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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Apr 25. 2022

반갑다, 싸이월드

없으면 보고 싶고 있으면 안 보게 되는 우리 사이, 타임캡슐을 열다.

우여곡절 끝에 싸이월드가 컴백했다.

싸이월드의 마지막을 알리며 백업 유예기간을 줬을 때 어물쩡거리다 백업을 못했었다. 그때 사실 마음이 반반이었는데 사실 흑역사 소환해서 뭐하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추억인데 남기고 싶기도 하고 갈팡질팡하다 막상 백업을 못한 채 사이트가 막히고 나니 아쉬움이 가득했다. 중간중간 복구 관련 기사가 떴는데 댓글을 보면  '없으면 아쉬워하면서 막상 복구하면 쓰지도 않을 거면서', '그러게 복구하라고 할 때 진작하지 나중에 난리', '돌아와서 뭐하냐 그냥 영원히 사라져라'... 등 악플이 가득했다. 


'싸이월드'는 나에게 한 시절이다. 20대의 모든 기록이 그곳에 저장되어있다. 지금 보면 오글거릴법한 글도 있고, 분명히 지웠는데 어딘가에 남아있는 옛 연인의 흔적과 함께 젊음을 즐기던 모든 추억이 저장되어있다.

싸이월드의 등장으로 디지털 이미지의 대중화가 되었다. 남들보다 성능 좋은 디카를 갖고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애썼다. 더 이상 사진을 인화하지 않고 CD에 파일을 담아 건넸다. 쉽게 찍을 수 있다는 장점은 쉽게 지울 수 있다는 단점도 된다. 인화하지 못한 기억은 휘발되기에 싸이월드 사진첩에 정성스레 사진을 정리하고 기록을 남겼다. 친한 지인들과는 일촌 맺기가 필수였다. 싸이월드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기능 중에 하나는 일촌을 나와 친밀한 범위에 따라 등급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 사생활을 오픈할 수 있는 범위가 정해져 있는 것이다. 물론 네이버 블로그에도 서로 이웃, 이웃, 전체 공개로 나눌 수 있지만 싸이월드의 일촌은 블로그 이웃과는 친밀감의 차이가 달랐기에 일촌을 나누어 설정하는 것이 나름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싸이월드가 쇠퇴기에 들어간 것은 스마트폰 시대를 발 빠르게 따라잡지 못한 것이 크다고 한다. 물론 그 이유가 크겠지만 예능프로그램 등의 매체에서 연예인들이 "나는 가끔 눈물을 흘린다"처럼 싸이월드에 남긴 기록들을 찾아내어 흑역사로 인식시킨 것도 한 몫한 것 같다.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10대부터 20대 초반까지였고, 한창 혈기왕성하고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시기이다 보니 다소 촌스러운 듯한 서툰 표현으로 불안정한 감정들을 표출했다. 사춘기 시절에 쓴 일기장을 다 커서 보면 참을 수 없는 민망함에 왜 이런 걸 애지중지 보관했을까 생각하며 불살라버리는 것처럼 지나고 보니 사진 속 젊고 생기 넘치는 나를 보기보단 촌스러운 패션과 부끄러운 감성글에 눈이 먼저 가서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더욱 간편하고 감각적이며 새로운 방식의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니 굳이 PC를 켜는 수고 따위는 하지 않게 되고 그렇게 싸이월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싸이월드가 새로운 회사에 인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돌아올 수 있을까? 의심이 가득했다.

정체되어있던 시간 동안 SNS는 급속도로 발달했고,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넘어설 수 있을까 궁금했다.

싸이월드 쇠퇴기에 카카오스토리가 등장했고 주변 지인들 모두 카카오스토리로 옮겨갔다. (싸이월드가 20대 청춘 기록이라면 카카오스토리는 30대 나의 육아일기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등장과 여전히 강자로 남아있는 페이스북으로 인해 내 주변에 남아있는 이용자가 없다. 싸이월드 이야기를 하며 카카오스토리도 같은 절차를 밟게 되는 건 아닌가 걱정을 잠시 하기도 했다. 백업 게으름뱅이는 카스도 데이터 무덤으로 보낼 것 같기에...


단계적으로 복구를 하고 있는 싸이월드, 달라진 시대에 발맞춰서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인다고 한다. 오늘 설레는 마음으로 싸이월드 앱을 깔고 로그인을 했다. 아직 사진첩이나 블로그 등이 복구되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주변에 사진첩 복구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래전에 묻어둔 타임캡슐을 꺼낸 기분이라고 한다.

사진첩이 복구되었다는 알람을 받았을 때 너무 신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게도 올 복구 알람을 기다려본다. 20대의 나는 안녕한지,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나는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잘 살았다고, 그때 너의 열정과 추억으로 지금도 힘을 내서 잘 살고 있으니 외로워하거나 힘들어하지 말라고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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