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차 교사

교육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첫걸음

by 코랄코튼


"어 꿈에 쌤이 나왔어. 복직해서 자리 정리하던데? 무슨 꿈이지? 좋은 꿈같은데!"


태몽 같은 예지몽을 꿔준 동료 언니한테서 연락이 왔다. 어제 내가 학교에 복직했는지 자리 정리하는 꿈을 꾸었다고. 어제 난 학교를 떠날 결정을 했는데 말이다! 소름이 돋았다. 복직은 모르겠으나, 학교에서 내 자리를 정리하는 꿈이라니! 마치 태몽을 들은 것처럼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직 큰 결정을 한 지 하루밖에 안된 상황이라 말을 못 꺼냈었는데, 꿈 덕분에 나의 결정을 말할 수 있는 핑계가 생겼다. 자리 정리하는 꿈을 꿔준 보답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내 소식을 전했다.



"저, 교사 안 하려고요."





친한 친구들에게도 역시나 긴 설명이 필요도 없었다. "나 교사 안 하려고"라고 내 나름 정말 짧고 굵은 충격적인 발언을 던졌는데도 "그래, 넌 좀 아깝긴 했어. 그래 잘 결정했다!", "학교에 머물긴 아까운 인재야, 그만 나와 이제. 세상이 달라 보이겠군.", "넌 성장시키는 걸 좋아하지 딱히 선생님이랑은.. 꽤 빠르게 깨달음을 얻었구먼."이라며 짧고 굵고 명쾌한 답변을 돌려주었다. 심지어 내가 좋아라 따르는 지인은 "교사 안 하려고요!"라고 짧고 굵고 생뚱맞게 던져도 "뭐든 좋아요! 동의하고, 응원하고, 지지해요! 꼭 교사일 필요는 없죠, 사실.", "교사가 아니시더라도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실 거예요.", "교사를 안 하시게 되신다면.. 저희가 나눠볼 앞으로의 계획이 많아지겠는걸요?", "여태껏 선생님이 한 선택은 늘 최선이었고, 정답이었어요. 앞으로의 선택 또한 정답일 테니까 밀고 나가봐요!"등으로 값진 축복하는 메시지를 전해주셨다. 표현들을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하는지, 너무 생각 이상의 고마운 반응들이었고 그동안 물어보지 않아 말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하는 것처럼 덤덤하게 대답들을 해주어서 혼자 걱정했던 마음을 금방 추스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나의 소중한 인연들에 감사함을 다시 한번 느끼고, 용기와 자신감, 자존감을 회복했다.

7년을 꼬박 채운 교사의 길에서 휴직을 결정하였고, 한 해 동안 자기 탐색을 심도 있게 겪으며 퇴사라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7년 차 교사'라는 수식어에서 더 이상 숫자를 바꾸지 않고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34살, 젊은 나이에 정교사 자리를 내려놓는다는 결정에 설렘이 가득했지만 안정적인 직장에 익숙해진 것인지 두려움도 있고, 걱정도 앞섰다. 대학을 졸업한 26살 교사의 길에 바로 들어섰고, 1년을 자기 탐색 시간으로 활용하고, 28살에 정교사가 되었다. 정말 잘 된 일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29살에 3학년 부장을 맡고, 30살에 부서 부장직을 맡고, 32살 6년 차에 교육연구 부장직을 맡았다. 학생들과 하고 싶던 모든 것을 다 했다 할 수 있을 만큼 함께 충분히 즐겼고, 교육장, 교육감, 교육부장관상까지 받았다. 그 과정에서 나 역시 크게 성장해나갔다. 정말 짧고 굵은 7년이었다.

내가 교사가 될 그 당시에도 역시나 교사라는 직업은 학생들부터 어른들까지 선호하는 직업 1위라며 뉴스에서는 물론 여러 통계 자료를 장식하였었다. 그런 자리가 탐나서 준비했던 게 아닌 나로서는 그렇게 달갑게 들리는 소식은 아니었다. 적어도 보험 가입할 때 1순위 직업으로 우대해주 것처럼 자동적으로 생기는 명성 하나는 좋다고 생각한 정도였다. 그리고 참 많은 사람들이 교사의 사회적 역할을 만들어주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물기 바쁘다 보니 교사라는 직업이 그 가치를 펼치기 이전에 교육공무원이라는 틀 속에 갇힐 수도 있겠다 정도였다.

어릴 적 경험이 앞으로의 인생을 좌우한다는 생각으로 교사의 꿈을 키워갔었다. 한 사람 한 사람 개개인이 모여 사회 문화를 만들고, 그 안에서 또한 적응하며 함께 살아가는데 그 시대의 사회 문화를 결정짓는 예비 사회인을 키워내는 교육자 역할에 종사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었다. 그리고 '배운 것을 남주자' 하는 정신으로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우고 깨닫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그것을 누군가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과 그 정보를 적재적소 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전해줌으로써 하나의 좋은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대학에서는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상업적인 디자인에 대한 관심보다는 숨겨진 가치를 발견하고 빛을 발하게 하는 디자인의 기능 자체에 관심을 키워갔고, 나는 스스로 '교육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다. 한국 교육을 디자인하고 싶었고, 가장 먼저 할 일은 학교에 들어가 직접 학생들과 소통하고, 교육 현장을 경험하는 것이 그 첫 번째 순서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한국 교육의 가장 핵심이 될 학생들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 가치를 세상에 펼칠 수 있도록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기 위해 7년간 학교에서 '교사'로 존재하였다.

앞으로 다른 형태로서 교사의 역할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더 이상 교사라는 직업군에서 학생들과 새로이 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이고, 이러한 시점에서 지금까지 함께한 소중한 제자들과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보고 싶다. 휴직을 한 뒤로 조금씩 조금씩 더 빠르게 학생들과의 기억이 사라지고 있음이 느껴졌고, 그 소중한 추억들의 생생함이 잊히지 않도록 기억에서 떠올릴 계기가 너무 절실해졌다. 7년간 내 시간의 대부분은 학생들과 함께 나눴고, 나 역시 젊었던 그 시절 내가 경험한 찬란한 순간들의 대부분은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졌다. 그 이야기의 첫 번째는 '끝'에 대한 이야기다. 교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한 나의 이야기를 나눈 제자들과의 이야기이다. 여전히 '선생님'이라고 불려지는 내가 '교사'라는 직업을 그만둔다고 말했을 때, 나는 정말 마르지 않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기뻐서였다. 언제 이렇게 의젓하게 컸는지, 어쩜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는지, 내가 이들에게 도대체 뭘 했길래 나에게 이러한 감사한 선물을 돌려주는지에 대한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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