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교사 안 할 거야
나의 그릇을 나보다 더 크게 봐준 사람들
어떤 중대한 결정의 발표를 할 때, 아무에게나 순서 없이 얘기할 수가 없다. 나의 생각과 나의 가치를 온전히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 순으로 얘기를 할 수밖에 없고 나의 선택보다 자신의 걱정을 앞서게 될 사람은 한 단계 늦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내 마음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게 진심을 다한 표현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설명해 줄 필요도 없다. 어차피 어디선가 또 주워듣고 어디선가 또 자해석으로 날 평가할 테니까.
이러한 사람들에게 연연하지 않고 살면서 날 온전히 받아주고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 1명만 있어도 사람은 외롭지 않다고 하던데, 진정한 친구 3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던데, 아직은 모르겠지만 의외로 나에게 그런 사람들이 있음을 느낀다. 또 그렇게 그동안 잘 살아왔고, 이만하면 됐고, 넌 참 괜찮은 사람이다 라고 좀 울컥하면서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소중한 인연들 중에 내 제자들이 있음에 또 한 번 감사하다. 10년 지기 친구를 갖는 게 참 힘든 일이구나 싶었는데, 벌써 이 제자들이 내 친구가 돼준 지 7년이 되어간다.
제자들을 비롯하여 나의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는 남편, 교사를 안 할 거라는 말을 부모님보다 먼저 전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들은 감사한 말들을 모아 두고 싶어 엮는다. 생각보다 내 옆에 소중한 편이 많고, 생각보다 내 결정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아마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이미 그러한 소중한 존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 교사 안 할 거야."
당연하게도 가장 첫 번째로 얘기하게 된 듬직한 내 남편. 어느 날 갑자기 "내가 꼭 교사여야 할 필요는 없죠?"라는 나의 질문에 남편은 "그럼요. 하고 싶은 거 해요."라고 바로 대답해주었다. 내가 교사가 되었던 이유와 교사를 안 하려는 이유 그 결정의 계기 등등을 주저리주저리 말하는 것을 끊지 않고 주욱 들어주었고, "잘 결정했고, 안 그래도 교사로만 있기에 너무 아까운 사람이라고 늘 생각했어요."라는 말을 해주었다.
내가 교사로서 어떤 책임감과 사명감을 지녔고,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았던 남편의 말이라 더욱 짠했다. 제자 이야기들을 할 때마다 나에게 그런 관계가 부럽고, 대단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던 남편이었고, 내 제자들을 집에 초대하면 시간 내서 같이 밥도 먹고 대화도 함께 나눴던 사람이고, 내 친구들 이야기보다 제자들 이야기를 더 많이 알고 있는 그런 남편이 해준 말이라 더욱 고마웠다. 그 순간 난 마치 모래성이 파도에 쓸려가는 것에 울먹이는 아이가 되어 어른에게 그동안 고생했다고 토닥임을 받는 느낌이었고, 그렇게 남편은 나의 순수한 마음을 알아봐 주고 어루만져 주었다.
이러한 남편의 반응은 많은 사람들에게 내 남편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설명해주었다. 남편의 지지 덕에 바로 새로운 패턴의 삶을 펼쳐나갈 수 있게 되었다. 다시 글을 쓰고, 다시 그림을 그리고, 다시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꿈을 펼치고, 다시 배우고, 다시 하고자 하는 것들을 수없이 메모에 적어나갔다. 매일 메모에 적어나가는 속도 못지않게 머릿속에는 이를 가능케 하는 방법이 맵으로 드넓게 펼쳐져 갔고, 새로운 도전이 생겨남과 동시에 이미 실천에 옮기고 있는 나의 열정을 오랜만에 확인하게 되었다. 수많은 버킷리스트가 생겨나갔고, 멈춰있던 엔진이 굳은 몸을 천천히 돌려 더 세차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짧은 교사 생활 초임 시기에는 자신의 실패와 피해의식을 합리화하기 위해 극복하려 노력하기보다 타인을 깎아내리기 바쁜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해야 했고, 매사 열심히 책임을 다하고 도전하는 나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이런 학교에서 내가 부정적으로 변해가고 피해의식이 생겨가며 내 가치관이 이상한 것인가 흔들리던 시기에 보물 같은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힘들고 고독하고, 부정적인 사람들의 목소리에 상처 받고 지치고 힘들어하면 남편이 아무 조건 없이 그냥 보듬어주었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동료여도 그런 부정적인 사람들을 가까이 두지 않아도 되며, 다 잘 지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그래도 괜찮다고 얘기해줬었다.
주변을 돌아보면 본받고 싶은 교사도 없었고, 저렇게 하진 말아야지 싶은 행동들이 더 많이 보였다. 교사라는 집단에 속해있는 것이 자랑스럽지 않았고 정말 내가 생각한 교사는 존재하지 않으며, 실상은 이런 모습이었던 것인가 매일 되물었다. 친해지고 싶은 교사들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지쳤는지 경계를 날카롭게 세우고 있어 밀어내기 바빠 다가갈 수도 없었다. 성장에 갈증을 느껴 학교 밖으로 출장, 워크숍, 대회 등을 참여하며 어울리고 싶고 본받고 싶은 교사를 찾으려 애를 썼었다. 그러다 보니 보물 같은 교사를 몇몇 찾을 수 있었다.
이러한 나의 현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남편이 부러웠었다. 남편의 직장과 지인들만 보더라도 지성인들이 많았고, 누군가를 깎아내리기보다 높이 세우고 이끌어주는 환경이 당연한 곳이었다. 이러한 격차에 울컥하여 혼자 울던 어느 날 이에 대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남편이 나의 긴 하소연을 다 듣고 나서 한 마디를 했다. "내 손을 잡으면 돼요. 내가 더 나은 곳으로 이끌어줄게요. 그리고 발판이 필요하면 날 발판으로 삼아요." 무슨 성인군자도 아니고 나에겐 정말 하늘에서 천사가 내리는 빛줄기 같은 말이었다.
이런 남편을 만난 후 나는 더 단단해질 수 있었고,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바로 잡을 수 있었고, 나답게 성장할 수 있었다. 감옥에 갇혀있던 나를 풀어주었고, 발목에 묶여 있던 족쇄를 끊어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힘은 나의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었다. 학생들에게 내가 그런 존재가 되려고 노력했고, 그 순간들이 찬란했고, 감동적이었다.
한 해가 끝났다고, 이제 우리 반이 아니라고, 이제 졸업했다고 자신의 손을 떠난 학생들을 향해 한시름 놓는 교사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나는 매 순간 어린 친구들을 사귀어 나갔고, 해가 바뀌어도, 다른 반이 되어도, 졸업을 해도 이별인사를 최대한 하지 않았다. 또 볼 사이니까. 그만큼 나에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관계이니까.
물론 나와의 관계가 그렇지 못한 학생들도 있었겠지만 연연하지 않고 보내주는 것도, 기다려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엮이고 싶으면 알아서 엮이게 되는 것인데, 내가 질척이면 안 되는 거니까. 그건 어쩌면 악연을 만드는 거니까. 그런 관계를 이어 나갈 자신도 없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주변을 맴돌면서 언제나 나의 문을 두드리거나 나에게 도와달라 손을 내밀면 힘껏 잡아주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 덕분에 7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학생들이 내 마음속에 이름을 남기고 지나갔고, 짧은 시간이지만 소중한 제자들이 옆에 많이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