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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Jun 08. 2021

어디 살아?

내가 살던 고향은...

"어디 살아?"
그것이 유미가 처음 건넨 말이었다.
"명문 빌라."
무심코 집 이름을 말한 뒤 이 대화가 몹시 낯설다는 것을 깨달았다.
북성로에 사는 아이가 "어디 살아?"라고 묻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묻는다면 '어느 방향으로 가?' 다시 말해 '집에 같이 갈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수성구에서 처음 만난 아이가 "어디 살아?"라고 묻자 자연스럽게 집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p.36

나는 성인이 되어 부모님의 사업장 이전으로 이사를 하기 전까지는 서울 목동에 살았다.

내가 태어났을 때 목동 신도시가 조성되었고 지금은 목동이라는 말만 들어도 대치동 못지않은 학구열을 가진 아파트 단지로 사람들의 기억에 자리 잡혀있다. 부모님은 1단지가 처음 입주를 시작할 때쯤 집을 새로 구하셔야 했는데 1단지와 일반 빌라를 놓고 고민하시다 빌라를 샀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택에 매우 아쉬움이 크지만, 그때 당시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워낙에 하자가 많다는 소문을 듣다 보니 갈 수 없다고 하셨다.

학생 때까지만 해도 아파트에 살던 빌라에 살던, 주거형태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와 사람들이 "어디 살아?"라고 묻는 질문에 "목동이요"라고 대답하면 모두가 생각하는 목동아파트 단지를 떠올렸다. "아니요, 저는 거기 안 살아요. 저희 동네는 목동이지만 아파트는 아니고요..." 사는 곳을 설명할 때마다 주저리주저리 설명이 길어졌다. 왜 그랬을까?


목동은 행정구역으로 1동부터 5동까지 있다. 작은 동네가 아니라는 소리다.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는 14단지까지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목동과 신정동을 걸쳐서 있는데, 사람들은 신시가지 아파트만을 목동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럼 아파트에 살지 않는 다른 목동 주민들은 목동 사람이 아닌 것인가?라는 생각에 나는 목동 산다고 말하면서도 남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지명을 덧붙여가며 세세하게 내가 아파트에 안 살아도 목동 주민이라는 것을 말했던 것 같다.


목동의 중심상권이 5호선 목동역과 오목교역을 기준으로 자리 잡았고, 대형 학원과 백화점, 방송국 등 각종 시설이 밀집되었다. 학창 시절 h백화점이 처음 들어왔을 때 친구들하고 이제는 강남이나 영등포로 안 가서 놀아도 된다고 기뻐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목동 하면 꽤 괜찮은 동네에 사는 사람처럼 인식해주었고, 나도 어느 순간 주저리주저리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나름의 목동 부심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행정구역으로 분리된 주변지역과 별 다를 바가 없었는데 단지 신분증에 적인 목동이라는 글자가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부모님을 따라 인천으로 이사 와서도 목동이 찍힌 신분증을 새 주소로 바꾸지 않았고, 새롭게 인천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인천사람이 아니고 목동살다왔어'라고 말했었다.


목동을 떠나온 지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다. 한동네에 살던 친구들도 결혼해서 다양한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져버리고, 서울에 살던 대학 동기들도 결혼 후 한 명도 서울에 사는 친구가 안 남아 있는 걸 보며, 지역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지금 내 아이가 이 동네를 자랑스러워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저 내가 태어나서 20년 넘게 살던 곳에 대한 애정이 잘 못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부동산 개발로 신도시가 늘어나고, 예전처럼 동네를 구분 지어 빈부를 나누는 것이 아닌 아파트 브랜드로 나누는 시대가 왔다. 같은 지역인데도 서로 집값으로 신경전을 벌이며 내가 잘났네를 외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외부에서 보면 다 같은 곳인데 내부에서 우리끼리 싸우는 꼴이 얼마나 창피한지 그들은 알까 싶다. 물론 나도 집값 오르고 내가 사는 동네의 가치가 오른다면 너무 좋지만, 인터넷에 아이들이 '엘사', '휴거'라는 말을 쓰며 그룹을 나누고, 어른들이 더 나서서 단지 내 놀이터를 막았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씁쓸한 마음은 지울 수가 없다.


아이가 유행하는 자동차 게임을 하면서 관련 유튜브를 한참 보더니 슈퍼카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람보르기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차이고 그 차를 사기 위해 인생을 걸 것처럼 말한다. 지나가는 차들은 관심도 없고 고급 외제차만 눈으로 좇는 모습을 보며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비싼 것이 좋은 것, 싼 것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아닌가 겁이 났다.  아이들도 친구들 집에 놀러 다니다 보면 어느 집은 작고, 어느 집은 크다는 걸 눈으로 보며 누구네 집이 좋다고 말한다. 이건 내가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보고 느끼는 것이니 딱히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새삼스레 경제교육이 중요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단순히 주식투자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아이가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부모부터 변해야 한다. 나부터 공부하고 바르게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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