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적 사고와 동기화된 추론
앞서 인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같은 부족 구성원을 구별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사한 행동을 따라 하던 모방이 현대의 도덕으로 진화했음을 밝혔다. 모방적 행위가 반복되다 보니 관습화 되어서 하나의 독특한 문화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또 농업이 시작되고 도시가 생겨나면서, 문화적 도덕은 더 전문적이고 객관화된 도덕 체계인 사회 규범, 제도, 종교, 법 등으로 분화되었다. 이는 도덕의 역사를 사회적 관점에서 살펴본 것이다.
그러나 도덕의 주체와 그 최소 단위는 사회가 아니라 개인이다. 개인이 어떻게 도덕적인 행동을 하는지 그 방식을 살펴보려면 도덕의 심리적 특성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도덕의 목적은 개인이 집단에 소속되어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것이지만, 도덕이 시작되는 지점은 개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도덕이 집단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개인이 집단에서 인정받고 배척되지 않으려면 당연히 집단의 관점과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즉, 자신이 속한 내집단의 신념과 그 구성원들이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믿어야 한다. 그 덕에 인간은 자신의 행동이 집단을 위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 심리와 함께 자신이 속한 집단이 항상 도덕적이라고 믿는 심리를 만들어 냈다. 이는 자신의 행동과 신념을 내집단의 그것과 일치시킴으로써 충성심을 내보임과 동시에, 자신의 행동이 공동체를 위한 도덕적 행동이었다고 심리적으로 방어해 현실과 믿음이 일치하지 않는 인지 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집단 정체성은 단결력과 협동성이 뛰어난 집단이 이기적 개인들로 구성된 집단을 압도하며 일어난 집단 선택의 차원에서 출현했다. 인류의 역사는 대형 영장류의 개인적 삶에서 집단적 삶으로 이행하는 과정이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그들의 친척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의 경쟁에 승리하고 절멸시킨 이유도 마찬가지다. 다른 종도 마찬가지로 초개체 무리가 독립적인 삶을 사는 무리와의 경쟁에서 승리한다. 개미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 이유 또한 인간보다 더한 무리 사회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도덕적 마음은 친족을 향한 대형 영장류의 공감하는 마음 위에, 개미를 닮은 군집성의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도덕적 판단은 감정이 개입되고 공동체를 방어하기 위해 애쓰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맨해튼에 사는 존은 조그만 원룸에서 혼자 살고 있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 마트에 가서 생닭을 산다. 존은 생닭을 요리하기 전 닭을 대고 성행위를 한다. 성행위가 끝난 후, 존은 닭을 요리해서 먹었다.'
'맨체스터에 사는 30대의 회사원 윌리엄은 우연히 길에 버려져 다리를 저는 골든 레트리버를 보았다. 평소 동물을 좋아하던 윌리엄은 그 레트리버를 입양해 '해피'란 이름을 붙여줬다. 윌리엄은 해피를 지극정성으로 돌봤고, 해피도 그런 주인을 사랑했다. 10년 후, 해피는 사랑하는 주인 옆에서 평온하게 잠들었다. 해피가 눈을 감자, 윌리엄은 그 레트리버를 요리해서 먹었다.'
존과 윌리엄이 한 짓은 비도덕적인 행동일까? 우선, 이 이야기는 실화가 아니다. 도덕 판단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기 위해 연구자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내가 조금 각색한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마지막이 역겹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제발 당신도 그러길 바란다.) 하지만 존과 윌리엄의 행동이 비도덕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존과 윌리엄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 생닭과 죽은 레트리버는 더 이상 생명이라고 할 수 없다. 존은 마트에서 생닭을 정당한 대가를 주고 구매했다. 윌리엄은 해피를 사랑으로 돌봤으며, 주인으로서 해피의 시체를 그의 방식대로 다룰 법적인 권리가 있다. 존과 윌리엄의 행동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이야기의 마지막 반전을 제외하고, 그 두 명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이다. 그런데도 존과 윌리엄은 비도덕적인 행동을 한 것일까?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안다. 찝찝하고 불쾌한 느낌이 들면서 그래도 그 둘의 행동이 비도덕적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반대로, 역겨운 건 맞지만 비도덕적인 건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신기한 점은 존과 윌리엄의 행동이 비도덕적이라고 한 사람은 정치적으로 보수주의자가 대부분이었고, 그래도 비도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답한 사람 다수가 진보주의자였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실험 결과대로라면 보수주의자는 감정으로 도덕적인 판단을 하고, 그 판단이 정치적 성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뜻이 된다. 맞다. 도덕에는 감정이 얼룩진다. 사실 보수주의자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에 따라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결정된다. 존과 윌리엄의 역겨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느낌이나 정서가 인식하지도 못할 찰나에 무의식에 떠오르고, 이후 우리의 자아가 불쾌한 감정을 인식한다. 일단 우리의 마음에 어떤 감정이 인식되면, 의식은 감정을 정당화할 근거를 찾아내거나, 없다면 근거를 만들어낸다. 순간에 느낀 감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논리와 추론을 활용하는 것이다. 혹 감정을 정당화하는 일에 실패해도, 우리는 처음의 의견을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이 세상에 고집투성이들이 넘쳐나는 것이다. 실제로, 존과 윌리엄의 행동이 왜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냐고 집요하게 캐묻자, 피실험자들은 당연한 걸 꼭 말로 해야만 하느냐며 화를 냈다.
이러한 실험 결과는 인간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는 오랜 믿음에 반하는 결과다. 오히려 정반대다. 감정이 먼저이고, 이성이 나중이다. 감정이 도덕적 판단의 방향을 정하면, 이성은 이미 정해놓은 결론의 근거를 만들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를 ‘동기화된 추론’이라고 한다. 감정이 코끼리이고 이성이 코끼리 위에 탄 기수라면, 기수가 코끼리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이라는 코끼리가 선장이고, 이성이라는 기수가 코끼리의 조수다. 우리의 뇌는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대니얼 카너먼은 이 ‘동기화된 추론’ 이론으로 심리학자인데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이 이론으로 인간의 선택을 연구하는 행동경제학이 창시되었고,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는 신념이 뿌리째 뒤집혔다. 대니얼 카너먼은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간은 감정과 직관으로 사고하는 ‘시스템 1’과 논리와 추론을 담당하는 ‘시스템 2’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해 결정을 내린다는 점을 밝혀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의 결정을 시스템 1에 위임한다. 그래서 우리는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고집에 빠진다. 감정과 직관을 이용하는 시스템 1은 논리와 이성을 사용하는 시스템 2보다 훨씬 빠르고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이를 생닭과 죽은 레트리버 실험 결과와 관련지어 생각해보면, 보수주의자는 감정과 직관을 이용해 도덕적인 판단을 내린 셈이다. 그래서 이유와 상관없이 존과 윌리엄의 행동이 비도덕적이라고 답한 것이다.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시스템 2인 논리적 추론을 사용해 도덕적 결정을 내린 셈이 된다. 그래서 존과 윌리엄의 행동은 역겹지만 비도덕적인 행동은 아니라고 답한 것이다.
보수주의자는 감정을 사용해 도덕적인 결정을 내리고, 진보주의자는 이성을 사용해 도덕적인 결정을 내린다. 그래서 진보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좀 더 이성적이라고 스스로를 쓰다듬어주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진보의 자기만족이다. 우선, 시스템 1의 감정이 이성보다 우선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게다가 진보주의자들은 그들만의 편향과 인지 오류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뇌는 영장류의 공감의 뇌에 논리적 추론을 담당하는 새로운 뇌가 덧씌워진 것이다. 당연히 평소에는 오래된 감정의 뇌가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거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감정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감정 자체가 하나의 정보 처리 기관이기 때문이다. 사고로 복내 측 전전두엽 피질에 손상을 입은 사람은 감정과 관련된 능력이 제로 수준까지 떨어진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고, IQ에도 결함이 없지만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거나 아예 결정을 하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당신이 핸드폰을 새로 바꾼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당연히 가격이 저렴하고 디자인도 예쁘고 기능도 많은 핸드폰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핸드폰은 너무 많다. 완벽한 선택을 내리려면 세상의 모든 핸드폰의 조건들을 다 비교해야 하지만, 그러려면 끝도 없다. 그래서 당신은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브랜드의 핸드폰을 2~3가지 정해놓고 그중 한 가지를 택한다. 이게 일반적인 사람들이 핸드폰을 고르는 방식이다. 하지만 감정을 잃어버린 환자는 모든 핸드폰을 다 비교해야만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감정 시스템이 고장 나 경우의 수를 줄이지 못하고 오로지 합리성으로만 결정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으로는 1년이 결러도 핸드폰을 살 수 없다. 감정을 배제한 채 논리와 이성으로만 결정하려 하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 진보주의자들이 답답하고 우유부단한 이유기도 하다.
사고로 결정을 하지 못하게 된 환자의 사례에서 보듯이, 감정에 기반한 직관은 무의식 수준에서 이미 결정되기 때문에 빠른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신중하게 생각해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시스템 1만 사용하면 문제가 생긴다. 답정너처럼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사후에 정당화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인지부조화와 확증편향 등의 인지적 오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합리적이고 객관적 추론 능력은 진리나 사실을 발견하거나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기 자신부터 설득해 자신의 정체성을 집단의 정체성과 일치시키고, 이를 통해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남의 티끌은 보면서도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 이유다.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인간의 성향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접했을 때 그 정도가 더 심해진다. 이를 ‘태도 양극화 효과’라 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부정적인 정보를 접한 실험자들은 처벌에 대한 부정적 감정과 관련된 뇌 영역이 바로 활성화되었다. 하지만 다시 신뢰를 회복하는 증거를 발견하자, 실험자의 배측 전전두엽이 활성화되어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이 분비되었다. 이는 정치적 신념도 중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개인적으로, 정치적 극단주의자, 흔히 정치병 환자들은 말 그대로 정치에 중독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만이 옳다는 믿음을 만들어 냄으로써 얻는 쾌락에 중독된 걸지도 모른다.
'태도 양극화 효과'는 보수주의자에게서 더 나타나기 쉽다. 좀 전의 실험에서 보듯이, 보수주의자는 시스템 1에 기반해 감정적인 판단을 내린다. 이는 바꿔 말해, 확증 편향(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것) 같은 인지 오류가 보수주의자들에게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이 무조건 선하다고 믿고, 상대 집단을 미워하고, 외부의 비판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감정과 직관을 이용해 내집단을 도덕적으로 방어하는 것이 진화적으로 유리했기에 자연선택된 것이다. 이를 부족주의(Tribalism)라 한다. 부족주의는 세상을 우리 대 그들의 이분법으로 나누고,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맹신하는 만큼이나 '그들'을 증오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부족주의는 '내집단 선호'와 '외집단 배제'라는 형태로 심리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현상이며, 무엇이 부족주의를 만들어내는지도 잘 알려져 있다.
반면 진보주의자는 시스템 2를 이용해 도덕적인 판단을 내린다. 감정보단 이성과 논리를 사용해 존과 윌리엄의 행동이 비도덕적인 것은 아니라는 객관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는 진보주의자가 결정을 내릴 때 타인에게 피해를 주었는지의 여부를 중요하게 따지고, 인지 오류가 상대적으로 적고, 집단보단 개인 위주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 이유에는 마찬가지로 진화적인 이유가 있고, 뇌의 작동방식에서도 보수주의자와 차이가 있다. 다음 장에선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다르게 진화한 원인을 환경적인 차이로 설명하고, 그 차이가 신경학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