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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인 Sep 26. 2023

좋은 습관 나쁜 습관

나의 글쓰기

10대 때 함께 글쓰기 수업에 다녔던 친구가 얼마 전 나에게 말했다.
어느새 너는 숙련된 세탁소 사장님처럼 글을 쓴다고. 혹은 사부작사부작 장사하는 국숫집 사장님처럼 글을 쓴다고. 나에게 그것은 재능이 있다는 말보다 더 황홀한 칭찬이다. 무던한 반복으로 글쓰기의 세계를 일구는 동안에는 코앞에 닥친 이야기를 날마다 다루느라 재능 같은 것은 잊어버리게 된다.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중 p. 25  


그동안 나는 매주 월요일이면 마감을 지켰다. 

수요일 글쓰기 수업도 결석하지 않고 나갔다. 목적 없는 사람치고는 꽤 오래 버텼다. 성취주의자가 아닌 덕분에 나는 글 쓰는 괴로움도 즐길 수 있었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감을 지키다 보니 글 쓰는 습관이 일상 속에 자리 잡았다. 

나만의 리듬과 루틴이 생겼다. 매일 같은 시간에 쓰지는 못했지만 하루에 한두 시간은 글 쓸 시간을 만들었다. 


원피스를 입고도 검은색 백팩에 컴퓨터와 책들을 넣고 매고 다녔다. 샤워하면서 글의 제목을 생각했고, 월요일 마감날이 되면 어떻게든 집중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갔다. 아이들과 남편도 월요일 밤이면 엄마가 숙제하려니 하고 알아서 잠자리에 드는 일을 해결했다. 




글을 쓴 지 2년이 지난 어느 날,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왜 글을 쓰고 싶냐고. 선생님은 내 글이 흔들리거나 생각의 번잡함이 글에 드러날 때 그렇게 묻곤 했다. 그럴 때면 선생님이 생일과 태어난 시간만 듣고 사주를 맞히는 점쟁이 같았다. 내 글만 읽고도 나의 상태를 알아맞히는. 나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말문이 막혔다.


“꾸준히 쓰는 습관을 들였으니 이제 설렁설렁
 뛰어넘는 것만 고치면 좋을 것 같아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쿡쿡 찔렸다. 

‘설렁설렁’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남았다. 


어쩌면 나는 글 한 편의 형태를 만드는 데 익숙해진 것일지도 몰랐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만 열심히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고치지 못한 습관이 있었다. 

머무르지 못하고 캥거루처럼 뛰어다니는 습관이었다. 나는 길게 늘여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글에서도 그랬다. 지레 축약해서 썼다. 그러니 설명해야 하는 부분을 술렁술렁 뛰어넘었다. 급하고 갑작스러웠다. 나만 아는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달하려면 건너뛰지 말고 친절해져야 했다. 두 페이지를 채울 만큼 글자를 채워 넣고, 제목을 짓고, 업로드하는 데 급급하지 말고 집요해질 필요가 있었다.


선생님은 내 글을 보고 한 문장 한 문장 꿰매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앞 문장에 기대서 써 보세요.”


앞에 기댄다는 말이 참 좋았다. 앞 문장을 내버려 두고 달려가 버리지 말고 기대어 가라는 말. 나의 나쁜 습관을 고치려면 굴비처럼 한 문장 한 문장 엮어야 했다.


집요하게 쓰려면 키보드만 두드려서는 안 됐다. 

실용문을 쓸 때는 문장과 문장을 엮는데 집중하면 되지만 내 이야기를 쓸 때는 집요해지기 힘들었다. 파고들면 들수록 나의 민낯이 드러나 괴로웠다. 덮고 도망가서 그럭저럭 살면 되는데 뭐 하러 글까지 쓰고 있나 하는 생각이 올라왔다. 의미심장하게 화두를 던지고는 살살 건드리고 글 한 편의 형태만 만들고 나와버렸다. 


그 지점이 선생님이 말하는 ‘설렁설렁’이었다. 구구절절 말하기 싫어하는 나의 성향과 끈질기게 문제를 파고들지 못하는 습관이 더 나은 글로 가는 길을 방해했다. 좋은 습관이 스며드는 동안 나쁜 습관도 함께 따라왔다.


하루아침에 고쳐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하루아침마다 고칠 것이다. 국숫집 사장님도 일관된 맛을 내기 위해 불필요한 맛들을 걸러냈을 것이다. 물려받은 기술이 있었을지라도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스스로 알고 있으니 쓰고 또 고쳐 쓰는 일에 의지한다면 눈곱만큼씩 나아질지 모른다. 문장력을 연마하는 일보다 악착같이 생각을 붙들어 보는 훈련을 한다면. 문장끼리의 밀도를 높인다면. 나의 글도 미세하게 깊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백팩을 메고 그 작은 공간에 가는 일이 질리지 않으니 다행이다. 칭찬을 들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마음속에 휘파람을 불며 다닌다. 


내가 무서워하는 길고양이들이 서점 주위를 어슬렁거리는데 수국의 새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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