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지음 Oct 09. 2022

내 안에 찌꺼기가 남았다

가을, 회복의 계절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보통 찌꺼기를 많이 남겨가지고 집에 돌아온다. 1:1로 만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집에 와서도 찝찝하고 아쉬운 기분이 남곤 한다. 뭔가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여러 가지 감정을 많이도 남긴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는 꺼려지고 약속시간 전까지도 피하고 싶은 경우가 다수이다. 그리고 그런 자리라면 결국 찌꺼기가 남고 만다. 그 자리의 분위기를 띄우려고 너무 나만 말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또는 그 자리에서는 웃음이 안 나온 나머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지음이는 이 자리가 불편한가보다'라는 생각을 느끼게 만드는 것 따위가 바로 그 찌꺼기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여러 가지 감정이 남기 마련이다. 아쉬움과 서운함, 고마움과 애틋함, 속상함과 그리움 등의 감정이 섞여서는 복합적인 감정이 따라온다. 하지만 엄연히 이름이 있는 그 감정들의 잔해를 '찌꺼기'라고 표현한 이유는 누군가와 만났을 때 최선을 다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남은 감정은 대체로 아주 자질구레한 감정들의 파편이기 때문이다. 이게 대체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감정들이 파편화되어 있기에 이 감정을 명명할 수도 없다. 그래서 감정이 남은 자리의 파편들을 '찌꺼기'라 부를 수밖에.



이 찌꺼기들은 분리되지 않고, 분리할 수도 없다. 그러니 이 감정들을 '찌꺼기'라 치부하고 넘겨버리는 게 나를 지키는 데 최선이다. 아무것도 아닌 자질구레한 감정이라고 다독이고 또 다독이면 아주 조금은 이 찌꺼기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찾아온다.



그러다가 오늘 만난 사람들이 오늘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수많은 고민이 든다. 다들 좋다고 하는 자리였는데 왜 집에 와서 혼자 고민을 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 참 알다가도 모르겠는 사람 관계다. 많이 남기지 않는 사람은 모르는 나만의 찌꺼기가 참 어색하게만 느껴지곤 한다.



사소한 것들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칠 때가 있다. 주변의 시선에 내 감정을 묻어두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부탁을 들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전전긍긍하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나 짧다.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새로운 계절이 다가온다. 시간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흘러간다.



그러니 해보고 싶은 걸 해보고, 보고 싶은 걸 보고, 먹고 싶은 걸 먹는 수밖에 없다.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살기에도 짧은 인생을 여러 가지 고민과 걱정 따위로 흘려보내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인지와 어떻게 내가 원하는 걸 이룰 것인지에 대한 것만 생각하면 된다. 찌꺼기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좋은 기억들이 많이 쌓였는지만 돌아보면 인생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던 것만 같다.




'신지음 계절집'의 사계절 중 '가을 : 회복의 계절'편 입니다.

4계절의 이야기가 틈틈히 올라올 예정입니다 :)


작가의 이전글 산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