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진보적인 세상이 되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보수와 진보의 차이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 책의 목적은 보수와 진보의 본성에 대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 책을 읽음으로써 서로가 왜 다른지 이해하기를 바랐을 뿐이다. 한국 보수와 진보는 역사가 너무 짧고 정치적 선명성이 흐릿하다 보니 기존의 관점에서는 피상적인 수준에서 보수와 진보를 정의할 수밖에 없다. 시력이 2인 사람과 0.1인 사람은 보이는 게 다른 법이다. 나는 그 불확실성에 안경을 씌워주고 싶었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정치적 대립의 본질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길 바랬다. 현실 정치는 항상 보수와 진보의 축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자신이 왜 보수 정당에 투표했는지, 왜 진보 정당은 싫은지 설명할 수도 없는 사람의 표는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지 못한다. 그런 식으로 뽑힌 정치인은 다음 선거 때도 국민을 기만해 쉽게 의원 배지를 달려는 유혹에 빠진다. 우리가 더 많이 알아야 하는 이유다. 정치인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정확히 말해 정치를 알고 있는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한국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의 생명 주기가 지나치게 길고 변화가 적은 편이다. 냉정히 말해 직업 정치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선거에도 당선되는 것이지 정치적 신념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이건 정치 혐오완 별개의 문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권력이 왕정에서 시민으로 이양되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거치지 못했다. 그러니 좌파와 우파의 이념적 깊이가 없고 정치적 모략만이 난무한다. 많은 정치인들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그것을 실현할 정책에 대한 이해와 능력, 의지도 부족하다. 그러니 표만 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에 상반되는 정책을 제시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한국 정치가 좌우로 나뉘어 싸우는데 무슨 기준으로 나뉘고, 왜 싸우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보니, 모순되는 말을 해도 비판받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가 어떻게 발전했고, 어떻게 대립하며 정치적인 티키타카가 이뤄지는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정치 철학부터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정치 철학을 배우려면 다시 정치가 철학으로부터 분리되기 이전의 고대 철학부터 공부해야 한다. 투표 한 번 잘하자고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아파지는 철학을 공부할 수는 없는 셈이다.
다행히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를 더 쉽게 이해하는 방법이 있다. 정치적 성향이 타고난다는 가정 아래 뇌의 신경시스템에서 그 차이를 찾는 신경 정치학이라는 학문을 이용하는 것이다. 신경 정치학은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다른 정치적 언어에 끌린다는 사실을 활용해 오바마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신경 정치학은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에게만 부분적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신생 학문이라 연구 자료도 부족하지만 가장 민감한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기가 힘든 연구 주제다. 그럼에도 나는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행동 패턴을 보면서 말로 설명될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걸 느꼈다. 단순한 성격 차이보다 더 근본적인 무엇인가가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정치적 입장뿐만 아니라 일상의 생각과 행동에도 어떤 일관된 패턴으로 나타날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 보수와 진보의 본질적인 차이가 단지 변화를 거부하느냐, 찬성하느냐는 사실 하나에 달려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보수와 진보는 여러 면에서 너무 달랐으며, 다른 만큼이나 서로를 미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달라지는지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책은 없었다.
진화심리학을 접하면서부터 나는 그 좁혀질 수 없는 차이가 생물학적 요인에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 말이 통하지 않고 평화로운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건 서로가 단순히 고집불통이어서는 아닐 것 같았다. 그보다는 뇌의 구조와 작동 방식이 서로 달라 똑같은 정보도 다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일 확률이 높았다. 그때 우연히 읽었던 신경 정치학에 관한 기사가 떠올랐다. 보수와 진보가 다른 이유에 대한 궁극적 해답은 진화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관련이 있어 보이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답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 의문을 해결해주는 책들은 하나도 없었다. 힌트를 암시하는 내용만 일부 적혀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비슷해 보이는 책과 연구 자료를 수집하고 읽어나갔다. 정보가 부족해 영어로 된 논문까지 뒤적였다. 논문에는 통계와 방법론이 주를 이루었을 뿐 내가 찾는 내용은 없었다. 영문학과를 나왔지만 영어를 못한다는 점이 처음으로 후회스러웠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개별적인 정보들이 연결되고 개념의 그물이 엮이면서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보수와 진보가 다른 궁극적 원인은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무의식적인 심리적 프레임의 차이에 있었다. 그렇지만 이는 단일 요인에 기반한 것이라기보단 복합적 요인들이 상호작용한 결과였다. 다른 심리학적 결론과 마찬가지로, 보수와 진보의 차이 역시 개인적 차이를 고려했을 땐 부분적인 해답만 제시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나는 보수와 진보의 차이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기보단,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건 내가 학자가 아니라 일반인이기에 가능한 특권이었다. 일단, 주제 자체가 너무 민감하고 오해의 소지가 컸다.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를 우월과 열등의 차이로 해석하거나, 윤리적 문제로 오인할 여지가 있었다. 나는 개인의 성격과 가치관의 차이가 정치적 성향 차이에도 반영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지, 보수와 진보 간의 다름에 관해 성급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기를 바랐다. 아무리 근거가 탄탄한 설명과 이론이라고 해도, 개인에게 집단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편견과 차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무언가를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은 완벽한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이 서로 보완해주는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처음엔 정치와 상관이 없어 보이는 도덕의 문제를 끌어들였다. 도덕의 본질은 교과서에서 나오는 고리타분한 옳고 그름에 관한 것이 아니다. 도덕은 인간이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며 지켜야 할 원칙이 사회적ㆍ제도적으로 규정됨과 동시에 양심이라는 형태로 내면화된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왜 옳고 그름, 선과 악을 따지도록 진화했는지 질문하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도덕을 지키지 않으면 그 대가로 생존에 위협이 될 만큼의 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누구나 도덕을 지키려 노력했다. 그래서 오늘의 도덕은 관습적으로 엄격한 행동 기준이 되었다. 사회에서는 무엇이 옳은 행동 기준인가에 대해 차이와 다툼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가장 민감한 차이가 발생하는 곳이 현실 정치이다.
물론 다른 동물들과 침팬지에게도 원시적인 도덕은 있다. 침팬지의 도덕은 친족과 동료에 한정되어 공감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반면 인간에겐 불특정 다수와의 협력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협력 파트너를 서로 규제하고 감시하는 객관적인 도덕이 발전했다. 팀으로서 협력을 배신하면 응징하고 험담을 퍼트리지만, 헌신적인 파트너를 고르면 그만큼 보상과 좋은 평판을 얻게 된 것이다. 생존을 위해선 공동체를 향해 협력 의지를 보이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 결과로 공동체에 헌신하는 마음은 내면화되어 우리는 개인보단 공동체를 우선시하게 되었다. 인류만의 도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인류 최초의 도덕은 인간이 농경을 시작하고 사회 규모가 확대하면서 한 차례 더 진화했다. 부족의 인구가 늘어나며 인구 규모가 친족 집단의 범위를 넘어서자, 누가 같은 부족원인지 식별하기가 힘들어졌다. 같은 구성원임을 인정받지 못하면 추방받거나 경쟁 부족원으로 오해받아 죽임을 당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같은 부족원을 확인하고 인정받으려는 마음이 발전했다. 주로 같은 활동, 제스처, 의복, 문신 등으로 동질성을 확인했기 때문에 우리는 공동체의 모든 것을 모방하고 추종하는 마음을 발전시켰다. 유사성을 보여주려는 행동은 의례, 의식, 초자연적인 믿음이라는 형태로 종교적 성격을 띠거나, 관습적 형태로 나타나 사회 규범과 전통을 발전시켰다. 이는 현대의 제도, 종교, 윤리의 모태가 되었다.
그런데 진화한 인간의 도덕이 우리 모두에게 존재한다면, 보수와 진보는 왜 도덕 기준이 다른 것일까? 그 근본적 원인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나뉘게 된 생태학적ㆍ진화적 환경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유기체는 자신이 얻은 에너지를 가지고 생존과 번식에 가장 효율적으로 분배해야 하는데, 어떤 방식이 더 효율적인지는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개체가 사는 환경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환경이라면 경쟁자들의 수가 많아 경쟁이 치열해진다. 따라서 번식을 미루고 늦게 성숙하며 치열한 경쟁에 대비하는 것이 유리하다. 자식은 적게 낳되 투자를 많이 해 자식의 질을 높이는 전략을 가진다. 이를 느린 생활사 전략, 또는 k-선택이라 한다.
반면 예측이 힘들고 불안정한 환경에서 사는 유기체는 빨리 번식하고 많은 자식을 낳는 것이 좋다. 포식자와 먹이 자원의 변동성으로 인해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에 질보단 양을 택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적은 투자를 하고, 자식 역시 빨리 성숙하고 이른 번식을 한다. 이를 빠른 생활사 전략, 또는 r-선택이라 한다.
보수와 진보의 경우도 비슷한 점이 많다. 보수주의자는 아이가 미래의 경쟁에 잘 준비될 수 있도록 도덕적으로 엄격하게 교육하고 자제심과 능력을 키우도록 훈육한다. 엄격한 부모는 부모의 가르침과 사회규범에 잘 따라야 살아남고 성공하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위험한 세상 속에서 경쟁과 그로 인한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 집단에 소속되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고 높은 지위와 재화를 얻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가난하고 능력이 없는 것은 충동을 절제하지 못하고 노력하지 않은 결과를 뜻하기에,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개인의 노력과 타고난 능력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불평등은 불가피한 것인데, 이를 정부가 세금과 복지로 해결하는 것은 나태라는 부도덕을 낳는다.
반대로 진보주의자가 보기에 세상은 넓고 예상할 수 없는 곳이기에 다양한 것을 많이 보고 경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이 태어난 이유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 위함이 아니라 인생을 즐기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건 비도덕적이다. 다 같이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는 다양한 것을 보고 배우며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사고력을 기르고, 자신의 개성을 발전시킴과 동시에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교육의 진정한 목적은 아이들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어른이 된 아이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면서도 인생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이렇듯 환경적 차이에 따라 다른 생활양식과 가치관을 가진 두 인간 유형은 보수와 진보의 모태가 된다. 그렇다면 그들의 뇌 구조에는 그 차이가 반영되어 있을 거라 추론할 수 있다. 보수주의자에게선 위험과 공포를 관장하는 편도체가 진보주의자에 비해 더 크고 쉽게 활성화된다. 편도체의 고반응성 때문에 보수주의자는 기본적으로 세상을 위험한 곳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낯선 사람과 가치관에 거부감을 가지며 감정과 직관에 의존하는 판단을 한다. 또 익숙한 환경과 믿음, 소속 집단에 애착을 가지고 변화를 거부하기도 한다.
반면 진보주의자는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더 활성화되어 있다. 전두엽은 복잡한 인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에게 유난히 발달한 뇌의 부위다. 진보주의자는 전두엽이 발달해 감정보단 논리와 추론을 활용해 세상을 이해하기에 타인을 객관적 윤리로만 판단하려 하는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보수와 진보는 뇌의 구조뿐만 아니라 주로 분비되는 호르몬의 종류도 다르다. 테스토스테론은 지배적이고 권력 지향적인 성격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보수적 사고방식에 기여한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에게 더 많이 분비되는데, 수렵 채집 시대에 경쟁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던 남성은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해 짝짓기 경쟁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었다. 남성 중에 보수주의자가 많은 이유다. 테스토스테론이 많이 분비되는 사람은 군사적으로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공격적이며 자기중심적이다. 그런 사람들은 부의 재분배에 반대하고 자유로운 경쟁에 찬성하는 등 보수주의자가 될 확률이 높다.
반면에 진보주의자를 만드는 호르몬은 도파민이다. 도파민은 생명체가 새로운 것을 시도함으로써 보상을 얻도록 하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호르몬이다. 진보주의자들은 긴 도파민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고 익숙한 것들을 지겨워한다. 도파민은 즉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미래의 보상을 위해 계획하고 사고하는 통제심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도파민은 욕망 회로와 쾌락 회로 중 어디로 흘러들어 가냐에 따라 외향적 성격과 개방적 성격을 만들어낸다. 정치 성향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도파민은 사회적 정의와 대의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어 진보주의자를 만들어 내는데 기여한다.
전두엽과 편도체, 도파민과 테스토스테론 같이 뇌 구조의 차이는 결국 개인이 행동적ㆍ심리적 패턴과 방향성을 가진 성격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보수주의자에게선 욕망과 충동을 절제하고 계획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살게끔 하는 성실성의 특징이 드러난다. 편도체의 고활성화로 인해 두려움을 강하게 느끼는 성향과 테스토스테론이 만드는 지배적 성향이 결합하여, 사회적 성공과 지위, 이익을 추구하고 욕구를 절제하는 게 자연스러운 성실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다.
진보주의자에게선 논리적 사고를 돕는 전두엽과 새로움을 추구하게끔 하는 도파민이 결합해 개방성적 특징이 두드러진다. 개방성은 생각과 감각이 서로 뒤섞여 자유로운 연상이 떠오르는 것을 말한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들은 지적인 호기심이 많거나, 환상과 공상에 잘 빠지거나,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하다. 또 사회적ㆍ구조적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어 자연스럽게 진보주의 이념에 이끌린다.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는 심리적 특징이 뚜렷하게 다르기 때문에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점도 달라진다. 도덕적ㆍ윤리적 틀이 달라지면 같은 행동도 다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보수와 진보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보수주의자는 6가지 도덕 매트릭스 중 고귀함/추함, 충성/배신, 권위/전복 등 세 가지 도덕 프레임을 주로 사용하고, 진보주의자는 배려/피해, 자유/억압, 공정/불공정 등 나머지 세 가지 도덕 프레임으로 도덕적인 판단을 한다. 6가지 도덕 기반은 각자 나름의 진화적 뿌리가 있어 무의식적 차원에서 작용하기 때문에 도덕적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친다.
보수주의자의 도덕 기반을 먼저 살펴보면, 권위/전복 기반은 서열 위주의 위계 사회에서 권위에 순응해 이익을 얻고 지위를 향상하려는 의도에서 진화했다. 충성심/배신은 집단의 가치와 믿음에 헌신하도록 자신을 증명하려는 의도로 진화했다. 고귀함/추함은 집단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감염을 피하기 위한 위생적 관념이 종교와 결합하여 탄생했다. 그 결과 보수주의자는 인과적ㆍ집단적인 세계관을 가지게 된다. 보수주의자가 애국심 같이 집단의 가치에 헌신하고 도덕적ㆍ종교적으로 엄격한 윤리 기준을 가지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진보주의자는 개인적ㆍ독립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개인의 자유와 독립성을 중시하는 도덕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옳고 그름에 대한 주된 초점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가 여부에 달려있다. 배려/피해 기반은 약자를 돌보고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자유/억압 기반은 독재자의 착취에 분노하고 맞서는 과정에서 진화했다. 공정/불공정은 자원의 평등한 분배를 추구하는 심리가 진화한 것이다. 진보주의자가 불평등을 개선하고 복지를 강조하는 것도 세 가지 도덕 매트릭스가 결합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6개의 도덕 매트릭스가 결합되면 우리의 뇌는 도덕적으로 이상적인 모델을 만들어 내어 정치적인 판단을 내릴 때 이용한다. 가정에서 출발한 이상적인 가정 모델은 국가로 확대되어 정치적 이상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는 전형적으로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랐을 확률이 높다. 어린 시절부터 학습하는 엄격한 아버지 모델은 국가관에도 은유적으로 확장되어, 개인의 책임과 권위를 중시하는 등 보수적인 정책을 지지하게 만든다. 반면 자율적이고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장려받은 아이들은 진보적인 성향을 띨 확률이 높다. 자애로운 어머니 모델을 경험한 아이는 커서 국가가 약자를 돌보고 개인의 자유를 높이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보수와 진보에 관하여 지금까지의 논의들은 인지거리와 인식체계라는 개념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을 인식하는 인지거리가 짧으면 인지거리 내의 대상에 공감 강도가 강해지지만 그 밖의 것들은 판단과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보수주의자는 인지거리가 짧아 자신과 가족, 소속 집단, 국가 같이 배타적인 공동체에 대해선 애정을 가지지만 그 외의 것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반면 진보주의자는 인지거리가 길어 인류, 가족, 환경 같이 넓은 범위를 추상적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각각의 대상에 대해선 공감은 오히려 약해지고, 냉정해지고, 현실 감각이 약해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보수와 진보는 다른 인식체계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고대 중국인들은 세상이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음은 구름이 해를 가리는 것을 상징하고, 양은 해가 구름 밖으로 나온 것을 뜻한다. 음양은 서로 대립하고 의존하면서 변화무쌍하게 사물을 생성하고 존립시킨다. 태극기 가운데에도 있는 음양의 개념과 비슷한 것은 서양에서도 있다. 서양 철학에서 헤겔의 변증법이 그것이다. 서로 대립하는 두 개념이 다투면서 더 큰 진리를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이 있다. 보수와 진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보수주의와 진보주의 둘 다 나름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연은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둘 다 존재하는 방향으로 진화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자연선택이 작용하지는 않지만, 그 유산을 물려받은 우리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투쟁하고 협력하는 길 위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좋든 싫든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해의 출발점은 정치적 진영논리의 위에서가 아니라 개인 간의 관계에서 출발해야 한다. 현실 정치는 부득이하게 언제나 진영 논리를 따라가기 때문에, 대화와 타협보다는 힘의 우위를 통해 의사를 독점하는 식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 관계에서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는 언제든지 마음을 열고 진심을 다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이 집단을 이루면, 오직 집단의 의지만이 효력을 발휘한다. 개인의 억압된 권력 의지와 야심이 집단 속에서 부활하고 힘을 얻게 되면, 소수의 이성은 무시된 채 선악의 진영 논리만이 유일한 판단 근거가 된다. 게다가 권력의 최상부가 내부의 집단적 맹목성에 맞서지 않고 오히려 빠져들거나 이용하게 되면, 그 집단의 표면적 이데올로기가 무엇이건 그 집단은 전체주의를 띠게 된다. 그렇게 되면 보수나 진보나 전체주의라는 점에서 동일한 양상을 보이게 되는데, 이를 극우와 극좌라 부를 수 있다.
정치학에는 ‘극과 극은 통한다’는 관점을 가진 편자 이론(Horsehoe Theory)이라는 것이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피에르 파예가 창시한 이론으로, 좌파와 우파가 극단으로 갈수록 말발굽의 끝처럼 서로 가까워지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이성과 이념의 합리성을 믿었던 근대에는 우파의 파시즘과 좌파의 공산주의가 동시에 출현했는데, 의도는 정반대지만 실제로 유사한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던 걸 보고 한 말이다. 파시즘 체제에선 힘과 권력을 기준으로 일렬로 줄 세우는 형식을 가지고, 좌파의 공산주의 체제에선 사회 변혁을 위해 극도로 경직된 관료주의 행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두 정치 체제 모두 권위주의를 띠게 된다.
신보다 이성을 믿었던 근대와 현대의 과도기에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나란히 출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맹종한 채 반대파의 견제의 중요성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정당 시스템은 도입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바꿀 히어로라고 믿은 채 스스로 생각하고 의심하는 과정을 건너뛰었다. 그 결과로 파시즘과 공산주의라는 괴물이 탄생했다. 이성을 신봉했던 근대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평등한 유토피아를 달성한다는 이름 아래 죽어나가고, 위대한 아리아 민족국가를 재건한다는 목적으로 유대인을 가스실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스탈린과 히틀러에게 권력을 쥐여준 건, 결국 일반 대중이었다.
민주주의는 그나마 과정이 공정한 정치 제도일지 몰라도, 언제든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성도 안고 있다. 삼권 분립과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대립, 필리버스터 같은 제도적 견제 장치가 있지만, 결국엔 민주주의도 승자독식 체제라는 점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정당의 궁극적 목적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그 목적을 위해선 우선 승리가 우선이다. 보수건 진보건 선거를 통해 승리하는 것이 당면 과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정치인이 있다면 그들은 정책과 이념을 선명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인기에 영합하거나, 정치 혐오를 조장하거나, 정치적 담론의 명시성을 흐려 국민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그 편이 훨씬 쉽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정치를 통해 현실을 바꾸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우선 자신의 정치 성향을 자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리 정치판이 난장이어도 결국 주권자는 국민이고, 책임을 떠안는 쪽도 국민이다. 권리에는 책임이 따르듯이, 주권자에겐 국가에 대한 책임과 권리가 함께 부과된다. ‘왕이 되고 싶은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처럼, 국민도 주어진 권리를 행사하려면 그에 따르는 노력과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무게를 감내한다면 국민은 심판자가 된다. 그러나 회피하면 관중이 된다. 무능한 심판은 경기를 망칠 수도 있지만, 관중은 아무리 선수에게 욕을 한들 경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정치에 무지하다는 건 그런 뜻이다.
나는 이 책을 우리가 관중에서 벗어나 심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 심판이 되려면 우선 경기의 룰이 누구인지, 룰에 따라 두 팀이 공정한 경기를 하는지 주시해야 한다. 정치에선 두 팀이 보수와 진보다. 우리는 보수와 진보가 룰에 따라 페어플레이를 하는지 감시하고, 룰을 어기면 표를 행사하여 페널티를 주는 심판이 되어야 한다.
경기를 보는 입장에서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기는 경기는 재미가 없다. 양 팀이 치열하면서도 수준 높은 경기력으로 싸워야 보는 재미가 있다. 각자 나름대로의 전략과 전술, 그 전술을 수행할 수 있는 체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승리할 수 있다. 정치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지루한 0-0보다는 4-3같이 치고받는 경기가 훨씬 재밌다. 정치도 보수와 진보의 이념과 정책 논쟁이 치열하고 그 근거가 탄탄할 때에만 정치적 갈등이 무의미한 소모전이 아니라 사회가 발전하는 주춧돌이 될 수 있다. 보수와 진보는 서로 싸우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대립이 없다는 건 전체주의를 의미한다. 정치적 통합을 구호로 내거는 정치인들은 자신만의 정치적 신념이 없거나, 자신이 없다는 말로 해석하면 된다. 정치가 제대로 돌아간다는 것은 보수와 진보가 서로 싸우되, 그 싸움의 이유를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잘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게 수준 높은 정치다.
정치적 투쟁의 이유에 자신 있는 정치인이 누구인지를 판별하기 위해선, 우리는 보수와 진보가 근본적으로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축구도 재밌게 보려면 포메이션과 전술, 선수들의 움직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한다. 알고 있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보수와 진보가 왜 싸우는지도 알아야 지루하고 비루한 정치적 갈등 너머에 있는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볼 수 있다. 바꿔 말해 고놈이 고놈이라는 건, 사실 나는 정치가 뭔지 잘 모르겠고 어려우니까 그 중요성을 깍아내려서라도 내가 무식한 게 아니라는 걸 인정받고 싶어 하는, 무의식의 발로라 할 수 있겠다.
사실 보수주의자의 장점은 많다. 성실하고 계획적인 그들은 사람은 노력하는 만큼 돌려받는다는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사회의 규범과 도덕을 준수하고, 전통을 좋아하고, 애국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안정과 평온에 대한 근원적 욕구로 종교와 국가, 지역 공동체에 헌신하고 소속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그들이 더 열심히 일하고 절제하는 삶을 살도록 만든다. 눈앞에 보이는 대상에 강한 공감을 보이는 보수주의자는 가정에 충실하고, 재해를 겪은 이주민들에게 더 많이 기부하고, 아이들에게 바르고 강한 삶의 태도를 심어주려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국가와 공동체에 위험에 처했을 땐 집단에 충성하고 희생할 줄 아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개인의 자유라는 가치 아래 사회의 구심점이 약해질 때 보수주의와 어울리는 권위, 규범, 소속감, 엄격한 도덕은 사람들을 묶어주고 안전에 대한 근원적 욕망을 채워줄 수 있다. 게다가 보수주의자는 진보주의자가 정치적ㆍ사회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시도할 때 그 속도를 늦추고 길을 잃지 않도록 막아줄 수도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성실히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이다.
하지만 초점을 사회로 돌리면 보수주의자의 장점은 단점이 될 수도 있다. 보수주의의 담론은 결국 ‘내가 벌어들이는 것을 막지 말라’와 ‘나와 내 집단의 이익과 심리적 평온을 위해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마라’로 요약될 수 있다. 보수주의자는 이 같은 말에 발끈하겠지만, 나는 그들의 말과 행동 너머의 본질적 의미에 대해 이 명제를 넘어서는 다른 것을 찾지 못했다. 인지거리의 범위가 좁은 대신 안에서의 초점이 그만큼 강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적 자유를 제외한 나머지에 관한 것들에 대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쪽으로 보수주의가 작동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공동체를 위한 정치적 행동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진보주의뿐이다. 보수주의자의 심리적 근원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안정과 이익 추구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는 두 가지 욕구에 상충되지 않으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보수적 사고방식이 극단화되면 그 사회 구성원들 대부분이 불행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적 문제를 개인으로 환원하여 불평등을 옹호하고, 복지 정책에 반대하게 된다. 세상을 위험한 곳으로 보면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권위주의와 서열주의를 당연시하고, 외부의 생각과 비판을 거부한다. 이는 폐쇄적이고 가치가 획일화된 사회를 만들어 내고, 개인이 자유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기회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는 기본적으로 획일적인 가치를 강요하다 보니, 개인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자유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보수주의자를 보면,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언제나 쉽고 간명하다.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단순해지기 마련이다. 한국 사회와 교육제도가 끊임없이 경쟁을 강요하고 패배하면 끝이라는 불안을 조장하다 보니, 그 불안을 견뎌내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이 뒤처지지 않았는지, 잘 살고 있는지 측정 가능한 수단으로 타인과 나를 비교하게 된다. 그 압박을 견뎌내지 못하고 소외된 이들은 자기보다 못한 약자를 조롱하는 식으로 그 열등감과 소외감을 보상받으려 한다. 그들이 바로 일베, 메갈 같은 부류들이다. 사회가 극단적으로 보수화되면, 중산층이 무너져서 모래시계형 구조를 이루게 된다. 그 속에서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들은 상위 극소수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사는 대다수는 항상 불행하고,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느끼며 살아간다.
물론 진보주의자라고 더 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정말로 도덕적 선의지를 타고난 아동은 친화성이 높은 사람들뿐이다. 그들만이 선하게 사는 일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공감능력보단 공감 성향이 더 어울리는 말이다. 나머지 부류의 사람들은 말보단 행동을 통해 선을 확대해나갈 뿐이다. 진보주의자들은 다만 악과 불의가 구조적 문제에서도 기인할 수가 있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그걸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일 뿐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진보주의자는 구조적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하는 일에 무력할 뿐만 아니라 순간의 도덕적 우월감에 취하는 것에만 만족하고 있다. 진보주의가 도덕적으로 고결하고 지적으로 세련됐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타고난 진보주의자뿐만 아니라 진보의 탈을 쓴, 실제로는 보수주의자나 기회주의자까지 진보 진영에 스며들고 있다. 진보주의자가 태동하게 된 원초적 목적, 약자를 보호하고 불평등을 개선해 사회에 실제 진보를 가져오겠다는 믿음을 잊어버린다면, 진보주의는 과거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이 미래에도 언제나 무력할 것이다. 나는 그게 두렵다.
사이코패스 테스트가 유행이다. 그중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테스트가 있다. 지금 당신의 이마에 대문자 E를 그려보라. 당신은 E를 어떤 식으로 그렸는가? 보통 사람들은 자신 쪽으론 거꾸로 보이게, 상대방의 입장에선 제대로 보이게 E를 그린다. 하지만 자신 쪽에서 제대로 보이게, 상대방의 입장에서 거꾸로 보이게 E를 그리는 사람은 사이코패스다. 자기가 편한 방식으로 E를 그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당신도 자기 쪽에서 E를 그렸다면, 당신은 사이코패스인 셈이다. 탕탕!!!
사실 이 실험이 사이코패스 테스트는 아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여러 사이코패스 테스트처럼 이 실험도 사이코패스라는 극적인 결과를 위해 과장된 것뿐이다. E를 제대로 그렸다고 해서 사이코패스인 건 아니고 남들보다 자의식이 더 강한 것뿐이다. 사실 '이마에 E 그리기' 실험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권력 의지와 관련 있는 실험이다.
노스웨스턴대학교의 심리학자 애덤 갈린스키 교수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행사했던 때와 권력에 지배받았던 때를 회상하고 이마에 E를 그려보라고 지시했다.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를 떠올린 사람들은 E를 자기 위주로 보이게 그렸지만, 권력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상대방의 시점에서 이마에 E를 썼다. 실험 결과는 사람이 권력을 가지면 자기중심적으로 변하게 된 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평범하고 온화했던 사람이 권력을 쥐면 오만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다. 『승자의 뇌』저자 로버트슨 교수는 권력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의 사례로 미국의 에너지 기업 '엔론'의 CEO였던 제프 스킬립을 든다. 그는 CEO 재직 중 오만하고 독단적인 사람으로 악명 높았다. 매년 임직원을 평가해 하위 10%는 모두 해고했고, 주차장에 줄 서 있는 직원들을 지나치면서 가운데 손가락을 보이며 놀리기도 했다. 놀라운 점은 그가 학창 시절에는 착하고 내성적이었으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친구였다는 점이다.
권력의 무서운 점이 여기에 있다. 약간의 권력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환상에 잠깐만 빠져들어도 우리의 뇌에선 통제감, 낙관성, 자신감이 올라간다. 학창 시절에 평범했던 제프 스킬링은 CEO가 되고 나서 미국 기업 사상 최대의 회계 부정을 저질러 24년형을 받았다. 히틀러와 나폴레옹은 빠른 시일 안에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월동 채비를 갖추지 않고 러시아에 쳐들어 갔다. 그 대가로 독일군은 14,000명이 동상으로 손발을 잘라내야 했고, 나폴레옹의 60만 군대는 3분의 1만 살아 돌아왔다. 푸틴이 아무런 보급로도 갖추지 않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과 같은 이유다.
권력을 쥐면 다른 관점으로 보는 능력이 줄어들고, 모든 일을 자기가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든다. 남의 목소리에 귀를 잘 기울이고 사려 깊던 정치인과 기업가들도 시간이 지나면 권위적이고 안하무인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 테스토스테론이 그렇게 만든다. 권력을 가지면 테스토스테론이 더 많이 분비되어 자신감과 집중력이 좋아지기도 하지만, 시야가 좁아지고 스스로의 행동을 자각하는 능력이 더 줄어든다. 게다가 권력은 목표나 보상을 추구하게끔 하는 좌뇌 전두엽을 활성화시키지만, 잠재적인 위험 요소와 자기 진단을 담당하는 우뇌 전두엽을 둔화시킨다. 권력의 위험성 중 하나가 바로 우뇌 전두엽이 약해져서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모르게 만드는 것이다. 자기가 모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느는 반면 인지 능력은 줄어들고, 심지어 그런 자신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게 만든다. 그렇게 권력을 오래 쥔 사람은 점점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되어간다.
권력을 얻으면 쾌락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도 분비된다. 권력에 중독될 수 있다는 말이다. 트럼프는 더 이상 의미 없을 정도로 돈이 많은데도 대통령에 도전했다. 적지 않은 정치인들과 CEO들 역시 돈과 지위, 명예에 있어서 이룰 건 다 이뤘음에도 권력을 내려놓지 않는 이유 역시 권력에 중독되서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권력이 좋은 거라면, 모두가 권력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데, 그럼에도 깔끔하게 권력을 내려놓고 떠나야 할 때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왜일까.
심리학자 데이비드 맥클레랜드는 권력에는 P권력욕(Personal power)과 S권력욕(Social power)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P권력욕은 개인적 목적을 위한 것이고, S권력욕은 어떤 제도나 집단, 사회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권력욕이다. P권력욕과 S권력욕은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P권력욕이 높은 사람은 집단에 자신의 영향력을 미치려 하고, 삶을 선악의 대결이나 제로섬 게임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S권력욕이 높은 사람은 사회 전체에 공익을 가져다줄 변화를 추구한다. 또 도덕적ㆍ법적으로 높은 기준을 따르려 하고, 타인의 안위에 의무와 관심을 가지며, 자기 객관화 능력도 가지고 있다. P권력욕이 높은 사람들 중에선 정치인과 경찰관이 많고, S권력욕이 높은 사람들 중에선 교사와 간호사가 많다.
P권력욕과 S권력욕의 특성은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특성과 정확히 일치한다. P권력욕을 가진 사람은 보수주의자처럼 권력 욕구 자체가 높았고, 지배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고, 세상을 선악의 구도로 바로 보고, 독단적인 면이 있다. S권력욕을 가진 사람은 진보주의자처럼 권력 욕심이 적고, 사회에 변화를 가져오려 하고, 약자에 대한 연민과 보호 의무를 느낀다. 물론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모두 권력을 추구하지만, 그 목적에서 뚜렷한 차이가 난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윈터가 역대 미국 대통령의 권력욕을 조사해봤더니, 부시의 권력욕은 63점이고, 오바마의 권력욕은 53점으로 많은 차이가 났다. 또 놀라운 점은 심리적인 권력욕이 높을수록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커지고, 그들의 언어에는 더 커다란 선을 위해서 개인의 충동을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부시는 이라크를 침공하며 대량 살상 무기가 숨겨져 있고,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을 제시했다. 하지만 진짜 명분이 석유에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P권력욕과 S권력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P권력욕이 높은 사람은 테스토스테론에 더 강하게 반응하지만, S권력욕이 높은 사람은 권력을 쥐고도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분비된다는 점만 알려졌을 뿐이다. 이는 S권력욕이 높은 진보주의자는 권력에 따르는 의무와 책임감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고통받고 있고, 그럼에도 공익을 위해 권력을 감내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반면 권력욕이 높은 보수주의자는 승부에서 이기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크게 올라갔지만, 패배하면 코르티솔 수치가 올라갔다.
지금까지의 결론을 종합해 보면, 보수주의자는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일 가능성이 높고 그 방향이 사회 전체가 아닌 자신을 향할 가능성이 높다. 진보주의자의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진보적인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이유다. 보수주의자는 권위주의적이고 서열 중심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무제한적인 경쟁에 찬성하기 때문에 사회를 단일한 기준 아래의 수직적인 일렬로 개인들을 줄 세워 놓는다. 그렇게 서열 사회가 되면, 사람들은 타인과 비교하는 태도가 심해지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낮은 지위로 고통받는다. 서열 싸움에서 패배한 개코원숭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1%의 엘리트가 아닌 99%는 나머지 1%와 비교하며 심리적으로 고통받는다. 개코원숭이처럼 우리도 사회적 위협을 받으면 코르티솔이 분비되어 스트레스 수치가 올라가고, 건강과 면역 체계가 나빠진다. 다른 이에게 무시받거나 거부당한다는 느낌을 받은 동성애자 환자들은 다른 에이즈 환자들보다 2년 먼저 사망하기도 했다. 앞서 말한 대로, 사회가 보수적으로 변하면 왜 대다수가 불행한 사회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수가 집권하면, 세상은 무한 경쟁 사회, 눈앞의 이익만 바라보는 사회, 경직되고 폐쇄적인 사회가 된다. 빈곤, 불평등, 차별, 승리자와 패배자, 삶의 질의 하락, 혐오 등 사회적 위협이 현실화되어 다수가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불안, 우울이 일상화되는 세상이 된다. 우리는 이미 그 길로 들어섰으며, 그 결과로 출산율 최저, 자살률 1위, 행복지수 59위라는 결과를 맞이했으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냉소, 혐오, 좌절, 질투, 분노가 스며들어 임계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표가 보수 정당으로 향한다면, 그렇게 한국 사회가 계속 보수적으로 나아간다면, 어느 순간 한국 사회가 임계점을 넘겨 터져버릴까 봐,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야만을 현실에서 마주할까 봐 나는 그게 두렵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다 읽은 당신에게 묻고 싶은 질문은 하나다. 왜 보수 정치인이 당신의 삶에 관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하는가? 보수는 그런 식으로 진화하지 않았다. 개인으로서 보수주의자는 똑같이 일하고 성실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나도, 그대도, 우리 모두가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고 그게 정상이다. 개인의 성격과 태도에 있어 보수주의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사소한 차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보수 정치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들은 본성 상 누구보다 높은 권력욕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이 자신에게 있고, 자기가 뭐든지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권력 중독자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권력을 추구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모인 곳에서 권력을 쟁취한 사람들이니, S권력욕보단 P권력욕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들이 모인 곳에서 자정작용이 일어날 리 없고, 타인의 비판을 귀담아들을 리 없고, 5,000만 국민의 행복과 안위에 관심을 가질 리 없다. 그들의 인지거리에 당신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 이 책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진보주의자는 이만 펜을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