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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양이 Oct 27. 2024

호모 소시올로지쿠스(Homo Sociologicus)



 지금으로부터 약 200만 년 전, 아프리카 대륙의 기후가 급격히 건조해지고 온도가 크게 낮아졌다. 울창했던 숲은 점차 수풀로 바뀌어갔다. 나무 위에서 과일을 따먹으며 한가롭게 살아가던 큰 원숭이는 작은 원숭이와의 먹이 경쟁에서 밀렸다. 그들 다수는 나무 위의 익숙한 삶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오직 한 원숭이만이 완전히 나무에서 내려오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두 발로 우뚝 선 채, 거친 흙먼지가 날리고 맹수가 우글거리는 지상에서의 삶에 용감하게 맞서기로 한 것이다. 


 물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삶은 쉽지 않았다. 나무에 오르는 법을 잊어버린 그들은 더 뛰어난 사냥 능력을 가진 육식동물이 되거나, 맹수를 따돌릴 수 있는 재빠른 초식동물이 되어야 했다. 팔만 뻗으면 달콤한 즙이 줄줄 흐르는 무화과를 먹을 수 있던 시절은 지나갔다. 살아남기 위해선 닥치는 대로 먹어야 했지만, 고양잇과 맹수만큼 사냥을 하기는 힘들었다. 신체 구조가 나무를 잡고 매달리는 데 특화되어 있어서였다. 진화의 시간이 그들을 사냥하는 원숭이로 만들기 전에, 너무 빨리 나무에서 내려온 것이다.


 결국 그들은 다른 맹수가 먹고 남긴 썩은 사체를 뜯어먹거나, 낮은 초목에 달려있는 산딸기와 견과를 따먹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그것도 없을 경우엔 손톱으로 땅을 파 맛없는 나무뿌리라도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운이 좋으면 즙이 많고 꿈틀거리는 벌레, 작은 파충류와 개구리, 어미새가 꽁꽁 숨겨둔 새알, 병든 짐승, 갓 태어나 비틀거리는 새끼도 먹을 수 있었다. 사바나 초원의 동물들은 그들을 시체 청소부라 불렀다. 가끔씩 지나가던 하이에나마저 그들을 불쌍하게 쳐다보며 먹다 남은 뼈를 던져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만큼 그들의 인내심과 집요함, 창의성은 상상을 초월했고, 기가 막힌 전략을 하나 찾아냈다. 


 우선, 그들은 거추장스러운 털을 벗어버렸다. 털은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게 해 주지만,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한낮에 사냥을 하기에는 거추장스러운 짐이다. 그래서 털을 벗고 그 자리에 땀구멍을 내서 땀이 자연스럽게 흐르며 증발하게 했다. 열을 효과적으로 낮출 수 있게 되자, 맹수나 초식동물보다 훨씬 오랫동안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체력만큼은 자신이 있던 그들은 사냥감이 지칠 때까지 여럿이서 쫓아가 잡거나, 남은 두 발로 돌도끼나 투창 도구를 만들어 사냥감을 향해 던졌다. 다행히 그들의 던지기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일단 사냥 기술이 익숙해지자, 대폭발이라 할 수 있는 혁신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고기를 불에 익혀먹기 시작했고, 사나운 짐승들이 불을 무서워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이제 철분과 비타민, 영양분이 풍부한 고기를 안전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얻은 칼로리는 유연하고 복잡한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뇌에 전부 투자했다. 


올인(All-in)을 한 것이다. 


 그 결과, 의복과 거주지, 사냥 도구와 식량을 저장하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동물과 식물을 직접 기르는 방법까지 알게 되었다. 식량이 늘어나고 삶이 안정적으로 변하며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도시와 문명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1만 년 만에 자연의 제약에서 벗어난 최초의 종이 된 것이다. 


 나무에서 내려와 떨리는 첫걸음을 내디뎠던 털 없는 원숭이, 호모 사피엔스인 바로 우리가 말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흔히 우리는 스스로를 초사회적인 종(Ultra-Sociality)이라 부르며 고귀한 존재로 여기지만, 진실은 반대편에 가깝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만큼 무력하기에 사회성이 커진 것이다. 실제로 동물행동학자들은 공격받기 쉬운 종일수록 집단의 크기가 커진다고 말한다. 개코원숭이처럼 땅에 사는 원숭이가 나무에 사는 원숭이에 비해 더 큰 무리를 이루는 이유다. 


그렇다면 높은 지능과 사회성, 뛰어난 공감능력은 취약성의 결과가 된다. 다른 어떤 포유류보다 서로 뭉치고 협력하는 성향, 인류학자들이 자랑스럽게 초사회성이라 부르는 것의 이면에는 누구보다 무력했던 조상들의 역사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 취약성과 관련 있는 게 바로 먹이다. 쥐나 인간 같은 잡식동물을 제너럴리스트라 부르는데, 치타나 코알라처럼 정해진 먹이와 생태 환경을 가지는 스페셜리스트라 비교해 보면 차이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제너럴리스트는 스페셜리스트인 가젤처럼 빨리 달릴 수 없고, 호저의 가시나 스컹크의 독가스의 예처럼 자신을 지킬 특별한 무기가 없다. 가리지 않고 먹기 위해선 적절한 먹이를 찾아내고 학습하는 뇌에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점인 동시에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자이언트 판다의 예를 생각해 보자. 판다는 점심으로 뭘 먹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대나무 잎만 먹으면 되기 때문에. 하지만 대나무에 병충해가 퍼진다면? 


환경에 적응할 새도 없이 멸종하고 말 것이다. 


 제너럴리스트는? 


 다른 먹이를 찾아 떠나면 된다. 그 대가로 무력한 신체를 얻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고 가르쳐주면 된다. 다양한 먹이를 함께 찾고 구별하고, 학습하고, 배운 지식을 다음 세대에 전파하는 과정을 통해 어떤 환경이든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것이다. 쥐와 바퀴벌레와 인간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 이유다. 


 지능과 사회성에 대한 관점 역시 이에 맞추어 변화하고 있다. 섬세한 돌도끼를 만들고,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고민하는 능력을 발전시켜 나가다 보니 복잡한 수학 방정식과 건물 설계도를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는 '논리적 지능 가설'은 뒤로 밀려났다. 대신 연약한 인간이 서로 의지하고 경쟁하며 살다 보니 높은 지능이 부산물로 생겨났다는, '사회적 지능 가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보수적인 존재다. 나약하고 겁이 많은 우리는 타인과 잘 지내고 싶은 원초적인 본능을 갖고 있다. 고립되면 심리적 고통을 느낀다. 당연히 그런 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개인보다 집단을 우위에 두고, 안정과 질서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엄격한 사회 규범과 위계질서, 도덕적 가치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이를 한 마디로 요약하는 단어가 바로 보수주의다. 


 기본적으로 호모 사피엔스는 보수적인 존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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