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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원미상 Aug 03. 2023

변화의 시작

의문점이 든다. 도대체 그런 샵에 나는 왜 남아있었던 걸까. 


실장언니가 떠나고 나 역시 그만두길 원했다. 그 꼴을 다보고는 그냥 그만두는 편이 낫다 생각했다. 

늦은 밤 집으로 찾아와 원장님은 울고 또 울었다. 

왜 위로를 전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럴 때면 그냥 어린아이 같았다. 

나까지 그만두면 샵은 어떡하며 남은 고객들은 어쩌냐며 매달렸다. 

참. 우는 것도 매달리는 것도 쉬운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소리 내 우는 법을 잊은 지 오래였다. 부탁하는 것도 우는 것도 진심을 말하는 것도 

모두 어려웠다.

그러지 못하는 나는 어쩌면 이 이상한 원장이 신기했던 걸 수도 있다. 참 쉽고 이상한 여자. 




샵을 옮기고 내가 계속 일하는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당연히 월급도 올랐고 그전 실장님이 갖던 권리도 쥐어졌다.

(반차 월차 인센티브...)


그사이. 어디서 투자를 받아왔는지 샵의 규모는 몇배나 커질 예정이었고

네일숍과 피부샵 메이크업까지 모든 걸 갖춘 토탈샵으로 다시 오픈할 계획을 세웠다. 

직원들도 대거 늘릴 참이었고 이 모두를 아우를 실장이 필요했다. 

보시다시피 그건 바로 나였다. 우는 원장님을 달래던 내 손길을 그녀는 놓치지않고 동아줄 잡듯 꽉 잡았다.

 내 마음은 읽힌 듯했고 난 완전히 찍혔다. 

어디도 갈 수가 없었다. 행여나 안 한다고 할까 봐 미리부터 울고 찾아오고 거절 시엔 전화기에 불이 났다. 

사실 나밖에 없던 건 아니었을 텐데 그래주는 마음이 고맙기도 했다. 


네일아트와 피부관리 더군다나 메이크업까지. 이중 원장님이 할 줄 아는 건 하나도 없었다. 

장사도 미용도 무경험이었던 사람이 노는 것보단 낫다는 심정으로 차린 작은 샵이었다.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인 샵을보며 심란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다 이 샵이 이렇게까지 성장한 거지.. 물론 그 배경에 원장님의 힘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저돌적이었고, 유행에 민감했으며, 사람의 시선을 끄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기꾼을 능가하는 말빨이 있었다.

 

어쨌든 샵을 다시 오픈한다는 계획은 거짓이 아니었다. 

오픈하는 샵에서 자리 잡는 것만 도와주겠단 약속을 상기시키며 나는 다시 원장님의 옆으로 돌아왔다. 

오픈 준비는 역대급 꿀잼이었다. 돈 쓰는 재미가 이런 것이구나..

내가 사고 싶은 재료, 내가 사고 싶은 가구, 동선부터 구조까지

맞춤으로 진행됐다. 그동안 불편했던 점을 개선하며 어느새 나는 적극적으로

이 샵에 개입돼 있었다. 그때까지 직원은 나뿐이었으니 내 말 한마디에 공사가 진행됐다. 

이 넓은 샵을 나의 취향으로 채운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안하면 못 나갈 내 마음을 이용한 거지만 

어쨌든 파격적인 직원 우대가 맞긴 했다. 


공사가 마무리되고 직원 면접까지 모두 도맡아 했다. 

근사하게 차려진 샵은 누구나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는지 직원채용은 무리가 없었다. 


샵은 처음부터 기본 매출을 찍어냈다. 중간중간 나가는 직원도 있고 들어오는 직원도 있었지만

확실히 내가 그만두지 않는 것은 샵의 중심을 잡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 사이 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직원 모두가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었다. 

어느새 그들과 손발을 맞추다 보니 그만둔다는 생각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렸다. 

원장님이 어떤 여자인지 잠시나마 잊게 된 것이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일이 재밌었다. 그냥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는 확실히 이 일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원장님은 특별한 이상징후를 만들어 내지 않으셨다.  

오늘까지 하늘색이었던 포인트 벽을 갑자기 시뻘건 레드로 바꾼다던가. 

멀쩡하던 조명을 다 뽑아버리고 새로운 조명을 설치한다던가 하는 돈지랄 과소비를 빼면 

그런대로 멀쩡한 날들이었다. 


오픈 1년 후쯤 직원들은 고정멤버로 자리를 잡았고 샵은 날개를 달았다. 

매출이 펄쩍펄쩍 뛰었고 바람잡이 원장님도 한술 거들었다. 

샵이 너무 안정적으로 운영되니 그때쯤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샵이 잘되니 마음이 편했다. 이제 떠나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궤도에 올랐다고 생각했을 때 원장님은 다시금 일을 벌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 마이갓

쇼핑몰을 다시 오픈한 것이다. 

차라리 적선을 하시지.... 그냥 탕진잼 쇼핑을 하시던가....


남편을 설득해 다시금 쇼핑몰에 도전해 보고 싶단 포부를 밝혔단다. 

그게 도대체 왜! 뭣 때문에 먹혔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쨌든 먹혀들었다. 

설상가상 남편은 친한 친구에게 와이프의 사업설명회를 열어줬고 그 친구까지 걸려들었다. 왜 도대체 왜


사실 돈을 가진 건 남편의 친구였고 알아주는 부잣집 아들이었던 친구는 

도대체 뭐 때문인지 투자를 결정했다. 

오메 대환장파티.


악의가 없는 게 더 무섭다. 사실 원장님은 진짜로 쇼핑몰이 잘될 거라고 생각하고 계셨다.

투자는 사기나 말빨로 얻어낸 게 아니었다. 그건 진심이었다. 난 그 점이 더 무서웠다. 


제2의 쇼핑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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