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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용 Mar 07. 2024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서평

1 더하기 1이 귀요미가 돼서는 안 되는걸까.

1 더하기 1은 귀요미가 아니다.

왜냐하면 1더하기 1은 창문이기 때문이다.

.. 재미없는 농담은 넘어가겠다.




1 + 1 = 2


1 더하기 1은 2다.

그것은 1도, 그리고 3도 아니다.

하나와 하나가 더해지면 둘이 된다.


하지만 1 + 1이 2인 이유는 그것이 당연해서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1 + 1이 2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1 + 1이  1은 아닌지, 아니면 3은 아닌지 질문을 던졌다.

수학자들도 1 + 1이 2인 이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증명의 과정을 거쳤다.


1 더하기 1이 2라는 사실을 증명한 가장 유명한 책은 아마도 화이트헤드와 러셀의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일 것이다. 책은 1 더하기 1이 2라는 사실을 379페이지를 동원해 증명했다.


1 더하기 1이 2라는 사실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진실을 의심하는 사람들에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이 투입되었다.

화이트헤드와 러셀의 '수학 원리' 한줄 요약. 일 더하기 일은 이다.




수학에도 과학에도, 당연한 것은 없다.


수학자나 과학자들은 본인들이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적인 것'이라는 표현은 그것이 객관적인 진실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과학에도 절대적인 진실은 없다.


중세를 지배했던 뉴턴의 물리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 틀린 것으로 증명됐고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고 주장한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에 의해 틀린 것으로 증명됐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양자역학을 비판한 아인슈타인, 하지만 그는 틀렸다.




철학은, 의심에서 시작되는 것


따뜻한 봄날, 노란 나비가 되어 훨훨 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 꿈을 꾸는게 맞는가? 나는 사실 사람이 아니라 나비였고, 사람이었던 꿈을 꾸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나비인가, 아니면 나비가 나인가.


장자의 호접지몽은 모든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철학적인 메세지를 던진다. 장자와 가장 비슷한 서양 철학자를 말하자면 데카르트를 꼽을 수 있다. 데카르트는 회의의 철학자다. 그는 자신이 듣고 만지고 보는 것도 의심했다.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하며 부정한 끝에 단 하나의 절대적인 진리를 발견한다.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적어도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확실하게 증명한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구절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철학은 모든 것을 의심하고 파헤치고 분석하는데서 시작된다.




대화와 토론을 거부한 페미니즘은 철학이 아닌 종교다.


서론이 길었다.

정희진 작가의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에 대한 나의 한줄요약은 다음과 같다.



그녀의 페미니즘은 철학이 아니다.


이 책은 열려있는 토론을 거부한다.

본인의 주장에 대해서는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주장에 틀린 점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가득차있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철학적 방법론을 기반으로 한 현대 페미니즘은 그런 방식의 학문이 아니다.


나는 그녀의 책에서 남성에 대한 적대감과 편견, 그리고 이분법적 관점을 관찰할 수 있었다. 현대 페미니즘은 '약자의 철학'인 마르크스 사상과 포스트모던 철학을 승계한다. 포스트모던은 이분법적 사고를 철저하게 배제한다. 단 하나의 예외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세상을 철저하게 스펙트럼으로 본다. 옳고 그른 것은 없다. 정상과 비정상도 없다. 그것이 포스트모던 철학이다.


하지만 정희진 작가는 남성이라는 수십억 개체를 하나의 성질로 뭉뚱그린다.

그리고 반박은? 받지 않는다.


책의 뒷 표지만 봐도 한 눈에 보인다. 작가의 불통이.


"남성 사회의 질문에 답하지 말고, 그들이 못 알아듣는 새로운 언어로 말하자"

남성 독자를 이해시킬 생각이 그녀에게는 애초에 없다. 책을 읽으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남성 개개인의 다양한 특성은 그녀에게는 철저하게 부정되는 적이라는 것을.




남성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에 따르면 나는 다음과 같은 사람이다.

다른 거의 모든 남성들보다 가사 노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35p)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바람 피더라도 어떤 감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다. (116p)


나의 여자친구는 내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주겠다'고 말하면 '너나 잘해'라고 대답하며

(실제로 말해보니 감동이라고 대답함. 77p)

내게 죄스러운 마음으로 가사에 충실할 예정이다 (실제로는 가정부 얘기함. 124p)


솔직히 한마디만 하자면, 나는 남성에 대한 작가의 폭력적인 규정에 충격받았다.

영어에 많이 쓰이는 표현으로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라는 말이 있다.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얘기는 일상표현에도 많이 나온다.

'Don't Judge me'

'Don't judge people'

'Don't judge a women'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성 할당제의 가장 큰 이유는, 여성을 편견과 선입견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다. 페미니즘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 바로 여성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다. 그런데 그런 페미니즘을 주창하는 작가가 남성을 편견과 선입견으로 대하는 것은 누가봐도 모순이다. 여자가 당했으니 이제는 (젊은) 남자들도 당해봐라 이건가?

학자가 추구해야할 것은 진리이지 복수가 아니다.




이 책의 주 독자는 50대들인걸까


30대 남성으로서 내가 갖는 페미니즘 이슈는 주로 2010, 2020년대 이슈다.

가장 옛날 이슈로는 2012년 '남자들이 불쌍하다'는 글로 논란이 됐던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이슈부터

비교적 최근인 메갈리아 워마드, 여성가족부 폐지 같은 이슈들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작가들이 비유하는 예시는 대부분 20년 전의 것들이었다.

2004년에 제작된 영화 '그녀를 모르면 간첩' (142p)이 인용되거나 2004년 입법된 성매매 합법화에 대해서 수십페이지가 할애됐다.


특히 부록을 포함해 350페이지 정도의 분량인 이 책에서 70페이지를 80, 90년대의 기지촌 여성운동사에 할애한 것은 이해가 안 됐다. 작가가 그 쪽 전문인 것은 알겠는데, 맥락이 없었고 독자 입장에서는 그냥 본인 하고싶은 얘기 쏟아놓은 느낌이었다. 차라리 부록을 빼고 책을 더 얇게 쓰는게 책을 사는 입장에서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쉽고 속 시원한 글은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


남성인 내가 느끼기에 이 책은, 남성에 대한 강한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쓰여졌다.

하지만 여성 입장에서는 전혀 불편함 없이 술술 읽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 입장에서 남자들 대하며 느낀 '남자들은 왜 이러지' 싶었을 부분을 시원하게 타자화 해버렸고, 여성이 공감할만한 내용에 대해서는 근거와 레퍼런스를 과감하게(?) 생략했다.


전형적인 선동적인 글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실어야할 내용이 전혀 없다.

주장만 잔뜩 써놓으면 되기 때문에 주장에 대한 근거를 쓸 필요가 없어 분량이 대폭 줄어든다.


하지만 이미 나와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읽기 편하다.

분량도 적고 (그들 입장에선) 맞는 말만 하는 좋은 글이기 때문이다.


내가 추구하는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 생긴 인식의 간극을 줄이는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은 약자의 학문에서 출발했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다루는 학문이지만, 남성도 공감할 수 있는 학문이다. 적과 우리편을 가르기보다는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어려워도 결국에는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을 다뤄야한다.


하지만 이 책은 여성 독자들만을 위해 씌여졌다는 생각이 든다.

남성에 대한 노골적인 편견과 선입견, 그리고 배제의 감정이 느껴졌다.

남성인 내가 보기에는 틀린(다른게 아니다) 내용이 너무 많았고, 그런 나보고 넌 남자니까 꺼지라고 하는듯 했다.

작가의 이런 태도는 젠더갈등을 부추기는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아 관련 책을 시간들여 찾아 읽는 편이다.

최근 읽었던 책 중 좋았던 것을 꼽자면 정하원 작가의 'Flowers of Fire'이나 마사 누스바움의 '타인에 대한 연민' 등이 있다.


특히 '타인에 대한 연민'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책이라며 선물까지 했다.

남성과 여성, 성별과 관계 없이 보편적으로 공감하고 배울 수 있는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희진 작가의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같은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남성에 대한 적개심과 배제의 감성이 두드러졌다.

철학적인 관점에서는 수준이 상당히 떨어지는 책이었다.

많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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