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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양이 Jan 12. 2024

고릴라는 왜 가슴을 두드릴까


 고릴라가 가슴을 두드리는 것을 한 번쯤 본 적 있을 것이다. 거대한 근육과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흉포하게 울부짖는 고릴라를 보면, 단 둘이 있으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였을까. 한 아이가 고릴라 우리에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 경비원이 아이를 일으켜주고 멀뚱멀뚱 서 있던 고릴라를 다급하게 총으로 쏘아 죽인 적이 있었다. 


 정말 고릴라가 폭력적이고 위험한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 고릴라는 생각보다 온순하고 겁이 많은 종이다. 나뭇잎과 과일을 주식으로 하며, 침팬지보다 훨씬 더 평화롭게 살아간다. 콩고 밀림 한복판에서 우연히 고릴라 가족을 만난다고 해도 불상사가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 먼저 새끼를 위협하지만 않는다면. 온몸이 근육으로 둘러싸인 수컷 실버백은 당신을 보고 겁을 먹고 도망칠 것이다.


 그들이 위험한 존재가 된 건 영화《킹콩》의 탓이 크다. 탐험가 폴 뒤 샤이우는 수컷 고릴라가 여성을 납치한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를 한 원주민에게 들었다. 그리고《적도 아프리카의 탐험과 모험》이라는 책에 그 일화를 소개했다. 이야기는 영화에 그대로 차용되었다. 수컷 고릴라가 백인 금발 여성을 남몰래 사랑하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다 때려 부순다는 스토리로 발전한 것이다. 덕분에 고릴라는 야만의 상징이 되었다. 


 밀렵꾼 탓도 있다. 한참 서구인들이 유인원을 신기해하던 시절, 유럽인들에게 고릴라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밀렵꾼들이 새끼를 동물원에 팔기 위해서는 먼저 수컷 고릴라를 죽여야 했다. 수컷 실버백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서양인들은 방어적 공격성과 폭력성이 별개의 문제라는 걸 알 만큼 똑똑하지는 않았다. 


 고릴라가 가슴을 두드리는 것도 폭력성과 관련이 없다. 수컷 고릴라는 모든 인간 수컷들이 부러워하는 거대한 대흉근을 힘차게 두드린다. 상대를 위협하고 공격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사실은 싸움을 예방하는 게 목적이다. 수컷 산악고릴라의 경우 몸무게가 거의 200kg에 육박한다. 온몸은 근육으로 둘러싸여 있고, 평균 악력은 300kg에 달한다. 송곳니 또한 치명적이다. 


 그래서 수컷들은 직접 싸우기보다는 자신이 사실 싸움의 고수라는 걸 알리는 드럼 콘서트를 선보인다. 상체가 크고 두꺼울수록 더 웅장하고 낮은 소리가 난다. 소리가 작다는 것은 신체적으로 불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드럼 실력이 부족한 고릴라는 승산이 없는 싸움을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따라서 수컷 고릴라의 가슴 두드리기는 암컷 고릴라에게 인정받기 위한 성 선택의 산물이지, 폭력의 상징이 아니다. 상대를 다치게 하거나 지배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평화의 수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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