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긴 했는데... 돌아와서도 이일을 해야 하나..
몇년 주기로 권태기가 찾아온다더니 그 중간 쯤에 걸린 것 같았다.
계속해서 이 일을 해아 한다 생각하니 견디기 어렵게 권태로웠다.
놓은 지 오래된 연필을 다시 잡아볼까. 요즘 공무원이 최고라던데.
내 세상도 한땐 온통 교실이었고 공부머리 아예없지 않은데..
'나름 문과 쪽으로는 자신이 있으니까'
생각하며 세 번째 손가락에 배겼던
굳은살을 만져보니 어느새 말랑살로 변해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연필을 안 잡았으면 굳은살이 사라졌을까?
영원히 사라질 것 같지 않던 굳은살이 사라질 정도로 세월이 많이 흘렀던가.
이 정도면 연필 잡는 것도 잃어버린 거 아니야
게다가..경쟁률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차차. 너 글 쓰는 거 좋아하지 않았나?
글을 써보는 건 어때. 요즘 잘만 쓰면 유명한 작가가 되기는 개뿔 밥이나 먹고살겠니?
바늘 구멍을 들어가라 차라리ㅠ ..
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이 나이 먹고 엄마한테 다시 기생해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쩔 수 없이 가던 길을 가야만 했다.
안정적이라는 건 이토록 무서운 일이다,
새로운 걸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분명 어제까지도 자유를 만끽하며 아무렇게나 살았었던 난데.. 여기는 한국이였고 오늘만 생각하며 살수는 없었다. 그래도 하던 일을 계속하면 밥은 먹고살 수 있다.
다시 돌아온 한국은 그대로였다.
경력은 쌓일 대로 쌓여 어딜 가나 실장급 대우를 받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월급은 쥐꼬리 수준이었다.
그나마 많이 준다는 곳이 130만원.
물론 인센티브 제도가 있었지만 하루종일 허리 한번 못 펴고 손님을 받아야만 벌 수 있는 매출을 제시했다.
매출관리를 직접 해봤기 때문에 그 숫자의 의미를 빨리 파악했다.
그렇게 일하고 인센티브를 받느니 안 받는 게 낫다.
한국에 돌아오고 한 달이 채 안 됐을 무렵 귀신같은 원장님한테 전화가 왔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SNS 같은 건 하지도 않던 시절이다.
와... 점쟁이가 말해줬나?
딱히 돌아다니지도 않았는데 봤나? 어떻게 알았지.
어차피 좁디좁은 이 동네에서 만나려면 어디서든 만난다.
피할 이유도 딱히 없고 나는 전화를 받았다.
우린 만났고, 샵은 와해됐단 소식을 들었다. 당연한 수순이었겠지만 마음은 좀 쓰렸다.
첫 직장이자 한국에서의 마지막 직장이었으니 당연한 마음이었으려나.
원장님은 추후 나의 거처를 물었다. 정해진 것도 없었지만 정해졌다 해도 말해주고 싶지 않았는데
몇 년 만에 다시 본 원장님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밉지는 않았다.
이제 자주 만날 사이도 아니고 무엇보다 시간이 흘러서 그런가 별 감정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반가웠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돌아왔다는 걸 실감했으니까.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하자, 샵을 차려보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
한구석엔 그런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정확히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이 월급이면 하나 차리는게 낫겠단 마음도 들었지만 확 마음이 가지 않았다.
떠나는건 잘도 떠났으면서 아무래도 치고 나가는 돌파력이 나에겐 없었다.
원장님은 몇 번이나 내 마음을 흔들어재꼈다.
너라면 잘할 수 있어. 나보다 잘할 거야.
네가 아니면 누가 차리니.
인생 나빠도 나쁜 게 아니고 좋아도 좋았던 것만은 아니라더니 원장님으로부터 응원을 받을 줄이야.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내 샵이야 갖게 됐겠지만
어쨌든 시작을 울린 건 원장님과의 만남이었다.
가족도 친구도 사업을 시작하는 것에 호의적인 사람들이 없었다. 엄마아빤 늘 안정을 중요시하는 분들이었고
친구들은 토익준비와 취업준비로 바빴기 때문에
사업 얘기를 나눌 상대가 없었다.
사실 나도 샵도 차리고 원장님~ 하는 호칭도 한번 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없진 않았겠지.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나에게는 없었기에 누군가가 밀어붙여주길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자꾸만 내 샵에 대한 의지가 샘솟았다.
마지막 원장님 샵을 떠날 때 받았던 월급이 130이었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월급은 130.
경력직 대우 최고의 금액이였다.
이거 맞아? 그냥 차라리 하나 차리자.