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매달리는 사랑을 하는 걸까

애착은 어떻게 사랑의 방식을 결정짓는가

 영국의 정신과 의사 존 볼비는 UN에게 한 연구 의뢰를 받았다.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에 일으키는 사회 문제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볼비는 어린 시절 부모와 안정적인 유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아이들은 어른이 된 후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다는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을 세웠다. 

 이후 볼비의 애착이론은 다른 심리학자들에 의해 계속 발전했다. 해리 할로는 붉은털원숭이 새끼가 먹이라는 보상보다는 신체적인 접촉과 유대를 더 원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어미에게서 떨어진 붉은털원숭이 새끼는 젖병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줄곧 보들보들한 천 어미에게 매달려 지냈다. 북 치는 곰 인형을 마주했을 때는 천 인형에게 달려가 위안을 얻고 난 후에야 처음 보는 대상을 탐색했다.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보상 때문이 아니었다. 사랑 그 자체가 위안이 되기 때문이었다. 

 볼비의 제자 에인스워스는 애착을 객관적 평가가 가능한 실험으로 발전시켰다. 1969년 그녀는 애착 유형을 평가하는 '낯선 환경 실험'을 고안했다. 

1. 엄마와 아이가 있는 방에 낯선 사람이 들어온다. 

2. 조금 후 엄마가 떠난다. 아이는 낯선 사람과 함께 있게 된다. 

3. 15분 후 엄마가 돌아오고, 아이의 반응을 관찰한다. 

4. 아이의 반응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안정 애착
불안정-회피 애착
불안정-저항 애착
몰입 애착

 안정 애착 유형의 아이는 어머니가 나가면 적절한 수준의 불안감을 호소한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강아지가 어미 개와 떨어지면 분리 불안의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아이 역시 울거나 흐느끼며 어머니를 찾는 것이다.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오면 달려가 정서적 안정을 얻고, 긍정적 상호작용을 재개한다. 두려움이 사라진 아이는 다시 세상을 탐색한다. 

반면, 

1. 불안정-회피 애착의 아이들은 엄마가 방에 돌아와도 무관심하고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2. 저항-애착 유형의 아이는 엄마가 돌아오면 화를 낸다. 

3. 몰입-애착 아이는 어머니가 다시 떠나갈까 봐 두려워하며 매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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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의 연애를 하는 사람은 몰입 애착의 유형일지 모른다. 어머니에게서 긍정적인 상호 접촉과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아이들 중 일부는 어른이 되어서도 사랑하는 이가 떠나갈까 봐 항상 불안해한다. 늘 감정적으로 목마름을 호소하고, 연인이 떠나가는 것이 두려워 통제하려 든다. 이들에게 사랑이란 아무리 바닷물을 마셔도 갈증이 줄어들지 않는 것과 같다. 사랑을 갈구할수록, 상대는 지쳐간다. 커지는 의심만큼 구속하려 하거나, 전부 다 퍼주고 매달리는 사랑을 한다. 항상 자신 주변에 있어야 하고, 연락을 받아야 한다. 즉시 전화를 받지 않으면 마음이 식었다고 의심하거나, 바람을 피운다는 증거로 여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어림짐작하고는 먼저 마음을 떠나보낸다. 사랑의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사람은 익숙함의 동물이다. 변덕스럽고 충동적인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는 제 멋대로 행동하는 이성에게 끌리고, 착취적인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는 모든 걸 통제하고 이용하려는 연인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게 자연스럽고 익숙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용당함'에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다. 

 변화의 첫 단계는 상처와 마주할 용기를 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최초로 경험했던 분리와 거절의 트라우마는 무의식 속에 남아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옭아매고 결정짓는다. 바뀌기 위해선 무의식 깊숙이 가라앉은 내면과 마주해야 한다. 깊이 감춰뒀던 심리적 동기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다. 그러고 나서, 아물지 않은 생채기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해야 한다. 

 물론, 그 전에 인정해야만 하는 전제가 있다.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