 부장으로서 부서가 그렇게 흘러가지 않게 노력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내 영향력이 미치는 곳은 곧 자발적으로 역할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안일할 방법을 찾는 사람들의 역할도 떠안게 할 좋은 타깃이 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비슷한 심리를 가지지만, 내가 능동적인 집단에 있는가 수동적인 집단에 있는가, 또는 내가 주로 소통하는 사람이 긍정적인 사람인가 부정적인 사람인가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내 나름 교사로서 건강한 교직관을 갖고, 사명감으로 책임을 다했던 나로 인해 집단이 결국 양극화돼버린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학생들에게 정말 많이 듣던 말 "선생님 없으면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요?" 그냥 칭찬인 줄 알았다. 선배 교사들에게 많이 듣던 말 "선생님이 없어도 다 돌아가요~ 책임감을 내려놓아요." 무책임한 말이라 생각했다. 한데 그 말들을 깊게 이해해야 하는 날이 왔다. '내가 없어도 학교가 돌아갈 수 있으니까, 이제는 서로를 위해서라도 내가 없어져야겠다. 그래야 그들의 역할이 생기고, 그들이 교사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겠고, 그것 역시 그들의 역할이기도 하니까.' 복잡했던 머릿속이 조금씩 정리되어 가는 그때, 이 학생의 한 마디가 내 마음을 더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그래도 제가 졸업할 때까지는 옆에 있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