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2. @뚝섬역
시그니처 아이템의 의미 ─
지나칠 수도 있는 일상 속 풍경을 흘려보내지 않고, 멈춰서-바라보고-카메라를 들어 사진에 담는 그 순간과 마음을 소중히 여겨요. 제가 바라보는 세상과 렌즈로 바라보는 세상이 같았으면 좋겠어요. 꾸밈없고 솔직하고 편견 없는, 있는 그대로의 시선. 그게 제가 살아가는 동안 끝까지 지키고 싶은 가치 중 하나예요. ‘카메라=솔직함’ 같기도 하고요. 카메라는 거짓말을 안 하잖아요. 개중 ‘필름’ 카메라는 솔직함+애씀+기다림이 섞여 있는 것 같아요. 총 36장에 최고로 소중한 순간을 담아내고, 다 채우고, 인화하기까지 기다림이 필요하니까요. 애정이 없으면 절대 하지 못하는 일 같기도 해요. 그렇기에 필름카메라를 다루는 건 사랑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자, 제가 살아가고 싶은 삶과 닮은 물건이라고 생각해요.
일하면서 번아웃이 왔다는 인터뷰이들을 자주 만났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라는 밈이 낯설지 않은 건, 앞서 '빨리빨리'를 외쳐온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탓이려니. 대표적인 모습은 일할 때다. 우리가 일의 퀄리티를 말할 때 속도는 묵음처리 된다. 그렇기에 보다 천천히 가려는 데는 남다른 다짐이 필요하다. 무소속은 그런 다짐의 일환이기도 하다.
기존 속도를 늦추는 동안 필연적으로 마찰력이 발생한다. 마찰 면이 크면 클수록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해내는 데 오래 걸린다. 그래서일까, 지예는 무소속 기간 동안 타의로 할퀴어진 자리를 자분자분 짚으며 원래 형태를 상기해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 무엇에 끌리고 무엇에 움직이는 사람인지 말이다.
그러기까지 몇몇 존재와 물건이 도움을 줬다. 마치 이때를 위해 아껴두기라도 한 마냥, 그의 앞에 등장했다. 물건이 속도를 정하진 않지만 그 속도에 걸맞은 물건은 분명 존재하고, 심지어 그 물건을 통해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걸 그를 보며 깨달았다.
무소속으로 지낸 기간과 더불어 소개 부탁드려요.
무소속 4개월 차, 백수 인생을 살고 있지만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라고 표현하는 걸 더 좋아해요. 실제로 그러고 있기도 하고요. 소속된 시절엔 청년 공간에서 공간 운영 매니저로 일하면서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엄마와 함께 책도 써보고, 블로그 마케터로 브랜드의 성장을 돕기도 했어요. 데이터 마케팅, 데이터 분석 회사에서 6개월 정도 다니다가 힘든 일이 있기도 하고 비전은 보이지만 제가 원하는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무소속을 택했죠.
작년 12월 31일 자로 퇴사하고 처음 한두 달은 출근 없이 여유로운 생활을 즐겼어요. 3개월에 접어들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죠. ‘이제 또 무슨 일을 해보지?’ 다양한 일을 해왔지만, 전공은 예술이라 이를 살려 일하고 싶었어요. 한창 코로나19 때문에 공연 업계가 안 좋았잖아요. 업계의 많은 사람이 힘든 상황이라 염두에 두지 않았다가 서서히 거리두기 제한이 풀리면서 일해볼 생각이 점차 확고해지고 있어요.
무소속 기간의 생활 패턴은 어떤지 궁금해요.
처음 두 달은 푹 쉬면서 일하는 동안 무너진 밸런스를 찾는 데 주력했어요. 운동을 좋아해서 매일 루틴으로 활력 있는 삶을 살았는데, 퇴근이 늦어지거나 에너지가 소진돼서 집에서 아무것도 못 하는 날들이 많았거든요. 잘해야지, 완벽하게 해내야지, 하는 생각으로 저를 갉아먹을 수밖에 없었고, 쉬는 날조차 여가를 누리지 못했어요. 3~4개월을 그런 식으로 일하니 몸과 마음이 동시에 방전되었죠. 이 일을 지속하는 게 좋을지 다시 고민해봤고, 좋은 환경의 회사였음에도 몸과 마음이 상하면서까지 일하고 싶지 않다는 결심으로 퇴사했어요.
밸런스를 찾는 기간에는 주로 자연을 찾아다녔어요. 집 앞에 있는 한강을 산책하면서 뇌를 리프레시하는 느낌으로 지냈죠. 에너지가 충전되니 3월부터는 사람들도 만나고, 밑미의 리추얼 프로그램, 뉴그라운드의 노션으로 포트폴리오 만들기 프로그램도 참여해보고요. 이제 다시 발돋움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태예요.
분명 소화하기 힘든 시간이었을 텐데도 툭툭 털고 일어나는 느낌이에요. 제가 본가인 부산을 떠나 처음 서울살이하며 일하던 것도 떠올랐고요. 모든 생활이 일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더 힘들었던 시절이기도 해요.
(지예가 운다)
일한다는 건 단순히 과업만 처리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나를 던져야 하고, 사람들과 맞춰가야 하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정말 정말 힘들죠. 에너지를 충전했는데 3월이 되니까 불안하다고요.
아마 주변 친구들이 다 취직하는 기간이라는 게 조금은 작용했을 거예요. 경제적인 압박도 물론 있지만 일하는 내 모습, 일에 열중하는 나 자신을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그 모습을 자꾸 이렇게 저렇게 상상하다 보면 얼른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져요.
그리고 최근에야 제가 제대로 못 쉬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전에도 퇴사하고서 1년 정도를 쉬었는데 쉼이란 온종일 뻗어서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거지, 놀러 다니고 친구들 만나는 건 취미라고 늘 생각해 왔어요. ‘어떻게 쉬어야 진짜 쉬는 거지?’라는 질문을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보내는 것도 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소모임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얘기하며 보내는 활동을 통해 쉼을 재정의하게 된 것 같아요. 두 달간 쉼을 즐겼으니 3월부터는 조금이나마 으쌰으쌰 해보자는 마음이 들면서 구직 불안감이 같이 왔나 봐요.
본인을 표현하는 키워드로 수집과 기록을 꼽아주셨어요.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서 기록하며 필름카메라로 찍고 인화한 사진을 #졔졔필름 이라는 해시태그로 남기시더라고요. 수식어인 ‘소소 기록자’의 의미가 궁금해요.
지금처럼 열심히 기록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인스타그램은 내 삶을 보여주는 플랫폼이지, 내 생각을 명확히 표현하고 좋아하는 것을 소개하는 플랫폼이 아니었거든요. 실은 그런 걸 좀 부끄러워하기도 했고요. 누군가 내 생각을 들여다보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계정 상태가 비공개였다가 공개이길 반복했어요. 블로그 역시 특정인만 볼 수 있는 서로이웃 글이 많고 공개된 글은 많지 않았고요.
최근 1~2년 사이 정리되지 않은 표현이라도 어떻게든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그동안 시대가 변한 것 같기도 해요. 덕질도 그렇고,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더라도 본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게 한결 편해진 분위기잖아요. 여기저기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소개할 수 있다는 데서 용기를 얻었나 봐요. 소소한 내 일상을 소개하고 내 생각을 전하고 싶다는 데 착안해서 ‘소소’라는 단어를 수식어로 붙였어요.
여성들은 온라인에서 본인을 많이 숨기는 편이라고 느끼곤 해요. 여러 불안감이 작용하니까 나를 드러내겠다는 건 굉장한 결심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내 얘기를 공개된 곳에 펼쳐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을까요?
제가 몸담은 영역 외에 다른 업계에 있는 분 중에는 제 팔로잉 수가 높은 걸 보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인스타 중독이라는 편견으로 저를 본 거죠. 하지만 팔로잉 숫자는 인스타 중독의 척도가 아니라 관심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내 관심사가 얼마나 다양하고 궁금한 게 많은지 알려주는 척도라고 생각해요. 그런 상황에 맞닥뜨린 경험이 나를 표현하는 데 주저하게 만들기도 했어요.
최근 조직에서 독립해 활동하는 프리랜서분들이 많아졌다고 느껴요. 표현 방법을 다방면으로 찾고 자유롭게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이 눈에 띄더라고요. 그런 분들을 꾸준히 봐오면서 영향받았는지, 지인들만 보게끔 기록을 꼭꼭 숨기기에는 아깝고 아쉬웠어요. 스스로 드러내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들면서 용기 내어 더 솔직해지자고 생각을 바꿨죠. 저도 최종적으로는 소속 없이 내가 쌓아온 것들을 누군가에게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수집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오래전부터 이어온 습관일까요?
지금 와 생각해보니 관심 있는 무언가가 생기면 곧잘 모으는 수집 병이 있었어요(웃음). 초등학생 때는 엄청나게 공들여 아바타 북에 스티커를 모았고, 중학생 때는 각종 필기구, 특히 펜을 사 모았던 기억이 나요. 학교에서 매주 검사하던 데일리 플래너가 있었는데, 친구들과 누가 누가 예쁘게 꾸미나 대결하듯 꾸몄던 추억이 있어요. 다이어리 꾸미기의 역사가 그때부터 시작이었나 봐요. 고등학생 때는 피아노 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며 피아노 악보들을 모았어요. 덕분에 피아노 입시를 시작했고 피아노과에 입학했죠. 대학생 때 공연기획 수업을 듣게 되면서 뮤지컬에 빠져서는 열렬히 공연 보러 다녔고요. 뮤지컬이라는 장르, 넓게는 공연기획, 문화기획을 좀 더 공부해보고 싶어져서 입시를 다시 준비해 예대에 입학했어요. 사실 진짜 하고 싶던 공부였거든요. 살면서 제일 잘한 일 중 하나를 꼽으라면, 예대 재입학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아! 그즈음 배우 조승우에게 빠져서 생애 첫 연예인 덕질을 시작했어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의 사진과 영상 등을 죄다 수집해 폴더별, 작품별로 정리해서 외장하드에 넣어뒀죠(웃음).
전공을 바꾸면서 예술과 문화에 주목하는 관점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 취향과 시야가 조금 더 확장된 시기가 예대 입학 후인데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거든요. 전공을 바꾸면서도 놓을 수 없는 건 단연 ‘음악’이었어요. 예술경영 전공이었지만 피아노, 드럼, 기타, 타악기 같은 음악학부 수업을 많이 들었어요. 페스티벌, 콘서트, 축제도 많이 다녔는데 그맘때부터 잔나비라는 밴드에 빠지기도 했고요. 어릴 때부터 클래식과 올드팝, 8090 음악들을 많이 들어왔고, 좋아했어요. 자연스럽게 잔나비와 퍼즐 맞춰지듯 연결될 수 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오래된 것들을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유행한 레트로 감성도 한몫해 노랫말이 예쁜 옛 노래와 오래된 필름카메라, LP, 카세트테이프, 오래된 공간 같은 데 관심을 두었죠.
본인을 낯가리는 관종이라고 표현하셨는데(웃음) 어떤 관심을 받을 때 달갑나요?
이목을 확 끌어들이는 관심이 아니라, 내가 줄 수 있는 영향력을 그 사람이 받는 관심을 받을 때요. 제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가 모두에게 좋기만 한 건 아니겠지만,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역량이 되었으면 해요.
제가 몸소 느껴선지 예술의 힘을 자꾸 믿게 돼요. 예술을 경험함으로써 에너지를 얻고, 살아가는 데 원동력이 되고,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는 흐름 말이에요. 사람들에게 예술의 힘을 전해주고 싶고, 경험할 계기를 마련하고 싶어요. 예술 안에도 다양한 갈래가 있잖아요? 음악이라든지 공연이라든지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가가고 싶은데 아직은 명확하게 딱 잡을 수가 없어요. 최대한 폭넓게 고민하려 해요.
덕질과 취향을 구분하시나요?
덕질은 ‘디깅(digging)’이라고 생각해요. 꽂힌 무언가가 생기면 파고, 파고 또 파는 모습이요. 디깅의 사전적 의미가 채굴, 발굴이잖아요. 그 행위를 함으로써 덕질 대상을 끊임없이 알아가고, 알아내는 과정을 즐긴다고 생각해요. 일종의 탐험 과정에서 얻는 정보와 경험들이 제 안에서 ‘취향’으로 모이고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정보와 이야기 중 내 마음이 쏠리는 것을 찾고, 그것들이 쌓여 내가 되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 같아요. 그래서 더 많이 보고, 듣고, 만나고, 경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야 내 취향이 뭔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있으니까요.
시간에 더해 깊어지는 유형이 있고 단시간에 파고드는 유형이 있는데 지예 님은 어느 쪽이에요?
천천히 깊게 파고드는 편이요. 제가 깊게 파본 분야라면 밴드 잔나비뿐이라 부끄럽지만요. 오늘이 이 사람들에게 마음을 쏟아야겠다고 결심한 지 1,130일째 되는 날이에요. 나와 다른 성장배경과 일상, 연령대를 가진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건 새롭고, 짜릿하고 멋진 일이에요.
3년은 덕질 역사로 적지 않은 시간인데, 꾸준히 좋아할 수 있는 동력은 뭘까요?
잔나비를 처음 본 게 화려한 무대가 아닌 팬들과 얘기하는 모습인 게 크지 않을까 싶어요. 유튜브에서 우연히 Vlive 영상을 보게 됐고, 알고리즘을 통해 노래까지 섭렵하기에 이르렀죠. ‘이 사람들 뭐지? 재밌고 생각하는 게 인상적이네’에서 노래로 드러나는 그들의 청춘, 어려움을 통과해 위로를 건네는 모습에서 우상보다는 인격적으로 대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5명으로 시작해서 4명, 3명(그리고 현재 2명)이 되기까지 팬의 입장에서 속상한 일들도 많았지만, 하나씩 단계를 밟아 올라온 끝에 큰 무대에 섰을 때 멤버들의 표정에 벅찬 감정이 스칠 때면, 제가 괜히 더 울컥하기도 해요. 길거리 버스킹에서 클럽공연, 소극장, 중극장, 올림픽홀까지 하나씩 올라왔으니까요. 인내와 끈기, 노력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라고 당당하게 자랑하며 말할 만큼 매 순간 순수하게 무대를 즐기고, 노래하고, 연주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지금까지 좋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지예 님이 성장, 세계가 확장되는 부분에 관심이 많으니 잔나비에게서도 배울 점을 자꾸 발견하시는 듯해요.
언젠가 기타리스트 도형이 “밴드가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대하고 대단한 것이다. 사실 그 안에는 엄청난 상상하지 못할 고난과 시련과 또 행복, 기쁨 이런 것들이 있다는 것을 매 순간 느낀다.”라고 말했는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어요. 잔나비가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우리가 외치는 락앤롤은 열심히 성실하게 살자는 뜻’이라고요. 이 사람들을 보면 저도 열심히 살고 싶고, 성실한 사람이고 싶어요. 장기적으로는 디너쇼까지 함께하고 싶고요. 잔나비가 꾸준히 보여준 모습 덕에 탈덕은 안 한 것 같아요(웃음).
우리 가급적 탈덕하지 맙시다(웃음). 설명해주시는 데서 참 친밀하고 긴밀하며 정다워 보여요. 그래서 멤버가 줄어들 때마다 더더욱 멘탈이 갈렸을 듯해요.
안 좋은 일로 나갔으니 화나고 분노가 치밀기도 하지만, 그들을 자연인으로 보고 처음 5명이 꾸려온 시간을 더듬으면 또 달라요. 친구들과 살짝만 틀어져도 견디기 힘든데 그들은 갑작스럽게 수만 명의 적들이 생긴 셈이니까요. ‘과연 그런 인생은 어떨까, 너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시에 ‘잘못은 인정하고 앞으로의 인생도 열심히 성실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마음도 들었고요.
덕질에도 애도가 필요하다고 여겨요.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을 받아들일 때 슬픔, 분노부터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잖아요. 소화하고 감당해낼 시간도 필요하고, 적어도 팬에 대한 존중으로 당사자가 밝히는 적당한 설명도 필요하다 싶어요. 설령 납득시키지 못하더라도.
동의해요. 그렇지 않아서 막연하게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아주아주 힘들게 마음에서 떼어내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런 시기를 거치면 일종의 물갈이랄까요. 팬덤이 한차례 정리되고 저마다 마음의 거리도 달라지는데, 지예 님은 어때요?
그런 일로 인해 거리 둔다기보다는, 상황이 변화하면서 그 양상이 달라졌어요. 시간과 환경이 허락돼서 열정적일 수 있던 2019년에는 기회 될 때마다 보러 갔다면, 지금은 같이 덕질하던 친구들이나 저나 상황에 맞춰 덕질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초반에는 스케줄, 여러 정보를 다 알아야 한다는 식으로 대했어요. 모든 신경과 에너지가 쏠려있었죠. 하지만 이제는 그들이 열심히 살고 있구나, 나도 열심히 살고 있어, 이런 느낌으로 공연이 있을 때만 티켓팅해서 공연가고, 방송 나오면 본방 사수하는 정도예요.
취향껏 누릴 때 지예 님은 어떤 모습이에요?
‘취향껏 누린다‘라는 말 참 좋네요. 언젠가 지인들이 ’넌 좋아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온 맘과 열정을 쏟아. 추상적인 것 같지만 이것만큼 어려운 게 없어‘, ’좋아하는 것에 누구보다 멋진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 그게 덕질이든 해온 일이든 주변 사람들이든 사랑하는 것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게 멋있어‘라고 말해준 적이 있어요. 이때 제가 무언가를 사랑할 때 열정적으로 보인다는 걸 알았어요. 언젠가는 덕질이라는 단어가 어감이 좋지 않아 유치하고 조금 창피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거든요. 요즘은 덕질이라는 말을 붙일 대상이 연예인뿐 아니라 다양하게 확장되어 좋아하는 마음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서 좋아요.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얘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평소 자기 성장을 중요하게 여기고, 덕질에서도 성장을 찾는 저를 발견해요. 배우고 싶은 모습을 가진 사람, 나를 자극하는 대상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죠. 그러다 보면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자극받기도 해요. 가장 큰 자극은 ‘세계 확장’일 거예요. 그들이 좋아하는 책, 영화, 시 등 작은 취향들을 따라가게 돼요. 궁금하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인데, 그렇게 내 취향을 알아간 예가 오아시스예요. 브릿팝을 대표하는 밴드 오아시스(Oasis)는 잔나비가 음악을 만들 때 영감을 받는 뮤지션 중 하나에요.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에게 영감을 주는 뮤지션이라니! 어떤 사람이길래 영감을 받지?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읽고 추천해주는 책, 전시, 생각이나 철학이 저에게 닿아 새로운 영감이 되기도 해요. 그렇게 확장한 취향들이 나의 세계가 되어 어느 순간 단단해지는 게 느껴져요. 이렇게 단단해진 저는 또다시 무언가 해낼 힘을 얻죠. 이런 나 자신을, 내 모습을 사랑하게 되고요. 어디선가 우리들의 첫 번째 관객, 우리들의 첫 번째 팬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는 문장을 봤는데, 그 말에 동의해요.
필름카메라도 잔나비와 마찬가지로 3년 정도 됐죠.
필름카메라는 2019년 4월 혼자 일본 여행을 가면서 처음 접했어요. 집에 있던 오래된 일회용 필름카메라를 가져갔는데, 레버가 안 돌아가는 바람에 일본 편의점에서 후지 필름카메라를 잔뜩 샀어요. 어떻게 찍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예쁜 풍경이 보일 때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정성껏 셔터를 눌렀던 기억이 나요. 그러다가 나만의 카메라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에서 찾다 보니, 필름카메라는 DSLR과 달리 최근에 제조되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필요한 사람들에게 팔며 계속 순환되고 있는 거죠, 매력적이지 않나요? 롤 당 찍을 수 있는 장수가 한정적이라 신중해진다는 점도요.
찍을 때부터 필름을 갈아 끼울 때, 현상소에 필름을 맡길 때, 스캔한 사진을 받아볼 때까지 모든 순간이 기다림이라 설레고 떨리죠. 빛이 들어가서 절반 이상이 잘려 나와도 그 나름의 감성이 있어서 한 장 한 장 모두 소중해요. 특히 새 필름을 끼우고 첫 장에 찍히는 빨간 선과 검은 선은 그 자체가 매력이라 첫 장만 모아 업로드하는 분도 있을 정도예요. 지나칠 법한 일상 풍경을 흘려보내지 않고 멈춰서 바라보고, 카메라를 들어 사진에 담는 그 순간과 마음이 예뻐요. 열심히 발품 팔아 제게 온 친구는 ‘캐논 오토보이2’로, 외출할 때면 늘 챙기는 습관이 생겼어요. 이제 카메라에 담기 좋은 계절이 와서 너무 좋아요!
아니, 2019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웃음)?
그해 2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뭐 할지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대입부터 재입학하기까지 휴학 없이 쭉 5년을 다녔거든요. 친구들을 보면 보통 휴학도 하고 여행도 가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외 활동을 하던데, 지켜보면서 부럽기도 했어요. 예대 생활은 치열하게 보냈기 때문에요. 그즈음 교내에 미투로 이슈가 됐고 학교 전체적으로 군기 문화가 셌던 탓에 학생회 일원이던 저는 정신 없을 수밖에 없었죠. 과를 대표하는 사람들로서 그 상황을 감당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졸업하고서도 곧장 일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계획한 게 일주일 동안 혼자 떠나는 일본 여행이었어요. 시끌시끌한 것보다 고요함을 원했던 시기였는지 조용한 마을을 걸으며 경치를 감상하는 데 할애했죠.
당시 지예 님에게 필요한 것들이 고요한 거, 느린 거, 쉬는 거였나 봐요. 시간은 정직하게 흐른다고 하지만 주관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학교에서의 시간은 굉장히 빨랐겠고요. 지쳐 있어서 쉬고 싶을 때 어떤 대상에 흠뻑 빠져서 좋아하게 된다는 게 재밌죠. 저도 비슷했거든요.
제일 뜨거웠던 덕질 모먼트를 꼽자면 단연 2019년 하반기예요. 멤버 탈퇴 소식 이후 더 힘차게 좋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팬카페 활동은 물론이고, 인스타그램에 나눔용 덕질 계정을 만들었죠. 그때 만나게 된 친구들이 지금까지 연을 이어온 덕질메이트들이에요. 당시에 만난 많은 인연이 있었지만, 그들과는 계속 만남이 이어지더라고요. 많은 오프라인 공연을 열정적으로 함께한 것은 물론, 이벤트가 없이도 일상을 나누며 더 돈독한 사이가 됐어요. 놀랍게도 다들 모난 부분 없이 결이 비슷해요. 한 친구와는 올해 신년, 1박 2일로 백록담도 다녀왔을 정도죠. 이제는 덕메 이상으로 서로의 일상과 꿈을 응원하는 소중한 친구들이에요.
결이 같다고 표현하신 코드는 어떤 거예요?
성실함, 다정함, 자기 인생을 살아갈 줄 아는 면이요. 덕질하다 보면 모든 스케줄을 꿰고 죄다 따라다녀야 될 듯한 압박이 생겨요. 앨범이나 굿즈를 사는 게 당연해지고 꼭 손에 넣어야 할 것 같죠. 그럴 때 친구들이 서로 눌러주는 역할을 해요. 딱 우리에게 필요한 것만 사고, 스케줄을 못 따라가더라도 앞으로 볼 날이 더 많으니 그때 또 같이 가면 되는 거라고, 각자 인생이 좀 더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나눴어요. 서로가 평소 고민하는 주제부터 덕질하면서 드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던 덕이죠.
그런 변화를 마음이 식었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는데, 지예 님은 건강한 덕질이라고 표현하시네요.
내 삶도 지키고 그들의 삶도 존중하면서 응원하는 정도가 건강한 거죠. 제가 생각하는 건강한 덕질이란 우선순위가 저인 거예요. 사람마다 우선순위가 다를 텐데 저는 스스로가 최우선이에요. 나를 포기하면서까지 덕질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 포기라는 건 일일 수도 있고, 내 건강일 수도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일 수도 있고, 가치관일 수도 있겠죠. 내 심지나 뿌리, 그러니까 단단한 무언가가 흔들리면서까지 덕질할 필요가 있을까요? 단단하게 덕질하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게 건강한 덕질이라고 생각해요. 나만의 취향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누리고 싶어요.
내 생활이 휘청거릴 정도로 덕질하지 않는다는 말로 들려요. 과도하게 몰입하는 편인 저로서는 균형 잡는 게 참 어려운데, 지예 님만의 건강한 덕질 방법이 있나요?
막상 열중하고 몰입해봤기 때문에 이제는 이렇게 느끼는 것 같기도 해요. 덕질하면서 경험한 게 많아진 덕분이에요. 인간관계도 그렇고 해보지 않은 영역들을 깬 느낌이죠. 생애 첫 덕질이니 하나하나 다 새롭고 크게 다가와요. 이전까지 학생 신분으로 그저 주어진, 내 신분에 맞는 것들을 계속해왔다면 졸업하고 잔나비를 만나면서는 확장된 세계를 맛본 듯해요. 이런 세계도 있구나! 그러면서 내가 이 사람한테 너무 휘둘리고 뒷일 생각 안 하고 저질러봤던 경험과 기억이 있잖아요. 그러니 앞으로도 오래 좋아하려면 나부터 챙겨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덕질은 때때로 교통사고로 비유된다.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만나 순식간에 벌어진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예의 덕질을 보면 불가항력보다는 성장 에너지에 다름 아니다. 그 시기에 필요한 자양분을 몇몇 존재와 물건에서 취한 데서 그의 덕질은 본인의 지향이 드러나는 명백한 영역이겠다.
성장기에 겪는 사건, 만남, 맛, 감정 등은 고저를 오가며 그래프를 그린다. 그려 나가는 건 늘 현재지만, 분석하는 건 과거에 기반한다. 짧게는 주 단위, 길게는 계절이나 연 단위 기록을 분석하는 그는 자신이 얼마만큼 성장했는지, 과정에서 발견한 걸 어떻게 품을지 갈무리해둔다. 그에게 필름 카메라는 훌륭한 동반자다.
어떤 기록은 민들레 씨처럼 바람에 실려 훨훨 날아가고, 어떤 기록은 분꽃 씨처럼 고이 받아두어야 한다. 무게와 형태, 방식이 다르다는 걸 배운 뒤라야 자신만의 식견으로 꾸린 하나의 화단이 완성된다. 다양하되 조화로운 취향이라는 화단. #졔졔필름으로 담아낸 그 날의 기록에서 은근한 향이 감도는 건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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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촬영 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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