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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원미상 Aug 03. 2023

이상한 나라의 원장님. 그리고 실세  (feat 뒷담화

물건을 팔 때를 제외하곤 원장님은 자주 자리를 비웠다.

실장님과 나는 그렇게 2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 어린 내가 보기에도 원장님은 어딘가 모르게 이상해 보였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육체적은 노동은 있었지만 정신적인 핍박은 없었다.

 육체적 노동과 더불어 정신적 핍박까지 받아줘야 '라떼는 말이야'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대 미용업은 그러하였다. 

 그래도 마음 편히, 그만두지 않고 샵을 다닐 수 있었던 건 다 실장님 덕분이었다. 

하지만 실장님의 상황은 어린 나와는 달랐는지, 더 이상은 못해먹겠다며 어느 날 샵을 떠났다.

 




그때 나의 네일경력은 2년이 전부였다. 부족함을 빠르게 인지한 원장님은 경력이 많은 또 다른 실장님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나도 그때쯤은 나름 이 샵의 박힌 돌이었지만 굴러들어 온 돌이 너무 거대했다.  

나이도 10살이나 많았고, 경력 또한 어마무시했다. 원래도 텃세라는 걸 부릴지 모르지만

거대한 바위 앞에서 나는 얌전한 돌이 됐다. 실장님은 자라나는 꿈나무를 보듯 나를 예뻐해 줬고 

눈치가 보였는지 어쨌는지, 그 많던 잡동사니가 사라졌다.  

곳곳에 쌓아뒀던 옷가지들은 말끔하게 치워졌고 '이제 더 이상 옷가게 점원은 안 해도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에겐 그렇게나 따뜻하던 실장언니는 반전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땐 차가운 눈빛을 장착할 줄 아는 여자였다. 웃으며 먹고 마셨던 

즐겁디 즐겁던 첫 회식 끝무렵엔

 무려 월차와 반차를 얻어냈다. 너무 자연스러워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지금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그 당시 미용업에서 월차와 반차란, 월척과 반찬과도 같았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란 거다. 

 하지만 들어온 지 3일 만에 월차와 반차를 얻어내는 데 성공한 실장님은 

연이은 두 번째 회식에 월급+인센티브를 얻어내셨다.

인센티브 제도에 무지했던 원장님을 단 몇 마디의 부드러운 어조로 설득해 버렸다. 

당당하게 자신이 일한 만큼 가져가겠단 포부를 밝히며 손님 유치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다행히도 그건 허세가 아니었다. 인센티브 얘기가 끝난 직후부터 실장님의 옛손님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시작했다. 원장님에게 큰 수익을 안겨다 줄 굵직한 손님들로 네일샵이 꽉 차기 시작했다. 


기존에 하지 않던 시술도 들여놓자고 제안했다. 그저 네일샵이었던 작은 가게는 

피부와 속눈썹까지 하는 토털샵으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였다. 

덩달아 나는 무럭무럭 자랐다. 

하나같이 어찌나 기가 세고 눈빛이 날카롭던지. 정말 그때 실력 많이 늘었다. 

회식은 또 찾아왔고 그때마다 실장언니는 원하는 걸 요구했다. 

과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원장님 입장에서 싫으면 싫다고 거절하면 그만이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고, 중이 싫으면 절도 중을 내칠 수 있다. 그땐 그랬다. 

사장이 하루아침에 짐 싸서 나가라 소리쳐도 직원은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원장님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내쫓지 않으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샵은 승승장구했지만 실장님과 원장님 사이엔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원장님 이상한 거야, 하루이틀 아니었지만 실장님은 그런 원장님을 이해해 줄 마음이 없었다. 

그러려니 받아들일 마음 따위가 전혀 없었던 거다. 원장님도 실장님을 내쫓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 샵의 주인이 실장언니가 돼 가는 꼴은 또 보기가 싫었었나 보다. 

실세는 실장님이었다.

  미묘한 신경전은 때마다 계속됐고 나는 앉은자리가 불편한 느낌을 자주 받았다. 

결국 실장언니의 무리한 요구에 원장님은 더 이상 들어줄 수 없다며 선을 그었고

그렇게 그냥 헤어지면 됐을 일을 크게 키우기 시작했다. 


-뒷담화의 시작-


딱 보기에도 신이 전혀 내린 것 같지 않은 점쟁이를 따라다니며 운세를 줄줄 말하기 시작하던 게 시작이었다. 점만 보고 왔다하면 실장언니의 생김새를 묘사하며, 뱀 같은 여자가 본인 주위에 있다는 말을 해댔다.

자기 주위에 자기를 해하려는 여자가 있는데.. . 어쩌고 저쩌고. . 

실장언니를 저격하는 발언을 무당언니의 입을 빌려하는 느낌이었다. 듣는 내가 다 민망해졌다.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헤어지면 될 텐데. 굳이 남의 입까지 빌릴 건 뭐란 말인가.

딱히 점괘를 믿거나 하지도 않았지만 싫어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로 나는 샤머니즘을 배척하게 됐다. 

결국 남의 입을 빌려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듣고 싶은 말을 듣는 것 따위로 치부한다. 

치사하고 옹졸한 방법이다. 

샵을 위해 해야 할 일이라며 예고도 없이 소금과 팥 같은 걸 뿌려댔을 때 안녕을 고했어야 했다.


 하지만 역시는 역시나.  나는 그만두지 않았다. 

 그놈의 똥멍충이 같던 기질은 이상한 힘을 발휘해 안녕을 말하지 못했다. 

한편으론 귀엽고, 발랄하고, 솔직하고 그냥 가만히 계시기만 했어도 샵은 굴러갔을 텐데.. 


결국 얼마 안 가 대참사가 났다.  


사건은 옆집 미용실 원장님의 입을 타고 점화됐다.

숙련된 기술과 화려한 입담을 가진 미용실 원장님은 짧은 시간에 많은 고객을 확보했다. 

원장님은 옆 가게 미용실 원장님과도 두터운 친분을 가져가려 했지만, 

성격 강한 두 사람이 깊은 우정을 나눌 수는 없었다.

 둘 다 고객이 많던 샵이라 윈윈 하는 사이였다. 


오랜만에 머리를 하러 간 실장언니의 눈빛이 빛났던 건 다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실장언니는 대놓고 싸움판을 만들었다. 

원장님이 그동안 생각 없이 뱉었던 말들을 전부 오픈했다. 

전형적인 뒷담화의 앞담화 버전이었다. 맑눈광으로 변한 언니는 표정변화 없이 계속해서 입을 조잘댔다.

 

"원장님 그렇다면서요? 아.. 만나는 남자분도 있다 그러던데, 한둘이 아니라고 ㅎㅎㅎ 

부러워요. 그나저나 가슴한건 진짜 몰랐어요. 남편분은 (어쩌고 저쩌고)"


"누가 그러긴요? 제가 누구한테 들었겠어요. 또 뭐라더라. "


심상치 않은 분위기는 개나 줘 버리라는 듯 계속해서 조잘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미용실 원장님은 삼자대면을 선택했다. 


"니 어디고. 니가 내를 아나? 어디서 입을 씨부려쌌노

여 샵이다. 온나. 할 말 있음 여 와서 씨부려봐라"


전화를 받은 원장님은 부랴부랴 뛰어온 듯했다.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원장님은


 "언니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어~내가~~ "


당황하지 않고 상황을 진정시키려던 원장님의 얼굴은 실장언니를 보자 일순간 일그러졌다. 

여전히 맑눈광을 유지하던 실장언니의 눈은 누가 봐도 '내가 그랬는데??'라고 말하고 있었다. 

                                                                            

머리끄댕이가 시작됐다. 둘이 잡고 셋이 잡고 뜯어말리는 사람 잡고 난리가 났다. 

처음엔 놀라서 말리고 물건 깨질까 봐 말리고, 말리고 말리다 말리던 사람들이 지쳐 나가떨어졌다. 

이젠 못하겠다. 니들끼리 머리를 벗기든 말든 알아서 해라 

할 때쯤 머리끄댕이는 끝이 났다. 


2차전은 진실공방이었다. 이건 너무나 쉽게 끝이 났다. 


"모두 있던 얘기잖아요. 아무 말도 안 하는 저 잡고 얘기하셨잖아요. 싸구려 술집여자 같다고. 

순화해서 얘기한 거예요. 또 그런 적 없다고 밤새도록 얘기해 보시던가"


입고 있던 가운을 벗어던지며 실장언니는 그 자리를 떠났다.


남 말 하는 사람, 그 말을 전한 사람, 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람

과연. 누가 제일 나빴을까. 

입이 빚은 일 입으로 받았다. 

나는 이 일이 있은 후로 여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어떤 얘기도 전하지 않으려 신경쓰는 버릇을 갖게됐다. 


남 말을 전한 사람이 가장 나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실장언니는 떠났고, 나는 남았고, 샵은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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