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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원미상 Aug 03. 2023

열심히는 안하는데, 이상하게 끈기가있어요.

어느덧 시간은 흘러 네일아트 하며 산지도 15년이 넘었다. 전공은 했으나 지망하지 않았고

이렇다 할 자부심을 느끼고 산 것도 아닌데 참 오래도 쉬지 않고 해 왔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19살 

'문창과'는 안된다는 부모님의 얄팍한 반대에 너무 쉽게 꿈을 무르고 어부지리로 택한 과였다. 

짧디 짧은 대학시절은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스무 살 인생은 논밭을 굴러다녀도 황금빛이니까.




대학시절 마지막 방학을 헤어숍 인턴으로 보내면서 나는 헤어에 대한 마음을 굳게 접었다. 

청담동 핫하디 핫한 헤어샵은 매일같이 연예인이 오가고 겉보기에 너무나 화려했지만 그 많은 직원들이 

앉아 쉴 곳은 1평 남짓, 그나마도 창고뿐이었다. 나와 같이 인턴실습을 나왔던 4명 중 인턴생활 2달을 채우고 나간 사람은 나뿐이었다. 고작 실습 한 달을 채웠을 무렵 내 옆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앞으로 한 번 더 이걸 반복해야 된다는 생각에, 빨래를 가지고 내려가는 2층 계단에서 

그냥 굴러버릴까 진심으로 고민했다. 

'잘만 굴러 떨어진다면 인턴생활도 오늘, 여기서 종료겠구나' 하는 생각에 설레었지만 

꽤나 높았던 계단은 자칫 인생까지 종료시킬 것만 같아 차마 구르지 못했다. 

그냥 그만둔다고 말하고 나가버리면 됐을 텐데. 아님 다른 인턴들처럼 잠수라는 간단명료한 선택을 해도 되고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자의로 선택한 일을 자의로 그만두지 못하는.

어른이 되고 보니 그것은 끈기였다.  좀 모자라 보인다는 게 문제였지만, 어쨌든 끈기

비가 올 때까지 기도를 올려 반드시 비가 내리게 하는 것처럼

어영부영 선택한 일이라 해도 중간에 끊어내지 못하고 끝끝내 버텨내는 끈기였다. 



헤어에 대한 마음을 접고 나니 할 게 없었다. 피부관리를 전공해 볼까 하고 교수님 옆을 서성였으나

가느다란 내 팔과 다리를 보신 교수님은 일언지하 거절하셨다. 

자리를 찾지 못해 서성이던 나는 결국 네일아트 교수님 눈에 띄었고, 곧바로 학원으로 가게 됐다. 

당시 네일학원 수강료는 최소 수백부터 많게는 수천에 달했다. 

교수님은 결국 영업에 성공하셨고, 나는 많은 돈을 지불한 대가로 마음 편한 도피처를 찾게 되었다. 


나는 백수가 아니다. 나는 취업을 준비하는 중이다


돈이 드는 만큼 네일학원은 재미있었다. 대회도 나가고, 상도 타고, 배울수록 큰 사람이 돼 가는 것 같았다

비록 실전에서 유용할만한 어떤 기술도 배우지 못했다는 걸

취업 후에야 알게 됐지만 

마지막으로 마음껏 써본 엄마카드였다. 


카드값이 수백을 넘어 내 목까지 찰랑거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때가 왔음을 알았다

이제 그만 취직을 해야 할 때 .. . .

취직은 한칼에 성공했다. 


친구들이 한참  대학 선배미를 뽐내며 캠퍼스를 누빌 때 나는 매일같이 손님 손발을 닦으며 

70만 원을 월급으로 받았다. 학원비는 천만 원을 넘게 들였는데.... 7.. 70..


  주 6일/ 하루 10시간 근무/ 초과근무는 무급/ 출근은 '누구보다빠르게남들과는다르게'


 월차도 반차도 휴가도 없다. 병가는 당연히 없다. 이가 썩어가도 치과를 간다는 말조차 할 수가 없다.

 치과를 가려면 일을 그만두는 방법밖에 없다. 나는 이가 썩는 걸 선택했다. (씨익)



 엎친데 덮친 격으로 참 철없는 원장님을 만나 원장님이 하는 사업에 이리저리 휘둘려 다녔다.

 네일아트를 하면서 옆에 놓인 신발을 팔았다. 이 원장님... 사업수완이 좋다고 해야 하나? 일을 잘도 벌렸다. 

수습은 못하셨지만 일은 잘도 늘리셨다. 네일샵을 운영하며 인터넷 쇼핑몰과 오프라인 옷가게를 

삽시간에 만들어냈다. 내가 네일샵에 취직하고 3개월도 채 안 됐을 때 일어난 일들이다.


내 첫번째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였던 네일샵 면접은 너무 금방 끝나버렸고, 나는 곧바로 채용됐다. 

학원에서 갈고 닦은 엄청난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덜덜 떨고 있는 손밖에 보이지 않으셨단다. 

그럼에도 면접 5분만에 내가 채용된 이유는 있었다. 

원장님은 다 계획이 있는 사람이었다. 계획만! 있는 사람이었다. 


 분명 네일을 하러 왔는데 왜 내가 카메라 앞에 서있는 거지. 이 옷들은 다 뭐람?

당연히 의아했지만 그냥 했다.

 어차피 근무시간이었으니까. 옷을 입으라면 입고 사진을 찍으라면 찍었다. 

지금 들으면 나를 바보 똥멍충이로 보겠지만 

( 물론 그 당시도 나를 똥멍충이로 보는 우리 친 언니가 있었다)  

그냥 했다. 네일도 하면서 모델도 했다.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그냥 했다 

그냥 하다 보니 쇼핑몰이 망했다. 

경력 없는 모델과 경력 없는 사장, 경력 없는 사진작가의 대환장 콜라보였다. 

그중 경력 없는 사진작가는 실로 대단한 캐스팅이었다. 셀카도 찍어본 적 없는 원장님의 남편. 

우주의 기운도 소용없는 조합이었다. 그렇게 쇼핑몰이 망하고 한동안 네일 실장님과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살짝 정신없는 원장님은 자꾸만 일을 벌였지만 샵은 이상하리만치 장사가 잘됐다. 

생각해 보면 실장님의 역할이 컸다. 일을 잘하는 분이었다. 오락가락한 원장님을 만나 한숨을 내쉬면서도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 실장님도 이상한 끈기가 있었다. 

네일샵이 온통 옷더미로 가득 차도 조용히 할 일을 하셨다. 이게 네일샵인지 창고더미인지 한숨을 푹푹 내쉬는 와중에도 들어오는 손님을 놓치지 않았다. 

나를 가르치는 일 또한 잊지 않고 많은 걸 알려줬다. 나는 곧잘 따라 배웠다. 

물론 그때까지도 네일샵 옆 한 곳을 빼곡히 자리 잡은 옷더미들은 없어지지 않았다. 

옷더미,신발더미,원장님이 먹다 말고 과자봉지들, 


가끔 옷이나 신발을 사려는 고객이 오면 원장님의 눈이 빛났다. 수려한 말발로 기성화는 수제화가 되곤 했고, 

그런 원장님을 보며 '저러지는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열 번 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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