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용어 중에 합동 부동산이란 말이 있다. 요즘 말로 하면 공유 오피스다. 사무실은 하나인데 그 사무실을 무상 임차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부동산 특성상 물리적인 사무실이 없으면 개설등록이 불가하기 때문에 반드시 사무실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10층에 있는 부동산 합동 사무실을 3개월 사용했다. 오늘은 그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한국 부동산은 대부분 1층에 있다. 그 옛날 복덕방 때부터 그랬다. 그 당시 부동산 아저씨는 그 동네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다. 지금도 목 좋은 자리엔 대부분 부동산이 자리 잡고 있다. 이제 부동산은 공인중개사 사무소라는 명칭을 쓰기도 하는데 부동산이라는 추상적인 용어에서 전문직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결혼 정보 제공회사 등급 C에 해당하는 형편없는 등급이지만 그래도 전문직은 전문직이다.
내가 예상한 창업 자본은 한도가 5천만 원이었기 때문에 보증금 5천만 원에 월세 250이 넘는 1층 부동산은 꿈도 꿀 수 없는 창업자였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전략은 1층으로 못 가는 대신에 그만큼 월세를 아껴 광고에 투자하자는 전략이다. 사실 1층에 자리 잡았다고 해도 주변 부동산과 경쟁해야 하는 건 똑같다. 그렇다면 온라인 광고를 통해 고객이 디렉트로 찾아오게 만들면 된다. 물론 1층 부동산도 그만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러면 창업 안 한다는 답밖에 없으니까. 창업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일단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거다.
마침 염두에 둔 장소가 있었다. 10층 사무실이었고 테라스가 딸린 괜찮은 공간이었다(테라스에서 삼겹살 구워 먹는 상상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보증금 500에 월세 60만 원이었고 임차 계약을 준비하던 중 같은 사무실 바로 옆 칸이 협회 게시판에 합동 사무실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증금도 필요 없고 사용료로 매월 30만 원만 내면 되는 것이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소식을 접한 다음날 사용계약을 했고 상대방 부동산은 30년이 넘는 베테랑이었기 때문에 서류도 즉각 받을 수 있었다. 대신 무료주차가 안되는 관계로 유료를 이용하거나 하루 무료 한도인 4시간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하루 1만 원의 저렴한 사용료였기 때문에 느긋하게 개설등록도 하고 명함, 인장, 명패 등을 준비했다.
사무실은 상가처럼 통유리 개방형이 아니라 철문 형식이어서 다소 폐쇄적이다. 폐쇄적인 환경은 사무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사람이 드나들어야 하는 부동산에는 마이너스라는 걸 알게 되었다. 쉽게 말해 고객이 꺼리게 되고 나조차도 꺼리게 되더라. 유료 월 주차는 12만 원이었다. 나는 그게 아까워 하루에 4시간만 이용했다. 그리고 나머지 작업은 스타벅스에서 했다. 이게 참 바보 같은 일이다. 내 사무실이 있음에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니. 3개월 사용조건으로 90만 원을 지불했고 나는 그 기간 동안 매물 수집도 하고 분양사무실과 안면도 트고 그 사이 오피스텔 분양계약도 한 건 체결했다. 오피스텔 분양계약으로 300만 원을 받으면 그간 사용료는 치르고도 남을 정도긴 하다. 확신이 조금 생겼다. 부동산은 하는 만큼 벌 수 있다.
합동 부동산은 바꿔 말하면 내가 주인이 아닌 곳이다. 나는 그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겠더라. 무엇보다 폐쇄적인 철문 사무실은 부동산으로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다행히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이 사실들을 알게 되었고 무사히 지금의 장소로 옮겼고, 다음 주 수요일에 정식으로 개업할 예정이다. 꼬박 3개월간의 합동 사무실 사용이었다.
합동 사무실 사용 인원은 총 3명이지만 거의 마주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편한 주차와 주인의식이 결여된 공간에서 내가 더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위워크나 패스트 파이브처럼 어메니티가 우수하고 매우 개방적인 공유 오피스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한국인 대다수가 자신만의 공간에 대한 로망과 안정감 때문일 것이다.
몇 년 전 읽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선 여성의 독립을 위해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도 나만의 방을 위해 보증금 500만 원과 연간 1200만 원 정도가 필요할 것 같다. 20세기 초반엔 여자들에게, 그리고 21세기에는 우리 모두에게 자기만의 방이 필요 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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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시작이다. 20살 처음 독립하고 음악생활을 하면서 자취방, 기숙사, 그리고 연습실 등등 내방 같지 않은 방을 거쳐왔다. 그리고 드디어 처음으로 나만의 사업을 위한 진짜 나만의 방을 만들었다. 마음에 드냐고? 거의 안 든다. 그 이야기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하는 걸로.
오늘의 결론은 이제 낭만의 시대는 지났으니 합동 사무실은 가급적 자제하는 게 좋겠다. 일 처음 시작하는 공인중개사라면 짧게라도 소공생활을 하면 좋겠다. 3달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3개월 동안에 일에 적응하지 못하면 일머리가 너무 없는 거니 개업은 많이 미루는 게 좋지 않을까. 반대로 3개월 안에 감을 잡았다면 우선 10층에서라도 시작해 보는 거다. 자기만의 방이 생기면 그만큼 투지가 불타오른다. 모르는 건 다른 부동산 사장님에게 물어보면 된다. 주변에 부동산이 100개는 넘을 테고 그중에 반드시 귀인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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