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제자들에게 충분히 먼저 살고 있는 어른일 뿐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제자에게 연락을 했다. 각자의 시간에서 힘든 고비도 있었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느라 바빴던지 한 번씩 안부만 겨우 묻던 시간이 벌써 몇 해가 지났다. 문득 내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잘 지냈어?", "선생님, 저 잘 지내고 있어요. 제 근황을 자리 잡으면 알려드리려고 했는데 너무 늦게 전달드리네요. 저 카페 차렸어요." 1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25살 제자가 카페를 차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 교사 안 하려고"라는 말을 꺼낼 타이밍을 놓쳤다. 하지만 말하고 싶었다. "나 교사 안 할 거야 이제"라고 한 말에 역시나 또 제자는 놀라지 않았다. "아하, 근데 선생님은 다 잘하시니까.. 으하하 이미 저를 포함하여 엄청난 제자들을 낳으셨으니.." 이에 이어 "카페 오세요~ 새로 나온 차 드릴게요!" 음.. 그 어느 제자들의 반응보다도 정말 짧고 굵었다. 순식간에 나의 퇴사 발표 소식은 지나가버렸다. 나는 글을 쓰고 있던 카페에서 짐을 챙겨 바로 그 카페로 넘어갔다.
도착한 카페에서는 한결같은 나의 반장이 반갑게 맞이해줬다. 그리고 졸업식장에서 나를 연예인으로 만들어주셨던 어머니도 같이 계셨는데, 날 보시면서 너무 반가워하시는 건 물론 팬미팅을 하는 기분이었다. 항상 묻고 싶었다. 내가 뭐라고 왜 이렇게 반겨주시고, 왜 이렇게 사랑스럽게 대해주시냐고. 학부모님들 중에 나에게 진심 어린 감사 표현을 하신 분들이 몇몇 계셨다. 하지만 그 감사 표현의 이유는 설명해주시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반장 부모님, 반장의 가족 구성원 전체가 날 이렇게 좋아해 주시고 아껴주시고 반겨주시는 건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 대답은 못 들었다. 그냥 계속 너무 좋아해 주셨다.
카페에서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짧은 시간이라 모든 얘기를 할 수 없었겠지만 정말 깊은 대화를 나눴다. 제자가 고민하고 있는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그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이를 말해주었다. 유레카를 외치듯 제자가 너무 통쾌해했다. 그리고 "그래! 선생님! 전 어른이 너무 필요했어요. 선생님을 만나야 했어요. 선생님을 만나니까 역시 아주 속이 다 시원해지네요!" 어른이 필요했다는 말을 몇 번 반복했다. 그리고 내가 어른이 되어줘서 항상 고마워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학생들에게 그렇게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너무 당연하게 난 이미 어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답게 사는 것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그러지 못했어서 우물 안에 갇혀있는 것 같았다는 얘기도 나눴다. 그 스승에 그 제자인지 어쩜 비슷한 고민에 비슷한 고비를 경험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그렇게 당연하게 얘기하지 못했으면서 허세를 부렸다. "선생님이 너네 학생 때부터 얘기했었지! 직업은 중요하지 않다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다고, 직업은 그것을 수행하게 해 줄 수단이며, 그걸 칭하는 이름일 뿐이라고.", "맞아요, 선생님이 그래서 그때 활동지 만들어오셔서 시켜주셨잖아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직업명도 직접 짓게 하셨고요! 제가 어디 가서 강의를 하면, 이 이야기를 꼭 해요. 그럼 제가 최고가 돼요!" 와우. 내가 학생들에게 깨닫게 해 주려고 고민하고 고민하며 손수 직접 글씨 써서 만든 활동지와 그 활동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전하고 있었다니.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며 그때 나의 말, 행동, 활동 하나하나를 소중히 간직해왔다며 다시 언급해주었다. 초임교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그 모든 순간이 대단했다고 손뼉 쳐주는 느낌이었다.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 외에도 나의 찬란했던 과거 사진을 보여주듯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큰 감동에 흠뻑 젖어있던 차에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런 내가 '교사'의 직업을 관두겠다는데 도대체 왜 조금도 놀라지 않느냐, 왜 다른 애들도, 내 지인도 왜 다 놀라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이유 좀 얘기해달라고 했다.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냥 놀랍지 않았다고 그래서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내가 첫해 때부터 학생들에게 입시가 다가 아니며, 취업이 다가 아니라며 꿈과 인생 목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는 게 생각났다. 교사인 나 역시 앞으로의 어떤 계획이 있는지 말해줘서 알고 있었고, 그렇게 정말 살아가시는 모습이 멋있다 생각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놀랄 일이 아니라고 했다. 정말이지 이런 제자들을 진심으로 사귀어온 나 자신에게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정말 충분히 멋진 선생님이었고, 선생님의 말 그대로 교사라는 직업이 아니어도 난 제자들에게 충분히 먼저 살고 있는 어른일 뿐이었다. 그 중요한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