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필요했어요

난 제자들에게 충분히 먼저 살고 있는 어른일 뿐이었다

by 코랄코튼

고3 졸업식에 졸업을 기념하는 가족사진 가운데 내가 자리했다. 보통 자녀와 부모, 자녀와 담임 정도의 사진을 찍는데 나를 가운데로 세우고 대가족이 같이 사진을 찍었다. 내가 연예인인가 착각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지극한 팬심으로 대해 주시는 학부모님이 계셨다. 그 태도와 눈빛에 진심 가득한 사랑이 느껴져서 몸들 바를 몰랐다. 과한 사랑에 부끄러웠지만 내심 뿌듯하고 따뜻하고 행복했었다. 우리 반 반장 가족이었다.

정교사가 된 뒤 처음으로 2학년 담임을 맡았고, 반장도 뽑았다. 교사가 된 지 2년 차였고, 담임도 처음 해보았지만 내 나름 교사를 준비하는 매일 밤 담임이 되면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꿈꿔왔던 덕에 나름 수월하게 해 나갔다. 매일매일 우리 반 학생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는데 행복함이 가득했었다. 그리고 우리 반 아이들도 나의 어설프고 풋풋하고 정성 가득한 담임의 모습을 좋게 봐주었다. 하지만 얼마 못가 나에게도 힘든 일이 생겼다. 편애를 하지 않아야지, 편견을 갖지 말아야지, 강요를 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들 때문에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좁혀가는데 고비를 느꼈다. 맞고 틀리고라면 판단을 바로 할 수 있을 텐데, 의견이 다른 거는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참 어려웠다. 특히 체육대회 의상을 정하는 자리 같은 경우는 나에게 정말 피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학생들의 눈빛도 잊히지 않았다. 우리 편을 들어주세요! 하는 눈빛도 잠시, 도대체 언제 정해주시지? 하는 눈빛으로 변해가던 그 순간들이 나에겐 너무 힘들었다.

다른 부족함도 있었겠지만 이러한 우유부단한 담임의 허점은 숨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교원평가에 수많은 칭찬과 애정표현 사이에 충격적인 메시지에 주목하게 됐다. 지금은 정확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지만 나의 우유부단함을 꾸짖는 표현이었고, 강한 꾸짖음이었지만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표현이었다. 그래서 더 상처를 받았지만 기분이 나쁘기보다 '그래! 어디서 이런 진심 어린 충고를 들을 수 있겠어! 이 학생도 날 위해 용기 내서 이렇게 쓴 걸 테니까, 내가 고쳐봐야겠어!' 하고 도전과제로 삼았다. 막상 고쳐보겠다며 도전과제로 삼아놓고, 난 방법을 몰랐다. 그런데 이 도전과제를 함께 풀어가 준 학생이 우리 반 반장이었다. 우리 반 반장은 자신의 역할에 성실히 임하였지, 허풍스러운 인기를 가득 앉고 뽑힌 반장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학급 분위기가 평화롭게 유지되었고, 담임이 속 썩을 일이 없었다. 그리고 우유부단한 내가 쩔쩔매고 있는 순간을 맞이하면 반장이 밝고 명량한 모습으로 "선생님~ 제가 회의해서 결정할게요! 걱정 마세요."라고 해주었다. 내가 시킨 것도 아닌데 먼저 나서서 도와줬다. 난 얼른 아이처럼 반장 뒤로 숨은 담임이 되었지만 부끄러움을 느낄 새도 없게 반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날 대해줬다. "선생님, 회의 결과 이렇게 결정되었어요!", "애들이 불만 없어?", "네, 과반수로 결정 났고 애들도 동의했어요!"

너무 든든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뒤에 숨어있을 수 없으니 마주해야 했다. 그래서 반장이 회의를 이끄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의도하지 않게 정말 참된 학생자치를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반장이 보여주는 모습과 학생들과 상호작용하는 모습, 그 현장을 눈으로 꼼꼼하게 관찰하고 그 공기를 느끼고, 학습해나갔다. 한 번씩 작은 상황에서부터 연습을 했다. 생각보다 걱정보다 학생들의 반발은 없었다. 이미 충분히 고민도 많이 했을 뿐만 아니라 성의 없이 한쪽의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덧 우유부단한 의사결정을 하는 담임의 꼬리표는 잊혀가게 되었고, 학생들 앞에서 긴장하지 않는 시간들로 가득 채워나갔다. 학생에게 배운 덕분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제자에게 연락을 했다. 각자의 시간에서 힘든 고비도 있었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느라 바빴던지 한 번씩 안부만 겨우 묻던 시간이 벌써 몇 해가 지났다. 문득 내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잘 지냈어?", "선생님, 저 잘 지내고 있어요. 제 근황을 자리 잡으면 알려드리려고 했는데 너무 늦게 전달드리네요. 저 카페 차렸어요." 1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25살 제자가 카페를 차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 교사 안 하려고"라는 말을 꺼낼 타이밍을 놓쳤다. 하지만 말하고 싶었다. "나 교사 안 할 거야 이제"라고 한 말에 역시나 또 제자는 놀라지 않았다. "아하, 근데 선생님은 다 잘하시니까.. 으하하 이미 저를 포함하여 엄청난 제자들을 낳으셨으니.." 이에 이어 "카페 오세요~ 새로 나온 차 드릴게요!" 음.. 그 어느 제자들의 반응보다도 정말 짧고 굵었다. 순식간에 나의 퇴사 발표 소식은 지나가버렸다. 나는 글을 쓰고 있던 카페에서 짐을 챙겨 바로 그 카페로 넘어갔다.

도착한 카페에서는 한결같은 나의 반장이 반갑게 맞이해줬다. 그리고 졸업식장에서 나를 연예인으로 만들어주셨던 어머니도 같이 계셨는데, 날 보시면서 너무 반가워하시는 건 물론 팬미팅을 하는 기분이었다. 항상 묻고 싶었다. 내가 뭐라고 왜 이렇게 반겨주시고, 왜 이렇게 사랑스럽게 대해주시냐고. 학부모님들 중에 나에게 진심 어린 감사 표현을 하신 분들이 몇몇 계셨다. 하지만 그 감사 표현의 이유는 설명해주시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반장 부모님, 반장의 가족 구성원 전체가 날 이렇게 좋아해 주시고 아껴주시고 반겨주시는 건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 대답은 못 들었다. 그냥 계속 너무 좋아해 주셨다.

카페에서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짧은 시간이라 모든 얘기를 할 수 없었겠지만 정말 깊은 대화를 나눴다. 제자가 고민하고 있는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그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이를 말해주었다. 유레카를 외치듯 제자가 너무 통쾌해했다. 그리고 "그래! 선생님! 전 어른이 너무 필요했어요. 선생님을 만나야 했어요. 선생님을 만나니까 역시 아주 속이 다 시원해지네요!" 어른이 필요했다는 말을 몇 번 반복했다. 그리고 내가 어른이 되어줘서 항상 고마워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학생들에게 그렇게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너무 당연하게 난 이미 어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답게 사는 것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그러지 못했어서 우물 안에 갇혀있는 것 같았다는 얘기도 나눴다. 그 스승에 그 제자인지 어쩜 비슷한 고민에 비슷한 고비를 경험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그렇게 당연하게 얘기하지 못했으면서 허세를 부렸다. "선생님이 너네 학생 때부터 얘기했었지! 직업은 중요하지 않다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다고, 직업은 그것을 수행하게 해 줄 수단이며, 그걸 칭하는 이름일 뿐이라고.", "맞아요, 선생님이 그래서 그때 활동지 만들어오셔서 시켜주셨잖아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직업명도 직접 짓게 하셨고요! 제가 어디 가서 강의를 하면, 이 이야기를 꼭 해요. 그럼 제가 최고가 돼요!" 와우. 내가 학생들에게 깨닫게 해 주려고 고민하고 고민하며 손수 직접 글씨 써서 만든 활동지와 그 활동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전하고 있었다니.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며 그때 나의 말, 행동, 활동 하나하나를 소중히 간직해왔다며 다시 언급해주었다. 초임교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그 모든 순간이 대단했다고 손뼉 쳐주는 느낌이었다.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 외에도 나의 찬란했던 과거 사진을 보여주듯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큰 감동에 흠뻑 젖어있던 차에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런 내가 '교사'의 직업을 관두겠다는데 도대체 왜 조금도 놀라지 않느냐, 왜 다른 애들도, 내 지인도 왜 다 놀라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이유 좀 얘기해달라고 했다.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냥 놀랍지 않았다고 그래서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내가 첫해 때부터 학생들에게 입시가 다가 아니며, 취업이 다가 아니라며 꿈과 인생 목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는 게 생각났다. 교사인 나 역시 앞으로의 어떤 계획이 있는지 말해줘서 알고 있었고, 그렇게 정말 살아가시는 모습이 멋있다 생각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놀랄 일이 아니라고 했다. 정말이지 이런 제자들을 진심으로 사귀어온 나 자신에게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정말 충분히 멋진 선생님이었고, 선생님의 말 그대로 교사라는 직업이 아니어도 난 제자들에게 충분히 먼저 살고 있는 어른일 뿐이었다. 그 중요한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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