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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용 Jan 17. 2024

5. "이제야 해방이군요!"

그러나 또 다른 이들의 말에 따르면 ..

아젤라이다가 페테르부르크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아내의 친정으로 날아들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락방에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모양으로, 어떤 이는 장티푸스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굶어 죽은 것 같다고도 했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얼큰하게 취해 있다가 아내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는 갑자기 한길로 달려 나가 두 손을 하늘로 치켜들고 기쁨에 겨운 목소리를 외쳤다.


 " 주님, 이제야 해방이군요! "


 그러나 또 다른 이들의 말에 따르면 철없는 어린애처럼 엉엉 울어대는 모습이 평소에 그를 몹시 혐오하던 사람들마저 측은해할 정도였다고 한다. 어쩌면 양쪽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자신이 해방된 것을 기뻐하면서 동시에 해방시켜준 아내를 서러워하며 우는 것은, 사실 똑같은 일이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인간은 아무리 악당이라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순진하고 소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 자신이 그런 것처럼.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는 두 여자와 결혼해서 세 명의 아들을 낳았다.

4편 '가상캐스팅'에서 이진욱으로 비유한 첫째 아들 드미트리가 첫 번째 부인 아젤라이다의 소생이다.

(4편 가상캐스팅 https://brunch.co.kr/@qkrjiyong/26)


첫째 부인인 '아젤라이다 미우소프'는 귀족 출신이었는데도, 세상물정 모르고 자란 덕에

한심하고 파렴치한 남자인 표도르와 함께 도피성 결혼을 감행했다.


당시 러시아는 결혼할 때 신부가 지참금을 가져오는 문화였는데,

아젤라이다가 지참금으로 가져온 2만 5천 루블(지금으로 치면 5~10억원 쯤 되는거 같다)을 표도르가 그대로 가로채버렸다.


고귀하게 자란 아젤라이다는 광대짓하며 비웃음 사고 다니는 표도르에게 질려

수년간의 애정 없는 결혼생활 끝에 세 살배기 드미트리마저 포기하고 외간남자와 집을 떠나버렸고,

몇 년 사망 소식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긴다.




겨우 30대의 나이에 부인의 사망 소식을 듣고 '해방'이라며 기뻐하는 남편만큼 혐오스러운 인간이  얼마나 있을까?


나이 60 먹고 친아들의 썸녀를 뺏으려고 난리 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표도르는 염치를 모르는 사람이다. 자기에게 불리한 사람에게는 억지 비난을 쏟아놓고 본인에게 유리한대로 아무 말 대잔치를 늘여놓는다. 본문에 나오듯이 친해지고 싶지 않은 혐오스러운 성격이다.


그런데,

본인과 헤어진 부인의 죽음에 대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혐오스럽기 그지없지만

동시에 슬퍼서 철없는 어린애처럼 엉엉 울기도 했다는 모습은 역설적인 듯하면서도 자연스럽다.

표도르는 나쁜 사람인건가 착한 사람인건가.


전 부인의 죽음에

'기뻐했다'는 모습은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슬퍼했다'는 모습은 소문을 통해 전달받은 듯한 묘사로 이야기의 사실감을 더해준다.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는 감정을 묘사할 수 있는 표현은 어떤 게 있을까?

'시원섭섭하다'는 표현이 비슷할 수 있을까?

환호하면서 서글프게 우는 감정은 표현이 힘들지 않을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면 보통 '씁쓸하다'는 식으로 적당히 둘러대는 것 같다.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분이 구린 것도 사실이니까 '씁쓸'하다는 감정으로 퉁치는 것이다.

나는 이런 표현이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표현하는 게 개인을 위해서는 최선의 선택이기도 하다.

사람이란 자기자신의 복잡한 감정에 대해서는 정성스럽고 섬세하게 접근하는 반면,

타인의 감정에 대해서는 투박할 정도로 무성의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한 성품과 악한 성품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상황에 따라 번갈아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두 성품을 동시에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제삼자의 눈에 보이는 것은 둘 중 하나뿐이다.


어릴때는 모른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조금씩 알게된다.

내 눈에 보이는 내 모습뿐만 아닌, 타인의 눈에 비춰지는 내 모습까지 그리는 능력이 생긴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씁쓸하다'는 등의 표현으로 적절히 가리는 잔기술을 배우게 된다.

솔직하게 둘 다 드러내면 안 된다. 둘 중 내게 유리한 감정, 그것 하나만 드러내야한다.

두 감정을 모두 드러내면 사람들은 둘 중 하나만을, 그것도 자기 편한 쪽으로 골라 집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모습은 그 사람과 가까워질 때 더 심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평이 나쁜 사람이 생각보다 착하다면 스톡홀름 신드롬에 빠지듯 우상화하기도 하고

평이 좋던 사람에게서 악한 모습을 발견하면 필요 이상으로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다들 남들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는 한다.

하지만 세상 일이 쉽지가 않다. 나도 안 그러려고 노력하면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나쁜 행동에도 나름의 선의가 있지 않을까 한번 더 생각해 보는 것뿐인 듯하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그런 것처럼, 아무리 나쁜 사람이어도 거의 모든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순진하고 소박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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