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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가다 Apr 11. 2024

봄날 경주 벚꽃마라톤

꽃길을 뛰어요

알람이 울리자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벚꽃길을 달려보자!


아침 7시 반, 도로변에 길게 늘어선 차량 뒤로 주차했다. 맞은편에도 자동차가 끊임없이 줄을 서서 주차 중이다. 앞 차에서 내린 이들은 반바지로 가볍게 옷을 입고 운동화 끈을 맨다. 옆에 있던 이는 양 무릎에 테이핑 하는 중. 멈춰있는 그들을 지나쳐 빠른 걸음으로 본부석을 향해 걸었다.




경주 엑스포 공원 입구에 벚꽃 마라톤 안내 깃발과 현수막이 가득하다. 들썩이는 음악에 머리는 지끈거리지만, 졸리던 눈은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하며 초롱초롱해진다.

사방에 활기로 가득한 어투와 생기 있는 표정. 아! 좋다.


지인들 있는 단체 부스를 찾아 인사를 나눴다. 올해 단체 티는 아이보리색 반소매 티셔츠다. 각양각색으로 하의와 신발, 웃옷과 모자를 착용했지만 아이보리색 티셔츠는 모두를 한데 모아준다. 단체복의 의미는 제법 큰다.


“중간에 다치는 사람 있으면 한 가족으로서 도와주십시오.”

마이크를 든 사회자는 안전 사항을 전달하면서 말한다.


2차선 도로 양측은 끝없는 인파로 가득하다. 인도까지 발 디딜 공간 없이 달리기 선수들로 줄을 섰다. 수년째 재치 있는 어투로 사회 보는 배동성 개그맨의 소리가 익숙하다. 사회자의 안내 중간중간 즐거운 웃음도 터진다. 8년 전 이곳에서 연두색 반소매 단체티를 입고 뛰었다. 그때보다 운영 방식은 더 세련되고 참가하는 이들도 다양하다.


오전 여덟 시부터 21.095킬로미터 하프를 시작으로 10킬로미터 주자도 출발이다. 시작 발포 소리가 들리고 앞줄이 점점 줄어든다. 이제 5킬로다. 가족별로 나란히 서기도 하고, 유모차를 끄는 이도 보인다. 뒤를 돌아보니 사람들의 행렬이 끝없다.


“자, 5킬로 선수들!

10킬로보다 늦게 출발해도 더 빨리 들어올 수 있어 아주 좋지요.

한 시간 안에는 돌아오세요. 중간에 잠들지 말고요.”

“자 출발!”


시작과 함께 모두 뛰어나간다. 앞질러 박차고 나가는 이들, 아이 손을 잡고 즐겁게 뛰는 이들, 두 손 잡고 정겹게 걷는 남녀. 앞뒤로 들썩이는 열정과 활기로 덩달아 걸음은 빨라진다. 경주월드 놀이 기구가 오른쪽으로 보인다.


올해는 날짜에 맞춰 벚꽃도 만개했다. 양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가로수 흰 벚꽃 아래를 뛰고 걷는다.  꽃길만 걷는 순간이다.


이른 아침부터 즐거움으로 가득한 사람들 모임이라, 마라톤 구간은 절로 흥이 난다. 마라톤 복장에 왕관을 쓰고, 분홍색 면사포를 길게 늘어뜨린 외국인 여성이 맞은편에 보인다. 벌써 코스를 돌아오는가 보다. 코스튬을 멋지게 입고 신나게 달리는 모습에 미소가 난다.


휠체어를 나란히 굴리며 참가한 중년의 두 친구 모습도 활기 있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이들의 모습은 꽃길이라 더 멋지다. 힘 있게 바퀴를 굴리며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은 여유 있게 운동을 즐기는 모습이다.


벚꽃 아래 봄날을 누리는 경주의 주말 풍경이 영화처럼 이어진다.


중간 지점을 돌아 종착지인 출발점이 보인다. 10킬로를 달린 선수들이 왼쪽 다른 코스에서 들어온다. 표정과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은 채 줄지어 달려 결승선에 도착하고 있다. 결승선이 기다리던 가족과 친구들은 사진과 영상을 찍으며 환영한다. 마라토너들의 거친 숨과 땀마저도 위대해 보인다. 만족하는 듯한 환한 웃음과 브이를 올린 손을 보며 덩달아 즐겁다.


참가 종목마다 달린 이들의 목표는 다르다.

경기를 뛰며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는 이도 분명히 있겠지만, 5킬로 뛰는 대부분은 벚꽃 축제를 즐기며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한 이들이다. 그래서 속도와 시간 상관하지 않고 주변 풍경도 살펴 가며 사진을 찍고 동행한 이들과 대화도 나눈다. 가족과 동행하며 발을 맞추는 이들이 많다.


하프와 10킬로 뛰는 이들은 복장부터 다르다. 가벼운 반바지에 러닝화를 신었다. 중간에  쉼 없이 똑같은 보폭으로 달린다. 결승선 앞에서도 최선을 다해 기록을 줄여간다. 제대로 달리기를 즐기려 하는 이들이다. 산악 훈련, 달리기 훈련도 마다하지 않는다. 42.195km 완주가 최종 목표다.




행사에 어떤 목적으로 참가했든 봄날을 즐길 수 있는 이유는 집 밖을 나와 수고를 더했기 때문이다. 각각의 목표와 이유는 달라도 하늘이 주는 축복을 자신의 분량만큼 챙겨 돌아간다. 생도 마찬가지다.


봄날이 주는 축복!


뻐근해진 다리를 들어 자동차에 넣으며 뿌듯함도 채워진다.

도로를 뛰며 보았던 봄날 풍경과 사진도 함께 집으로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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