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끄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거 같아요

제자들과 항상 함께 한다는 것

by 코랄코튼

고등학교 1학년 때,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힘들어하던 학생에게 그 학생의 가치를 온전히 응원해주었던 적이 있다. 선배들과 공모전을 함께 참여하였는데, 결승으로 진출 해갈수록 아무것도 모르고 참여한 1학년의 입장에서 도움이 되기보다 짐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 학생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되고 있었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선배들이 지치지 않도록 응원해주고, 손이 부족한 것을 발로 뛰며 도와주고, 이질적인 팀원들이 더 돈독해질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해주고, 웃을 수 있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준 덕에 팀의 에너지는 소진되기보다 더 채워져 갔었다. 그 덕은 지도교사로서 나에게도 영향이 있었고, 항상 고맙고 기특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학생에게 그동안 못했던 고맙다는 말을 다 해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날부터 아낌없이 감사를 표현했던 나에게 지금까지도 한결같이 같이 있어주고 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항상 옆에서 바라봐주고 있어 주고, 학교에서 나의 거의 모든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겨주었다. 졸업할 때 전해받은 사진만 해도 몇십 GB나 포착해준 그런 제자에게 "나 교사 안 할 거야."라고 말했더니 바로 "다른 길 가시려고 하시는군요?"라는 답변이 왔다. 이에 답변을 하면서 또 한 번 이유를 명확히 정리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교사라는 직업으로 할 수 있을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는데, 그때가 와서 이제 교사로서 할 건 끝난 거 같아."라는 말에 "그렇군요. 벌써 목적 하나를 이루시다니, 선생님은 뭘 하셔도 다 어울리니까 기대가 되네요."라는 대답이 왔다. '목적 하나를 이뤘다'는 말로 표현한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교사는 내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거쳐갈 한 단계뿐이었다는 것을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주었다.
이에 이어 "전 선생님이 투잡으로 한복 홍보대사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널리 한복을 이롭게 하여 한 해를 한복의 해로 만들고, 그 위상이 날이 갈수록 더욱 높아져 명인이 된 선생님의 노력으로 인해 세계 한복의 날도 생기고요."라는 말을 이었다. 나는 한복 입고 학교 가는 교사였다. 한국의 아름다운 문화가 사람들에게 좋은 문화로 인식되길 바랐고, 어릴 때부터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이 있었다. 장구를 배우고, 한글 캘리그래피를 쓰고, 한국화를 그리고, 한국문화 소재 동아리를 운영하고, 한옥을 좋아하고, 한복모델 선발대회에 참여하고, 한복 입고 증명사진 찍기, 여행 가기, 출근하기 등의 문화 소재를 즐기고 배우고 공유해왔다. 한국문화에 전문가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한국 문화를 일상 속에 녹이는 것 자체가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었다. 처음 한복을 입었을 때에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학생들 중에서도 한복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지만 한복을 입는 사람이 없어서 걱정했었는데 그 걱정을 덜게 되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고, 동료 교사들 중에서도 보기 좋다고 훈훈하게 바라봐주는 분들도 계셨다. 하지만 왜 그런 옷을 입냐, 시대착오적이다, 북한 사람 같다고 흉을 보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도 한복 입고 학교에 온 나를 좋아해 주는 많은 학생들의 사랑스러운 눈빛을 더욱 존중했고, 이제는 나는 한국문화를 알리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갔다.

이러한 나를 누구보다 좋아해 주던 학생이었다. 그런데 교사를 관두겠다는 나의 말에 충격을 받기보다 나의 관심사에 세심하게 주목해주어 또 한 번 감동을 받았다. 이 제자의 말을 들으니 학생들에게 섬세하게 관심을 기울이던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괜히 스스로 자만해도 된다 생각하고 과한 해석을 해보자면, 학생이 앞머리를 새로 자른 것도, 새로 산 학용품을 알아봐 준 것도, 새로운 이성친구가 생기거나 헤어진 것도 물론 알아보았지만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는 학생이 있으면 혼내기보다 그 아이의 관심사에 주목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목표로 하는 평가 잣대에 어긋나는 관심사를 가졌다고 하면 골칫거리 학생으로 인식하기 쉬운 현실에서 나는 그 학생들의 학생들만의 관심사와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나면 내가 지금 천재를 알아보았구나 하고 황홀함도 경험할 수 있었다. 이 학생도 나를 섬세하게 알아봐 주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고, 고마움과 감동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나의 순간순간을 항상 함께하려 하고, 나를 따라다니면서 찬란했던 젊은 순간을 손수 기록으로 남겨주고, 내 부족함에도 항상 경청해준 이 아이와의 추억이 생각났다. 내가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었구나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내 옆에 한결같이 있어주는 것에 더 고마움을 느꼈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보듬어 주지 못하고 거리를 뒀던 나인데도 항상 날 존경하고 바라봐주고 있는 감사함을 이제야 더 느끼게 됐다. 지금은 타지에 멀리 떨어져 있게 되었지만 이제 난 학교에 있는 교사가 아니니까 이제는 내가 찾아가서 만나도 되는 친구가 되었다.

이제는 차별을 할까 봐 조바심에 모든 학생을 아끼려 했던 교사가 아니어도 되니까, 내 옆에 있는 내 제자 한 명 한 명에게 대놓고 사랑을 퍼부어도 된다는 걸 깨닫는다. 이제는 교사와 학생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라는 관계에 대해 더욱 간절해졌음에 지금이라도 표현을 더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나름 학생들 간에 편애를 하지 않겠다고, 과한 칭찬은 아꼈다. 나에 대한 학생들의 사랑과 관심 표현은 일부러 모른 척 넘기던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멋있다, 세계 한복의 날! 울컥하네. 네가 나에게 이러한 말을 해줘서! 내가 이것도 하나의 목표로 넣어둘게. 없던 건 아니지만 덕분에 명확해졌네!"라고 나름 어설프게 감사를 표현해보았다. 그리고 낯간지러운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그리고 난 투잡 안 할 거야. 10개 직업쯤은 있어야지."라고 했고, 내 제자는 "좋은 부품이 될 테니 언젠가 써주세요. 이끄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거 같아요."라고 답했다. 이에 "부품이 뭐야, 동업이지! 동료! 난 같이 해 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협업하자!"라는 말로 우리가 함께 할 프로젝트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고 보니 과했든 과하지 않았던, 나는 내 제자들에게 리더였던 거 같다. 함께 프로젝트를 하며 팀플을 할 때가 행복했고, 나를 교사보다 리더로서 믿고 따라주던 수많은 제자들이 옆에 있었다. 나의 꿈 중에 하나를 이룰 날이 가까워졌다는 걸 느낀다. 한국 교육 연구소를 운영하며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는 제자들과 함께 항상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는데, 이제 그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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