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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제뷰 Feb 19. 2021

도어록과 비밀번호

1.

브런치 작가로서 집에서 일하고 보내는 시간이 많다. 글을 쓰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과거에는 직장에서 글을 썼었다. 글 쓰는 일로 재택근무를 하게 된 셈이다. 다른 이유로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코로나 19 때문이다.


1년이 지난 코로나 사태는 일상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 재택근무는 물론 집콕 생활이 대세가 되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면서 집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미국과 영국에서 재난지원금으로 무엇을 했나 조사해보니 소파, 침대, 대형 TV, PC 등을 구입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집콕 생활과 재택근무를 하면서 근무 및 휴식 공간으로서 집을 재단 장하려는 소비행태라 할 수 있다.


집은 가정의 보금자리이며 쉬고 일하는 공간이다. 영국인들에게 집은 자신의 성(城, castle)이라는 개념이 강하다. 나의 성에 나의 허락 없이 들어오는 것은 물론 안 된다. 미국은 더하다. 미국에서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하면 정당방위의 법리가 적용되며 총기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2.

내 집은 나와 가족의 고유한 공간이다. 우리의 허락 없이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다. 그래서 현관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진다. 요즘에는 도어록이 대세다. 도어록에는 비밀번호가 있어 가족 외에는 열 수가 없다. 아내와 아이들이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를 들으면 누군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도어록의 번호를 누르는 속도와 강도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수년 전에 집에 있는데 바깥에서 누군가가 도어록의 번호를 누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가족이 아니었다. 가족이 아닌데 왜 누를까? 비밀번호가 틀려서 그런지 문은 열리지 않았다. 더 이상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마 자기 집인 줄 착각하고 누를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만일 이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어느 지인은 실제 이런 일을 당해 경비원에게 신고하였는데 잡고 보니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남의 집 도어록 번호를 눌러 들어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한두 번은 착오나 실수로 그럴 수도 있겠지만.


3.

지난 1월 이런 일과 관련된 법원의 판결이 나와 뉴스가 됐다. 빌라 3층에 사는 20대 남성 A 씨는 빌라 2층에 있는 여성 B 씨의 집 출입문 비밀번호 4자리를 입력하고 들어가려 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A 씨는 문을 열었으나 B 씨가 집에 있는 걸 보자마자 도망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당시 우편물함에서 꺼낸 가스요금 지로용지를 보며 올라가다가 층수를 헷갈렸다고 주장했다. 평소처럼 문 비밀번호를 눌렀을 뿐인데 공교롭게 현관문이 열렸다는 것이다.


판사는 이 같은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 씨가 사전에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단 한 번에 문이 열렸다는 것이다. 피고인과 피해자의 도어록 비밀번호는 같은 번호로 구성은 돼있었다고 한다. 판사는 "같은 번호로 구성은 돼있지만 순서가 상이한 다른 번호"라며 "실제 비밀번호를 누를 때 손의 움직임(이동경로)이 전혀 겹치지 않는 점을 중시했다. A 씨는 비밀번호 외 여러 가지 정황 증거를 제시했다. 그러나 판사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했다. 


A 씨는 B 씨의 도어록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아냈을까? 몰래카메라를 설치했을까? 그러지 않고는 다른 사람의 도어록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아이폰의 비밀번호도 알아낼 수 있다는데  A 씨만 아는 어떤 방법이 있었던 것일까?  2018년에 개봉된 영화 '도어록'은 혼자 사는 여성의 아파트 집 비밀번호를 알아내어 괴한이 잠입한 상황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영화는 범인이 어떻게 도어록 비밀번호를 알았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4.

도어록 비밀번호를 분실하거나 오류로 문을 열 수 없어서 제조사에 아프터서비스를 요청하거나 상가 열쇠점에 문의하면 파손해야 문을 열 수 있다는 답을 듣게 된다고 한다. 원칙이 그렇다는 것 같다. 네이버 블로그에 보면 파손 없이 도어록을 열 수 있는 열쇠 전문점들이 성업 중인 것을 알 수 있다. 비밀번호를 몰라도 전문가는 도어록을 열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도어록에는 이중 잠금장치가 있다. 이것을 이용하면 내부에서는 개폐할 수 있으나 외부에서는 열 수 없게 되어 있다. 이것마저 믿기 어려우면 수동식 잠금장치를 사용하면 된다. 최근에는 와이파이로 실시간 IOT(사물인터넷) 서비스가 가능한 지문인식 디지털 도어록이 나왔다. 완벽하다고 하나 지문이 유출될 경우 보안을 장담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아무튼 도어록 비밀번호를 4자리로 하는 것은 보안상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 집의 도어록 비밀번호는 더 많은 자릿수로 하였다. 집에 들어올 때 우리 가족은 주인 의식과 함께 가족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의 번호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도어록 비밀번호가 주는 교육 효과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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