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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Jan 24. 2021

학생에게 사과할 줄 아는 교사

2005년도, 내가 중학교 2학년 학생일 적 일이다.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학생들의 성적을 향상하겠다는 이유로 자리를 '성적순'으로 배치했다. 제일 앞자리부터, 반 일등과 반 꼴등이 짝꿍이 되는 식이었다. 덕분에 반 학생들의 성적이 모두에게 공개되었고, 쉬는 시간엔 종종 옆반 아이들까지 구경 와 자리를 손으로 꼽으며 누가 몇 등이네, 라며 키득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이 만들어놓은 담임 선생님이 만들어 놓은 자리 배치 만으로도 이미 기함할 노릇이다.


내 짝꿍은 소위 '일진'에 속하는 까불기 좋아하는 남학생이 되었다. 좋게 말하면 반에서 재간둥이 노릇을 하는, 나쁘게 말하면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과 딴 이야기 하기를 좋아해 수업에 방해가 되는 아이였다. 시험기간이 가까워지며 이론 공부를 위해 체육 수업이 교실에서 이루어진 어느 날, 수업 중 잠시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새자 내 짝꿍은 선생님의 말씀에 한 마디씩 거들며 주거니 받거니 웃으며 만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잘 진행되던 이야기는 어느 순간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선생님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40대쯤 되셨던 당시 체육선생님은 손에 들고 있던 칠판지우개를 사정없이 그 아이에게 던졌다. 칠판지우개는 내 짝꿍을 맞추고 충격으로 반으로 갈라지며 튕겨져 나와 내 뺨을 내리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얼굴에 분필가루를 묻히고 충격과 아픔으로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조금 있으니 상황이 인식되며 눈물이 퐁퐁 나왔다.


찬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조용해진 교실을 뒤로하고 해당 선생님은 하던 수업을 마무리하신 후 별말씀 없이 교실을 떠나셨다. 물론 내게 사과 같은 건 하지 않으셨다. 얼굴에 분필가루가 묻었고 눈에서 눈물이 나고 있었으니 내가 칠판지우개에 맞았다는 사실을 모르실 리 없었지만 그 뒤로도 쭉, 내가 졸업하는 순간까지 그 선생님은 아무 일 없듯 행동하셨다.


2006년,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국어시간에는 수업 시작 전 '5분 스피치'라고 해서, 선생님이 준 주제를 가지고 5분간 생각해서 글을 쓰고 짧게 발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날의 주제는 번호를 찍어 선정된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었다. 글쓰기 시간이 끝나고 발표를 해야 하는 데, 자원하는 학생이 없자 국어 선생님은 그날 날짜에 맞추어 발표 학생을 선정하셨고, 내가 발표를 하게 되었다. 간략히 적었던 내 글쓰기 내용을 발표하고 나는 그 친구를 보고 웃으며 몇 마디 덧붙여 이야기했다. 다른 학생들도 늘 그렇게 내용을 덧붙여왔기에 나도 별생각 없이 내용을 더 생각해 발표한 것이다.


내 발표가 끝나자 국어 선생님은 노발대발하시며 어떻게 쓰지도 않은 내용을 거짓말로 발표할 수 있냐며 소위 말하는 '주먹 쥐고 엎드려 뻗혀'를 시키셨다. 선생님이 왜 화가 나신 건지 제대로 파악도 하지 못한 채 나는 교실 앞에서 벌을 받아야 했다(심지어 치마 교복을 입은 상태였다.). 그날따라 수업 중 근처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고등학생 언니들이 학교 홍보를 나왔고, 수업을 중단하고 시작된 홍보는 이야기가 길어져 수업이 끝나야 할 시간이 넘어서까지 계속되었다. 선생님은 옆에 서서 홍보를 구경하고 있었고, 나는 그 상태로 계속 벌을 받고 있어야 했다.


수업을 시작하고, 짧은 글 쓰기를 하고, 발표를 하자마자 벌을 받기 시작했으니 족히 35분 정도는 주먹 쥐고 엎드려 뻗혀를 한 채 방치되어있었던 것이다. 홍보하러 온 언니들이 떠나고 나중에 수업을 마저 하겠다며 선생님은 너 들어가,라고 하시더니 그대로 교실을 떠났다. 물론 그동안 내 손마디의 껍질은 다 까지고 피까지 맺혀 있었다.


두 분의 공통점이라면 본인들이 저질러 놓은 일에 대해 일언반구 없이 현장을 떠나버렸다는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미안하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사과도 없었던 걸지 모른다. 그냥 자신이 잘 행동했다고, 이건 그냥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의 일부분이었다고 생각하며. 그러나 덕분에 나는 몸에도 마음에도 깊은 상처를 얻었다. 오죽했으면 그 생각이 십오 년쯤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걸까. 그런 일을 당하고도 집에 가서 아무 말하지 못했던 어린 나를 생각하면 답답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참 복합적인 마음이 든다.


이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정말인지 선생님 복이 없었다. 이제와 생각해도 어떻게 학생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나, 싶은 행동을 한 선생님들을 참 많이도 겪었다. 그렇게 과거의 선생님들께 당해온 내가 이제는 그분들이 만들어놓은 교사의 부정적인 이미지에 갇혀 함께 평가절하당한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다. 이제 와서 그분들을 찾아가 분풀이를 할 수도 없는 일이니 지나간 일은 마음에 묻으며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그분들이 그때 내게 사과했으면 지금 내 마음이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그래서 교사가 되며 다짐했다.

내가 완벽한 교사가 될 수는 없겠지만, 혹시나 실수를 하게 된다면 꼭 사과할 줄 아는 교사가 되어야지.


학교에 있었던 지난 육 년간 나는 말버릇처럼 '미안해'를 달고 살았다. 실수로 학생과 부딪혀도 '선생님이 미안해', 쉬는 시간을 조금 늦게 줘도 '미안해'. 그러나 여전히 나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내가 저렇게 큰 실수를 했을 때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을까. 어쩌면 과거에 내가 겪은 선생님들처럼 모르는 척 지나치려 들지는 않을까. 나는 실은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은 사람이라, 그래서 더 노력하고 있다. 결정적인 순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해서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과거에 내가 받은 상처를 되돌릴 수 없는 이상 이걸 딛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발판으로 삼고라도 싶은 게 내 심정이다. 어째서 가해자들은 잊고 잘 살아갈 일을 피해자들은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아가야 하는지, 세상은 참 비합리적인 게 많다. 과거의 선생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면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좋지 않을 기억을 가지고 있다. 지금 세대의 선생님들이 열심히 노력하면 지금의 학생들은 다음 세대의 어른들이 되어 교사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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